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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의사 손자 백기환 씨 "후손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 비석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금산금산 2016. 1. 27. 19:09

백 의사 손자 백기환 씨

 

 

"후손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 비석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 비석이 매장된 곳을 가리키는 백 의사 손자 백기환 씨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차원에서 제단과 비석이 복원되길 바랍니다."

지난해 91세로 타계한 백삼욱 옹 생전 소원은 선친 백낙주 의사 제단과 비석 복원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그런 소원을 지자체 등에 밝혔지만 그때뿐이었다.

결국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비문을 족자 붓글씨로 옮긴 이가 백 옹이다.
 


백 옹 소원을 백 옹 아들이 이루겠다고 나섰다.

수영구 망미동 거주 백기환(63) 선생으로 백 의사 손자다.

요산문학관에 족자를 기증한 이다.

할아버지 관련 기록이나 사진, 언론보도 등을 일목요연 정리해 두었다.

1996년 타계한 요산 선생 사회장이 우장춘 박사 이후

두 번째란 보도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해 정정 보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강직해 불의와 타협할 줄 몰랐습니다."

백기환 선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쩌렁쩌렁한 호랑이 목소리를 기억한다.

장례식 장면은 매우 선명하다.

 비가 부슬부슬 왔다.

장내 아나운서는 '하늘도 슬퍼서 울듯이 비가 온다'고 했다.

영결식이 그치자 비도 그쳤다.

장례 행렬은 남일초등을 시작으로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청 공보관, 중앙동, 세관으로 이어졌다.

세관에서 버스를 타고 대연동 묘지로 이동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이 못골 기다란 못둑을 지나는 흑백사진은 기억에 실감을 더한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오늘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총상을 입고 감옥에 갇힌 할아버지는 치료를 거부했다.

왜놈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신념이었다.

반찬에 섞인 고춧가루나 된장을 발라 스스로 치료했다.

총상 자리에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고 손자는 회상한다.

할머니가 일경에 잡혀가 남편 행방을 대라며 곤욕을 치르는 동안

 갓 난 아버지는 나이 차 나는 형수 젖을 먹으며 자랐다.

 


인터뷰 마치며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비석을 일반인 접근하기 쉬운 장소로 복원했으면 합니다. 선열들 정신을 복원했으면 합니다."

요산문학관은 백낙주 의사 비문 족자를 9월 하순부터 전시 중이다.



글·사진=동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