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문화유산 일번지, '동래부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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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유형문화재 1호 동래부 동헌의 입구. |
동래부 동헌은 부산의 문화유산 일번지이다.
197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동래부 동헌을 1호가 아닌 굳이 '일번지'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1호는 첫 번째 문화재로 등록되었다는 행정적 순서를 의미하지만
일번지는 문화유산 가운데 지역의 대표를 상징한다.
예컨대, 음식점의 상호에 붙은 일번지는 최초의 원조나 최고의 맛집을 뜻하지 않는가.
문화유산 앞에 일번지를 붙인다면 한 가지 의미가 더 추가된다.
지역의 문화유산 답사를 할 때 가장 먼저 들러서 봐야 할 곳이란 뜻이다.
동래부사 집무 동래부 동헌
조선시대 동래의 중심
건물 헐리고 경내에 도로까지
수난과 축소의 세월 겪어
복원 사업으로 르네상스 꿈꿔
부산 문화유산 일번지 되찾길
그런데 막상 내 말을 듣고 동래부 동헌에 가 본 답사객들은 실망을 하거나 불만을 털어놓는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동래부 동헌에는 충신당(忠信堂)을 비롯한 건물 몇 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게다가 동헌 앞으로 상가와 시장이 밀집되었으며, 다섯 개의 도로가 얽히고설켜 복잡하고
시끄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고색창연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마음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의 관점으로 동래부 동헌을 보고 싶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에서는 문화재의 예술성보다 역사성이 중요하다.
지상에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빈 땅을 사적이나 기념물로 지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 하나, 문화유산만큼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중시한다.
동래부 동헌은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집무를 하던 곳이다.
쉽게 말하면 동래부사는 부산시장이요, 동래부 동헌은 부산시청이었다.
조선시대 250여 명의 동래부사가 정치, 행정, 외교 업무를 하면서 동래의 엄청난 역사가 고스란히
이곳에 담겨 있다.
조선시대 동래의 스토리는 대개 이곳에서 나왔으니 동래부 동헌은 부산 최고의 이야기공작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하니 동래부 동헌을 빼놓고 어찌 부산의 역사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동래부 동헌은 부산의 자화상처럼 동래가 겪었던 우여곡절의 역사를 묵묵히 보여 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 건물 좌우에 있었던 익랑(翼廊)은 철거되고, 주변의 건축물도 사라져 몸체인 충신당만
홀로 남아 있는 형태였다.
개항 이후로 작은 항구에 불과했던 부산이 고속 성장한 것과 달리, 동래가 겪었던 수난과 축소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시가지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동래부 동헌의 숱한 건물들을 철거하였고, 동헌 경내로 도로를 뚫었다.
충신당도 동래군 청사로 사용되면서 여러 번 개조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심장부와 같았던 동헌이 파괴되자 동래는 무너졌고, 결국 덩치가 커진 부산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동래부 동헌은 아픈 역사를 딛고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동래구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역사유적지 복원 사업의 결과이다.
독경당과 찬주헌이 복원되었고,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이 돌아왔다.
일제강점기에 동헌 앞의 문루였던 망미루는 금강공원 입구로, 외삼문이었던 독진대아문은 금강공원 숲 속으로
쫓겨난 바 있다.
두 문화유산의 제자리 찾기는 궁극적으로 동래 역사의 제자리 찾기를 상징하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동래부 동헌의 복원만큼 그 안에 담을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
역사가 없는 문화유산은 무기력하고, 이야기가 없는 건축물은 무미건조하지 않은가.
그러니 동래부 동헌 복원의 성패는 재밌는 이야기를 풍부히 결합시키는 것에 달렸다.
부산 문화유산의 일번지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이야기가 살아 있는 동래부 동헌이 되어야 한다.
이번 주부터 부산근대역사관 류승훈 학예연구사가
부산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하는 '류승훈의 부산 돋보기'를 시작합니다.
류승훈 부산근대역사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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