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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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화로 역사를 본다.
'명량'을 통해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의 역사를, '국제시장'을 통해 흥남철수와 파독광부 등
굵직한 현대사에 주목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독립운동가의 암살 작전을 다룬 영화 '암살'이 영화판을 주름잡았다.
'암살'이 흥행에 성공하자 김원봉의 의열단을 비롯하여 이회영이 세운 신흥무관학교 등 항일투쟁단체가
전례 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영화가 역사를 주도하는 이런 현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역사를 이끌다 보니 영화의 인기가 사라지면 역사에 대한 관심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기에 좌우되는 역사를 어찌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영화 '암살', 부산 독립운동 비중 커
박재혁, 부산경찰서에 폭탄 투척
김원봉 부인 박차정 의사 부산 생가
강근호·이정희 부부도 항일투쟁
흥행에 반짝하지 말고 오래 기억을
최동훈 감독이 암살을 제작하는 데 부산의 독립운동가도 큰 몫을 했다.
의열단의 핵심 멤버였던 박재혁 선생의 의거가 영화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전한다.
영화 '암살'의 저격 장면은 숨 막히듯 전개되는데, 선생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때는
이보다 훨씬 극적인 상황이었다.
영화에서 속사포(조진웅 분)가 "헌병대 아가리에서 전쟁을 하라는 얘기구만"이라고 말하는 딱 그 사정이었다. 일본 형사들이 의열단의 거사를 눈치를 챈 데다 경찰들로 북적거리는 경찰서에 들어가
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는 대범한 박재혁 선생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은 사형을 선고 받자 이제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고 했고,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다며
단식을 하여 목숨을 끊었다.
그때 나이가 27살이었다.
이런 독립운동가의 항일투쟁 역사가 한편의 영화와 함께 떴다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이겠는가.
해방 이후 친일파가 권력과 부를 누리며 살아간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일찍 절명한 탓에 후손도 없거니와
삶의 자취조차 찾기 어렵다.
그들에 관한 자료는 남아 있는 게 별로 없고 생가를 복원하는 일도 힘들다.
박재혁 선생의 생가터는 범일동 550번지로 알려졌음에도
다른 주택들로 인해 복원이 어려워 그 일대를 박재혁 거리로 명명할 뿐이다.
아쉬운 마음을 그나마 김원봉의 부인이었던 박차정 의사의 생가에서 달랠 수 있다.
동래고등학교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박차정 의사의 생가는 좁은 골목을 헤매다 간신히 찾을 수 있다.
다른 집들로 빼곡히 둘러싸인 4칸의 작은 한옥이다.
여성이면서도 무장투쟁을 했던 그녀는 곤륜산 전투의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광복 한 해 전에 숨졌다.
그녀의 혁명적 삶을 어찌 이 작은 공간에 다 담을 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생가가 있기에
그의 숭고한 뜻을 되새길 수 있는 법이다.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는 아니어도 마지막 생애를 부산에서 살았던 강근호 지사도 조명을 받아야 할 인물이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던 그는 자유시 사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독립투쟁에 일로매진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국군으로 참전했다.
민족을 위해 고군분투를 했음에도 그는 영도의 판잣집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숨을 거뒀다.
강 지사의 부인인 이정희 여사는 한국전쟁 때 여군으로 활동했으며, 해운대의 장산을 개척한 여장부였다.
장산의 깊은 숲 속을 가 보면 이 여사가 세운 모정원(母情苑) 건물이 남아 있다.
비록 강 지사의 생가는 아니지만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부부의 열정이 느껴지는 장소다.
이런 현장에 가 보면 우리는 비로소 암살이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줄기찬 역사가 되어야 함을 실감한다.
역사는 들끓는 냄비가 아니라 내일을 성찰하는 귀감이다.
독립운동가의 암살은 영화를 넘어 역사로 계속되어야 한다.
류승훈
부산근대역사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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