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파우스트'
여성적인 그것,'사랑'이 구원하리
▲ 파리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인 '파우스트'. |
'파우스트'의 서막에서 주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놓고 내기를 벌인다.
냉소에 찬 허무주의자 메피스토펠레스가 보기에 인간은 얼핏 이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욕망 속에서 버둥대다 지옥으로 떨어질 몸뚱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님은 파우스트 박사를 예로 들며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놓고 본다.
"착한 인간은 어두운 욕망 한가운데서도 올바른 길을 알고 있는 법이네."
주님과 내기를 한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는다.
이 세상에선 파우스트에게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죽어서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겠다는 조건이다.
메피스토 마술의 도움으로 30년 젊어진 파우스트의 주유천하, 그 첫 번째 무대는 관능의 세계이다.
말하자면 메피스토는 뒷돈을 대 성형수술을 시키고 회춘제도 먹여
서생 파우스트를 강남 유흥가로 데려간 셈이다.
30년 젊어진 파우스트 박사
거센 욕망 앞에 눈멀어
처녀 그레트헨을 파멸로
하지만 희생자인 그녀는
그의 구원을 진심으로 간청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희망
곰팡내 나는 연구실을 박차고 나온 '귀족'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주선으로 순진한 '평민' 처녀 그레트헨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고, 그 결과는 그레트헨 가족의 몰살이라는 참혹한 비극으로 끝난다.
둘이서 남몰래 연애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죽고, 오빠도 죽는다.
둘 사이의 사랑의 열매인 아이는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다.
그레트헨은 영아 살해범으로 감방에 갇힌다.
그러나 두 남자,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다시 마녀들이 광란의 잔치를 벌이는 '발푸르기스의 밤'에 브로켄 산으로 향한다.
무책임한 수컷들!
독일 민속설화의 집결지인 브로켄 산 정상으로 오르는 두 남자의 행보를 서술하는 장면들은 모호하다.
그들은 정말 등산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10여 쪽에 걸쳐 적나라한 남녀상열지사가 은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메피스토는 자신만만하다.
네놈이 욕정 앞에서 배기겠는가?
귀족과 평민의 신분 차이.
그레트헨은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심정으로 파우스트를 사랑하지만, 파우스트는 욕망의 불길 앞에서
오락가락한다.
결혼하지 않은 채 그레트헨과 연애하면 참극이 벌어진다는 걸 '잘 알고' 괴로워한다.
"너는 여기서 무얼 원하는가? 가련한 파우스트야! 나는 네가 누군지 더 이상 모르겠다"하고
반문도 해보지만 끝내 절제하지 못한다.
파우스트 박사여, 60년 공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현실 원칙의 냉혹한 집행자인 메피스토에게는 물론 욕망의 절제란 당치도 않다.
타자를 무자비하게 물화(物化)시켜 버리는 자, 그자가 곧 악마가 아닌가.
두 남녀가 서로 사랑했는데, 왜 그레트헨만 희생을 당한 걸까.
혼전 임신으로 인한 영아 살해는 괴테 당대의 흔한 사회 문제였다.
영아 살해범에 대한 최소한의 형벌은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고, 말뚝으로 관통시키는 형벌도 예사였다.
남성 위주의 돈과 권력과 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그레트헨 비극의 배경이었던 것이다.
파우스트는 감방에 갇힌 그레트헨을 구하러 간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악마 메피스토가 같이 온 것을 보고는 탈옥을 거부한다.
자신을 파멸시킨 힘으로부터의 구원 제의라는 역설적 상황, 그 사회적 맥락을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봉건적 관습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자기희생의 길을 택한다.
원래는 그레트헨 처형 장면을 예수의 십자가형과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했다가
교회의 항의를 의식해 나중에 빼버린 것에서도 괴테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다.
'파우스트'의 대단원에서 '희생자'인 그레트헨은 성모 마리아에게 '가해자'인 파우스트를 구원해 달라고 간청한다. 인간 역사의 비극적 아이러니. 이는 장구한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인간 사회의 인간다운 중심을 지탱했던 것은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통찰이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시구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jhc55@deu.ac.kr
장희창 동의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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