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반짝반짝 문화현장]'보수동 책방골목', 문화 발신지의 꿈

금산금산 2016. 5. 21. 19:20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 발신지의 꿈





시집 서점·캘리그래피 공방…스며드는 젊은 바람에 터줏대감도 웃는다






'낭독서점 시집'의 이민아 대표가 이 서점에서 할 수 있는 인쇄공방 체험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예술문화의 현장과 현상을 집중 조명하고, 그 주역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듣는

'반짝반짝 문화현장'을 신설해 격주로 연재한다.




- 카페 몇년새 10개로 늘고
- 이민아 시인 '낭독서점 시집' 등
- 독특하고 전문적인 공간 문 열어
- 책 사고파는 곳 넘어서려는
- 작지만 분명한 변화 물결
- 기존 베테랑 사장들도 반겨
- 책 중심 적절한 조화 필요




"분명히 뭔가 달라지고 있는데 말이야…."

"조기자! 보수동책방골목 취재 한 번 안 가나? 내가 볼 땐 변화가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문화계 인사 몇 분이 잇달아 건네왔다.

속으로 맞장구쳤다.

 '내 말이! 솔직히, 그런 조짐 진작부터 느꼈거든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이달 열린 제12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지난 9~11일)를 시작으로 2주에 걸쳐 네댓 차례 부산 중구 보수동책방골목을 들락거렸다.

"변화(의 조짐)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건지. 들어보고 알아보자."

이런 심정으로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소속 책방주인들과 번영회장, 최근 책방골목에 둥지를 튼

젊은 예술인과 청년 창업가를 만나 이야기했다. 변

화의 씨앗은 자라고 있었다.



그 핵심은 책을 사고파는, 세계에 보기 드문 책방밀집지대라는 지금 모습에 '문화 발신지'라는 정체성을 추가로 장착해 멀리 길게 보고 갈 체계를 갖추자는 것으로 요약됐다.

이 꿈을 앞당기려면, 지금의 구상을 단단한 계획으로 가꾸어 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변화란 없던 일도 생기고, 새로운 길을 만들며 가는 것이므로 앞으로 구성원 사이에서 조화의 가치가

더 중요해지리란 짐작도 할 수 있었다.




■  조금씩 빛깔 다양해지는 골목

   
지난 7월 보수동책방골목에 문을 연 공정여행 업체 핑크로더의 양화니 대표가 자체 제작한 책방골목 지도를 가리키고 있다. 핑크로더는 영화영상 전문서점을 표방하는 우야꼬컴퍼니와 사무실을 함께 쓴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부터 살피기로 했다.

"카페는 몇 년 새 10개 정도 늘었어요. 엔제리너스도 있고 이디야도 있고. 지난 9월에 이민아 시인이 '낭독서점 시집'이라는 독특한 전문서점이 문을 열었죠."

1978년부터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대우서점을 경영하는

김종훈(63) 대표의 설명이다.



좀 보태면, 낭독서점 시집 곁에 공정여행사 '핑크로더'(대표 양화니)와 영화영상 전문서점을 표방하는 '우야꼬컴퍼니'(문화소통단체 숨의 차재근 대표가 운영)가 함께 쓰는공간이 지난 7월 자리 잡았다.

 '설빙' '정항우케익' '안창마을' 등의 글씨를 디자인한 오상열 대표가

운영하는 캘리그래피 체험·전시 공간 '펀몽'도 책방골목 한복판에서

몇 년째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우서점 김 대표의 책사랑은 유명하다.

전문 서적과 외국책에 관해 40년 가까이 축적한 지식이 워낙 해박하고, 대우서점 책을 읽고

지식인이 된 고객이 전국에 깔렸다.

"학창시절 우리 서점에서 책 사서 공부한 분이 결혼해서 자녀들 데리고 찾아오는 경우도 꽤 있죠."

한때 책방골목 경기가 침체에 빠져 문을 닫는 서점이 늘자, 그런 서점을 인수해 규모를 키우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발상으로 맞섰다.

독서회도 운영한다.

"부산 시민은 대체로 책을 사고파는 공간으로만 책방골목을 생각하지 이게 품은 가치를 인식하는 분은

드문 것 같아요. 당장 '상황이 어렵다' '위기다' 이런 건 아니지만, 제가 60대이니 멀리 보면 서점을 이어갈 젊은 후진이 안 나오면 심지어 이곳이 없어질 수도 있어요."

김 대표는 "궁리해봐도 이민아 시인의 낭독서점 시집처럼 전문화된 서점이 들어와 다양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자체 등에서 세심하고 상황에 맞는 지원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베테랑들의 미래 걱정

   
지난 9일 제12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가 열린 책방골목 모습.

내친김에 보수동책방골목의 과거를 잘 알고 미래를 걱정하는

터줏대감 책방 사장님들을 더 만났다.

내년 5월 창업 30년을 맞는 대영서점 허양군(57) 대표는 독서와

출판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 흐름을 예측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며 사업을 키워온 것으로 유명하다.

신천지서점 임춘근(67) 대표는 이곳 역사를 잘 안다.

"지금 경기도에 사는 누님 임점녀 씨와 매형 손정린(작고) 씨가

이곳에서 1950년대 최초로 헌책을 팔기 시작한 분들이죠. 저는 13세 때 고향 전북에서 누님과 매형 일을 도우러 왔다가 보수동책방골목에 자리 잡았고요."



임 대표와 허 대표의 판단과 관심도 비슷했다.

"새로운 서점과 공간이 들어오고, 카페도 다양해지고, 캘리그래피 체험공간이 자리를 잡는 현재의 변화를 좋게 봅니다. 미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죠."

그러면서 이들은 "이곳을 오래 지킨 우리로서는 다만 그 변화의 중심에 여전히 책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과 바람이 있다. 새로운 흐름도 책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바람을 밝혔다.

책방골목번영회(회장 양수성 고서점 대표) 차원에서도 흐름을 민감하게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례 문화행사의 주제 문구를 '책마을로 가자'로 잡고 "책방골목이란 개념이 갖는 한계를 넘어 책·지식·문화콘텐츠를 끌어안는 '책마을'"(양수성 회장)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잡았다.





■ 작지만 상징적 의미 분명한 변화

바로 이런 때, 낭독서점 시집과 우야꼬컴퍼니·핑크로더 같은 젊은 감각의 색다른 서점과 공간이 들어온 것은

우선 상징적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 공간을 이끄는 이민아 시인, 차재근 대표, 양화니 대표는 부산 예술계와 문화판에서 문학, 문화기획,

공정여행 등 자기 영역을 씩씩하게 개척했다.

부산 청년문화계에서 기획하고, 전문가를 연결하고, 아이디어를 내어왔으며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풍부하다.

이런 역량과 경험이 보수동책방골목의 서점들과 잘 어우러지고 서로 스며든다는 상상을 하면, 뭔가 새로운 기운이 솟으리라 예감하게 된다.

지난 19일 낭독서점 시집을 찾았다.

"여행, 골목, 사랑, 인생, 독서, 영화 등 여러 영역에 관한 시를 찾는 손님에게 시집을 소개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집 전문 서점이죠. 조만간 문화살롱이나 책방골목인생학교 같은 형식의 프로그램도 합니다."

이 대표는 "삼영인쇄 정기탁 대표님과 힘을 합쳐 손님이 자기만의 수첩, 공책, 책, 책도장, 책갈피를 만들고 인쇄를 체험하는 인쇄공방 프로그램도 있다"고 소개했다.

낭독서점 시집은 사연이 나오고, 이야기가 흐르며, 체험이 있는 작은 전문서점의 조건을 갖췄다.

핑크로더 양화니 대표는 "원래 있던 사무실 임대료가 갑자기 올라 급히 새 공간을 찾아야 했다. 그간 보수동에 있는 보동길사랑방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책방골목에 둥지를 트게 됐다"며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부산을 찾는 국내외 여행자에게 부산의 속살을 안내하는 공정여행상품을 기획·운영하고, 부산 여행기념품을

디자인하고 만들며, 지역 주민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일이 핑크로더의 공정여행 업무다.

책방골목에 들어온 뒤 보수동, 안창마을, 매축지마을 여행상품과 여행기념품을 다양하게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양 대표는 "실속 있는 보수동여행법뿐 아니라 책방골목에서 여는 여행자 위주의 작은 야시장 같은 것도 생각해 본다"며 책방골목 특유의 분위기와 자산을 살리는 데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물결이 차츰 흘러들어온다면, 이 곳은 책방골목을 넘어 새 문화발신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어느 곳 못지않게 높아 보였다.

세계 최고 책방밀집지대라는 인프라도 의연하다.

변화의 씨앗은 자라고 있었다.

폭넓게 의견을 모은 탄탄한 계획과 조화로운 추진이 관건이 될 것이다 .



  • 조봉권 기자 bg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