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반짝반짝 문화현장] 글쓰기 고수들의 이 한마디

금산금산 2016. 6. 3. 15:45

글쓰기 고수들의 이 한마디





대가님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게 될까요








글쓰기 요령과 첩경을 알려주는 책과 글쓰기 특강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얼마 전 기자도 한 대학 관계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기자이니 글에 관해 경험이 많으시죠. 취업을 앞둔 우리 학생들에게 글쓰기 특강을 부탁합니다"는 내용이었다.

그 몇 주 전에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요청한 글쓰기 특강에 겁없이 나섰다가 된통 고생한 터라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고 나니 이전에도 심심찮게 이런 의뢰를 받았고, 엉겹결에 수락한 순간부터 막막함과 난감함에 몸을 떨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특강현장에서 수강생을 모조리 잠들게 한 아픈 경험도 실제로 있다.

가만, 그렇다면 '글쓰기' '창의적으로 글쓰기'에 사람들 관심이 꽤 높다는 이이기인데 글 세계의 선수들인 시인과 소설가는 어떻게 말했을까?

2001년부터 10년 넘게 국제신문이 주최한 '신문학기행' '신나는 문학기행'에 80회 이상 취재기자로 참가한 경험을 떠올렸다.

그때의 취재수첩과 '워딩'(취재원의 말을 그대로 기록해두는 것)자료 등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조정래

- 굳이 요령이라 하면 다독 다작 다상량이 유일하다

◆성석제

- 지시관계 분명하고 알기 쉽고 감동있어야(그밖에 뭐가 더 있나)


■ 가장 무서운 '공자님 말씀형'

성석제 작가와 함께 그의 고향 경북 상주로 문학기행을 갔을 때였다.

기대가 컸다.

'재밌는 글쓰기' 하면 성석제, '이야기꾼' 하면 성석제를 떠올릴 만큼 그를 좋아하고 우러러봤기 때문이다.

상주의 자랑, 경천대에서였을 것이다.

남들에게 자랑할 필살기 하나쯤 빼내겠다는 속셈으로 "좋은 글, 좋은 문장은 어떠해야 하는지 물었다.

"글쎄요." 성 작가는 아주 잠깐 생각하더니 "지시관계가 분명하고, 알아먹기 쉽고, 감동이 있어야 하겠죠"라고(만) 답했다.

"으악! 이게 다야?" 솔직히 내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뭔가 근사한 비유나 아포리즘(경구, 격언) 같은 걸 기대한 처지에서는 흔히 하는 말로

'공자님 말씀'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정래(왼쪽), 성석제

이와 비슷한 느낌의 가르침을 주신 분이 조정래 작가다.

그는 저서 '황홀한 글감옥'에서 이렇게 썼다.

"글 잘 쓰는 요령은 없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일면 기술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많이 읽고(4), 많이 생각하고(4), 많이 쓰는(2)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것은 글을 잘 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유일한 방법이고, 또한 첩경이다."(괄호 안 숫자는 비중을 나타냄)

지금 생각해보면, 조정래 성석제 작가의 말씀이야말로 정답이고,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신무기 장착하듯 몸에 철컥 달면 단기간에 자동으로 글을 더 잘, 더 창의적으로 쓰게 되는

비결 같은 것 없다는 결론에 닿았기 때문이다.

기본을 충실히 닦는 정진이 있을 뿐이다.




◆ 안도현

- 맴맴맴 맴맴맴, 매미는 이렇게만 우나
- 여름여름여름은 어때


■ '비유 천재' 안도현 시인

   
안도현

그래도 글쓰기 고민에 관해 비유를 곁들여 알약 같은 처방을 해준

문인도 있었는데 안도현 시인이 대표다.

어느 여름 전주 시내 오목정에서 문학기행 일행을 맞이한 안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다같이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조금 익었다 싶으면 홀랑 먹는 사람이 있다. 싸가지가 없다고 본다(웃음). 차분히 익기를 기다리고, 남에게 권하는 배려가 핵심이다."

여기서 공감도 높은 이야기나 시를 쓰는 철의 규율이 두 개 나오는데

바로 관찰(차분히 익기를 기다리고)과 감동(남에게 권하는 배려)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안 시인의 유명한 시가 관찰→배려→감동의 경로를 그대로 밟아가며

나온 작품이다.

"나는 라면 끓일 때 면과 스프만 넣는 사람, 싫다.

'입맛에 따라 달걀 파 등을 넣어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라고

라면봉지에 써놓지 않았나.

자기 식대로 끓이는 라면, 창의적으로 끓이는 라면을 내놔야지.

그건 글 잘 쓰는 것과 비슷하다."



안 시인이 마무리한다.

"지금 매미가 어떻게 웁니까? 맴맴맴? 시냇물 졸졸졸? 토끼 깡총깡총? 나는 그렇게만 쓰는 게 화가 나서 매미는 '여름여름여름' 운다고 썼죠. 귀뚜라미는 '가을가을가을' 운다고 쓰고요. 당신만의 글을 써보세요. '붕어빵'은 안 됩니다!"

그때 이 말을 듣고 '매미가 운다. 여름여름여름…'이라고 써 보니, 서늘한 그늘이 문장에 드리우는 느낌이었다.



◆ 김훈

- 춥다는 단어를 빼고 추위를 표현해보라
- 새 낱말과 새 방식을 맹렬히 찾게 될 것이다

■ 소설가 김훈 응용편

   
김훈

붕어빵 찍듯 천편일률로 쓰는 글을 피하고 자기만의 시선과 표현을

갖추라는 지침은 적지 않은 문인이 들려줬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 천양희 시인은 잘라 말했다.

"시의 가장 큰 적은 동어반복이다."

좋은 글과 좋은 시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니, 자기가 쓰는 글의 매력지수를 높이려는 사람이 새길 말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동어반복의 덫에 걸리지 않고 잘 피하지?

이때 작가 김훈이 2007년 부산에서 가진 문학강연에서 한 말을 응용할 수 있다.

"새들이 나무에서 돌멩이처럼 툭툭 떨어졌다. 물고기는 강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에 쓴 이 문장을 설명하면서 "이 문장은 아주 추운 겨울날을 묘사하는데 '춥다'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도의 추위를 드러내는데 정작 춥다는 표현은 한 번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하면, 좋다 나쁘다 춥다 덥다에 매달리는 상투적 표현을 피해 개성을 살리는

새 낱말과 방식을 맹렬하게 찾게 된다.

그래서 김훈 작가를 이렇게 응용할 수 있다.

'춥다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극도의 추위를, 덥다라는 낱말을 쓰지 않고 극도의 더위를 표현하려 들면 글이 는다'.



◆ 김주영

- 예술은 상상력을 먹고 사는 하마
- 상상력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한다



◆ 복효근

- 詩는 말씀의 사원…거짓이 아닌 진실을 바치면 된다


■ 진실이라는 묘약

   
김주영

작가 김주영은 "예술은 상상력을 먹고 사는 하마다.

상상력이 아니면 안 된다. 나이가 들면 상상력도 쪼그라들게 마련인데,

나는 상상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고 문학기행에서 말했다. 그는 소설가이므로 여기서 그가 말한 '예술'과 '상상력'은 모두 글쓰기와 관련된다.

또 하나 무척 인상 깊은 '지침'은 복효근 시인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와 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시(詩)는 말씀(言)의 사원(寺)인데, 사원의 말씀인데 여러분은

그런 사원에서 거짓말을 하나요? 진실을 바치지요? 간절하게 뉘우치고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도 먹지요?"

무척 힘이 센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글의 길이 헷갈려 갈등할 때는 진실을 선택하면 문제가 해결됐다.

   
복효근


단기간에 글쓰기라는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조급함은 내려놓고, 성실한

 관찰과 새로운 시선을 넣어서 쓰되, 진실의 무서움과 아름다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됐다.

새로운 눈과 진실한 마음이 잘 섞인 나태주 시인의 시 한 편이

'글쓰는 마음'과 어울린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 아름다워졌습니다'('마당을 쓸었습니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