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반짝반짝 문화현장]산복도로에 예술 입히는 나인주 작가

금산금산 2016. 6. 11. 18:18

산복도로에 예술 입히는 나인주 작가





산복도로 인상 바꾼 어린왕자…세상과 감천마을의 연결고리죠






나인주 작가가 지난 2일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서 자신이 만든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




# 산복도로 아티스트

- 동구 매축지마을서 자란 유년기
- 도심 속 작은 마을의 정감 익숙해
- 이젠 감천마을 입주작가로 활약



#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조각상

- 감천마을로 여행 온 어린왕자가
- 관람객들과 대화 나눈다고 상상
- 묻고 답하는 과정서 답 얻어가길



거의 주말마다 감천문화마을에 간다.

조각공원과 체육공원과 엄청난 바다 전망이 모두 있는 부산 서구 천마산에 올랐다가

바로 곁 감천문화마을로 내려오는 산책로는 이 근처 주민들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다.



천마산을 넘어 감천문화마을에 들어서면, 어느새 발걸음은

눈이 예쁜 소년과 귀가 큰 그 녀석이 나란히 앉아있는 곳으로 향한다.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조각상이다.

"왕자님! 오늘도 잘 지냈니? 사막여우야! 나도 좀 길들여줘 봐" 인사라도 건네고 싶지만,

주말에는 그것도 힘들다.

감천마을을 찾은, 엄청나게 많은 주말 여행자들이 왕자와 여우 사이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서기 마련이라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예술작품은 주위 공간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것은 조금, 어떤 것은 많이.

영향이 많든 적든 다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그 가운데 감천마을의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에 먼저 눈길이 간 건

세상과 이 마을이 만나는 방식에 이 작품이 적지 않은 변화를 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생텍쥐베리의 문학작품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감천마을의 전망 좋은 언덕에 앉아 마을과 바다 쪽을 굽어보는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를 보면서

이 말을 떠올리면 어떤 색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무심한 풍경일 수 있는 감천마을이라는 공간이 샘을 곳곳에 품은 아름다운 곳, 따뜻한 세상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 왕자와 여우는 왜 뒷모습인가

   
나인주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입체회회 작품들. 산복도로와 도심 마을을 정겹고 재미있게 형상화했다.

합성수지로 만든 작은 조각상 두 개를 길가에 얹어

풍경의 인상을 바꾸어 놓은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를 만든 미술가 나인주 작가를

지난 2일 감천문화마을에서 만났다.

나인주 작가를 만나자마자 오래 품었던 생각부터 털어놨다.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난간에 앉아 마을 쪽을 보는 점이

언제나 인상 깊었어요. 길에서 이 조각상을 보는 관람객에게는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가 되거든요.

등을 돌리고 있으니 사진을 찍거나 왕자와 여우 표정을 보려는 이들에겐 좀 불편할 수 있겠다 싶긴 해요.

그렇지만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보는 둘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람객은

저 너머 모르는 세계로 가는 것 같거든요.

이 방향 덕분에 관람객이 상상할 여지가 생기고, 그게 이 작품의 '예술적' 매력인 것 같아요."


이 긴 질문에 나 작가는 뭔가 생각난 듯 활짝 웃음부터 지었다.

"관광객들이 뒷모습밖에 볼 수 없으니 호기심에 앞모습을 찍으려다 난간 너머로 카메라를 떨어뜨리고,

앞쪽 빈집 지붕을 밟아 부서뜨리는 소동도 있었어요. 저의 작품을 많은 분이 좋아해주시는 게 참 기분 좋죠. 그 탓에 마음고생 하신 분도 꽤 계시지만요."

나 작가는 "모두 다 보여주는 것보다 (등을 돌리는 식으로) 약간 비틀거나 조금 불편한 요소를 두었을 때

호기심을 부르거나 보는 이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감수성의 원천 '외할머니댁'


   
나 작가가 만든 '해녀가 된 인어상'(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 나인주 작가 제공

감천마을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된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는

문화관광부의 공공미술사업인 기쁨두배 프로젝트에

나 작가가 참가하면서 2012년 만들어서 설치했다.

"지구에 온 왕자와 여우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감천마을에

왔다는 상상을 했죠. 어린 왕자는 호기심이 많고 자꾸 물음을 던지는 존재잖아요. 사막여우는 거기에 답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죠.

여행에 나서서 감천문화마을에 온 분들이 그렇게 뭔가 묻고

답을 얻었으면 하는 의도를 담고자 했습니다."

"'당신이 주인공이고 동반자'라는 뜻에서 사막여우와

왕자 사이에 한 칸을 비워놓았다"고 설명했다.



나 작가는 감천마을로 상징되는 산복도로 마을에 예술을 심는 데

한몫 톡톡히 한 미술인이다.

감천문화마을만 해도 등대 포토존, 아트샵 벽면그림, 입구의

'마주보다' 벽화 등 작품 6점을 그리거나 설치했다.


1971년생인 그는 부산대 미술학과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졸업 뒤 8년간 경기도 일산에 살며 작업하다 2009년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입주작가로 부산에 돌아오면서

감천마을 프로젝트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어머니는 플라워 아티스트셨고 아버지는 여성복 디자이너이셨어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니

어릴 때부터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의 외할머니댁에서 많이 살았거든요. 작고 낮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도심 속 작은 마을의 정감이 그때 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작업하면서

그런 공간에서 오는 느낌과 유머, 해학, 위트를 입체회화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제게 중요해졌죠."




■ 산복도로 입체회화로도 유명

'산복도로 아티스트'로서 그의 열정, 성취, 이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사실 입체회화 작품 쪽에서 더 옹골차게 빛을 발한다.

"처음에는 동료 목공예가가 쓰고 남은 나뭇조각으로 입체회화를 시작했어요. 나뭇조각으로 산복도로를

입체공간으로 표현하고, 그 속에 동네사람을 십이지 동물로 표현하고, 산복도로에만 있을 법한 이야기와

 사연을 심었지요."

그렇게 시작한 입체회화 작품 'The Hillside Village' '마을' 등의 연작은 가난한 산복도로를 정겹게 담은 작품,

부산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작품이 되어 그를 부산의 대표급 산복도로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산복도로는 그에게 와서 예술이 됐다.

요즘은 감천문화마을의 오래된 집에서 나온 문지방 같은 나뭇조각의 결을 그대로 살린

산복도로 입체회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나 작가는 지난달 '감천마을 입주작가'가 됐다.

지금까지 감천마을과 산복도로 작업을 많이 했지만, 들어와 살지는 않았다.

최근 이름난 건축가 프란시스코 사닌이 감천문화마을에 지은 '공공의 방'에 입주한 예술가가 바로 나 작가이다.

이제는 감천문화마을 주민이 된 것이다.

"이제 주민들 속에서, 주민과 함께 좀 더 깊이 이곳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작업할 계획입니다."

감천마을 주민이 된 산복도로 아티스트는 새롭게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