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의 확인과 행복한 죽음
삶을 정리하는 글을 받아 보면 어김없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분이 거론된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가장 많으며, 그 외 형제자매, 삼촌과 같은 가까운 친척, 군대나 일터의 선배도 자주 등장한다. 그 가운데 배우자를 지목하는 사람은 드물다.
배우자가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일 터인데도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때문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강조하는, 삶을 정리하는 엔딩노트에는 '배우자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가 있다.
그 글을 통해 용서를 비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이 용서를 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필자는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부터 환자가 가까운 가족에게 보이는 애착, 애증, 분리 등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환자를 돌본 가족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마지막까지 배우자의 손을 놓지 않고 계시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이다.
그 다음은 딸이 엄마를, 아들이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돌보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보내 드린 경험들이다.
배우자는 길고 긴 인생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다(이 동무를 중간에 잃어버린 분도 계시고
애초에 이런 길동무가 없는 분도 계실 것이다.
이런 분들은 오래오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가족을 택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신혼 시절 높았던 만족도는 세월이 가면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중년기인 45세 전후하여 차츰 자녀들이 멀어지면서 둘만 바라보는 일상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비교적 좋은 회복기를 보이는 부부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부부가 지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만족도는 더욱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된다.
그런 일상에 외도나 폭력이 덧붙어지면 부부는 천생배필이 아니라 원수가 되고 만다.
실제로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일을 물으면 남성들은 외도를, 여성들은 잔소리를 꼽는다.
그런데도 부부는 늘그막까지 함께 가야 하고 그것도 거의 30년 이상 더 함께 살아야 한다.
그 때문에 '가족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남은 삶을 더욱 화목하게 보내다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라고 말하고 싶다.
삶의 끝자락인 죽음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누구의 손길 아래에서 숨을 거둘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가족에게 쓰는 편지'에 담을 이야기를 성찰해 보기를 바란다.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는 먼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印象)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이후 결혼 생활과 자녀들이 성장하는 시기들을 단계별로 회상하면서 배우자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잘한 일들을 적고,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들 도 적어보기 바란다.
이런 글쓰기 시간에 실제 많은 학습자는 눈물을 흘린다(때로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라고 외치는 분도
계시지만, 그건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그 눈물을 통해 남은 그들의 일상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이기숙
전 신라대 교수 국제죽음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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