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well-dying)법
'무엇이 인간다운 삶?' 근본적 질문이 앞서야
지난 8일 일명 '웰 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존엄사법'이라고도 불리는 법이다.
지난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와 가족이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 이후 18년 만에 통과됐다.
2018년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본인의 뜻과 가족의 동의 그리고 의사 두 명 이상의 판단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게 된다.
연명 의료 차원에서 진행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등을 환자나 가족이 거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법안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측면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법조계와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시한부 생명이라는 진단과 함께 앞으로 그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신체 기능이 생명연장 의료기기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독한 치료를 계속 받겠는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 보자"는 자세로 가족을 어렵게 만들 것인가.
지난 1975년, 미국의 여성 카렌(21)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무려 10년 동안 물리적 생명만 연장하던 카렌을 지켜보던 가족은
호흡기 치료를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뉴저지 주의 최고 법원은 '품위 있는 죽음과 존엄한 죽음'을 인정했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미국 연방 대법원은 비슷한 사건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오직 환자 자신만이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는 취지가 담긴 판결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환자가 자율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미리 '사전 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절차가 생겨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웰 다잉법과 관련한 시행령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암 환자와 말기 환자(만성 폐쇄성 질환)에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초고령사회, 국가 의료재정의 불균형, 돌봄의 한계를 배경으로 이 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인간다운 삶이냐'는 근본적 질문과 함께 적용되어야 할 법인 것 같다.
이기숙
전 신라대 교수
국제죽음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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