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를 위한 조각공원 사용설명서
봄소풍 떠나듯…사뿐사뿐 걸으며 예술과 마주하다
부산 서구 천마산 전망대. 천마산조각공원은 산 위에 있어 걸어가야 하는데 일단 올라가면 '부산항 특급 전망'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 |
- 조각과 당신 사이에는
- 방해할 무언가가 없다
- 소설·시처럼 문자도 없고
- 공연처럼 기술적 요소도 없다
- 정답 자체가 없는 예술, 조각
- 천마산·을숙도·부산아시아드…
- 따뜻한 봄날 가까운 조각공원서
- 그냥 보고 느끼고 즐기면 된다
봄만한 핑계가 어디 있을까?
제10회 반짝반짝 문화현장은 가볍게, 사뿐하게 가고 싶었다.
왜? 봄이니까.
원래 이때쯤 쓰려고 준비하고, 취재까지 해뒀던 주제를 일단 미루고,
'봄맞이 특집 반짝반짝 문화현장'을 좀 긴급하게 편성하기로 한다.
왜? 놔두면 가버리는 아까운 봄이니까.
(1) 조정 작가의 '아~우~' |
'조각공원'이 먼저 떠올랐다.
'왜 그럴까' 이유를 정리해보니 이렇다.
1. 뭐니뭐니해도 봄에는 나들이다. 조각공원은 야외에 있다.
'봄날 예술나들이'를 하는 데 조각공원은 좋다.
2. 천마산 조각공원(서구), 을숙도조각공원(사하구), 유엔조각공원(남구), 부산시립미술관 마당과 부산 올림픽공원 조각공원(해운대구),
부산아시아드 조각광장(동래구)….
부산에는 조각공원이 그래도 골고루 있는 편이다.
3. 공짜다.
사실은 더 선명한 이유가 있다.
일단 나들이에 나서서 조각 작품 앞에 서면, '조각과 당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소설이나 시처럼 문자라는 매개체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공연예술처럼 기술적인 요소에
많이 제약되지도 않는다.
그냥 당신과 조각뿐이다.
(2) 김영준 작가의 '기억' |
약효 좋은 알약처럼 통째로, 아주 빠르게, 꽤 강렬하게 예술과
대면하고 예술을 체험할 기회를 '봄나들이'를 겸해서 가질 수 있는 곳.
조각공원이다.
조각공원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야~이 작품, 어렵다"이다.
빙고! 맞췄다.
그 말이 맞다.
아무 매개체나 별 설명도 없이 작품만 턱하니 있는
조각상이 쉽게 다가올 리 없다.
특히, 현대예술에 오면 작가가 (예술적) 의도를 갖고 행한 일련의 행위는 거의 모두 그 자체로 예술행위가 된다. 어떤 조각상이 그속에 '정답'을 숨겨놓았고, 관객은 그 정답을 찾아나서는 '게임'이 아니다.
"정답 자체가 없다"는 말이 정답에 좀 더 가깝다.
(3) 이정민 작가의 '상기시키는 힘' |
단순화해서 말하면, 작가가 자기 의도대로 표현해 놓았으니
보는 이 또한 자기 기준과 판단으로 작품을 보고 느끼면 된다.
그래서 "이 작품 어렵다"(어차피 모두 어렵다)며
외면하기보다 좀 마음 편하게 "나는 이 작품을 이렇게 보았어요"라고 하는 게 조각공원 사용설명서에 해당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펼쳐지는 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 맹렬한 탐구정신, '창의력 돋는' 체험이나 감흥.
어쩌면 이것이 현대예술에서는 작품 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당신도 예술가'가 되게 하는 게 현대예술이 하겠다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마산 조각공원으로 향한다.
'봄맞이 조각공원 예술나들이'의 예시를 들 장소로 부산 서구 천마산 조각공원을 골랐다.
(4) 자기철 작가의 '자연으로 회귀' |
이유는 두 세가지 된다.
10년 넘게 주말이면 천마산 조각공원을 다니며
작품들과 친숙해졌다는 개인적 이유가 하나이고,
조각공원뿐 아니라 특급 바다경치까지 갖췄다는 게 두 번째,
부산 원도심·감천문화마을·송도해수욕장 ·이태석 신부 생가 등이 가까워 다양한 문화 나들이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셋째다.
해발 324m 바닷가 산인 천마산의 아늑한 곳에 설치한
조각 작품 45점에 집중해 보자.
'봄기운 충만한' 작품을 중심으로.
사진 (1) 조정 작가의 '아~우~'는 무척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커다란 버선 위에 발칙한 늑대가 있다.
힘 없는 날 저 늑대의 곤두선 털과 빳빳한 꼬리를 보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작품에 관한 설명문에는 해학을 강조했는데, 동의가 잘 안 된다.
이 작품은 '생명력'이다.
봄 같은.
사진 (2) 만물의 기운이 쨍하며 깨어나는 봄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김영준의 '기억'을 뺄 수 없다.
거대한 포크 위에 올라선 고양이의 털은 모두 실제의 포크로 만들었다.
포크로된 털을 가진 고양이라니! 햇빛이 챙강챙강 뽐을 낸다.
사진 (3) 이정민 작가의 '상기시키는 힘'은 몇 년 동안
'내가 꼽은 천마산 조각공원 베스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돌과 쇠 그리고 단순한 배치만으로 저토록 역동성 넘치는 힘, 우주를 담는 상상을 표현하다니.
사진 (4) 자기철 작가의 '자연으로 회귀'는 장소의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저 조각이 빌딩숲 속에 있다면 생뚱맞을 수 있겠는데, 진짜 숲속에 있으니 친근하고 살아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5번, 6번, 7번, 8번…조각공원 봄나들이를 하다 보면 분명해지는 생각이 있다.
"예술문화란 백화점의 상품처럼 소비하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냥 소비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참여해서 향유할 때 비로소 꽃핀다"는 점이다.
저기 있는 조각공원 속으로 들어가서 거닐자, 훨씬 정겹게 예술은 다가왔다.
조봉권 기자 bg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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