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문·예술 강좌는 어쩜 그리 오래가는 걸까
'해피 바이러스' 그 깊은 중독에…16년을 달려온 음악교실
부산 중구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서 열린 제550회 정두환의 화요음악 강좌에서 수강생들이 정두환(왼쪽) 씨와 함께 '550회'를 기념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전민철 기자 |
- 2000년 시작 '정두환 화요강좌'
- 단골학생과 550회 맞아
- 강사 건강 문제로 2년 쉬었지만
- 배움의 열기 꺾이지 않아
- 40대부터 개근했다는 수강생
- 예순넷 되고도 꼬박꼬박 출석
- "배려심 생기고 차분해져요"
- "행복해지고 새로워지는 느낌"
- 삶을 변화시킨 수업 극찬
오세옥(64·여·부산 남구 용호동) 씨는 2000년 9월부터
'정두환의 화요음악 강좌-좋은 음악 & 좋은 만남'(당시 이름은 '정두환의 화요해설음악회')을 수강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매주 화요일 '정두환의 화요음악 강좌'를 들으러 온다.
오 씨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매력이 있기에 '개근'하신 건가요?" 그
런데 그는 해맑게 웃을 뿐 별달리 말이 없다.
곁에 있던 수강생이 "오 여사 집에 가면 16년 전 화요해설음악회 강의자료부터 최근 것까지 보관돼 있다"며 거들어준다.
순간, 그 웃음 자체가 대답이란 걸 깨달았다.
무슨 답변을 더 하시겠는가?
40대였던 2000년부터 60대가 된 지금까지 화요음악 강좌에 꼬박꼬박 참석한 주인공이
이렇게 떡 하니 앉아있는데 그 매력을 굳이 말로 해야 아냐?
질문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 오래간다는 것의 의미는?
오래가는 인문·예술 강좌의 비결을 알아보고 싶었다.
인문·예술 강좌가 오래가야만 좋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기획의도와 목표다.
특강처럼 짧게 판을 펼치는 게 적합한 강좌도 있겠고, 장기 강좌로 이어가야만
기획의도와 목표를 살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문·예술 강좌가 오래간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지표가 된다.
이는 강좌 또는 강사가 내용을 풍부하고 깊이 있게 가꾸는 역량을 갖췄다는 점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나타낸다. 수강생이 인문·예술 강좌를 통해 삶이 더 좋게 바뀌는 체험을 했을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한창때 꽤 세게 불었던 부산의 인문학 바람이 일종의 전환기에 접어든 요즘,
오래 가는 인문·예술 강좌에는 남모르는 비결이 있지 않을까 싶어 더욱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을 두루 고려했을 때, '정두환의 화요음악 강좌'는 먼저 가보고 싶은 현장이었다.
지난달 22일 오후 7시30분 제550회 화요음악 강좌에 맞춰
부산 중구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4층 강의실로 찾아갔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앙드레 류와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의 봄기운 충만한 왈츠 연주,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사계' 여러 버전 연주, 슈페이 양의 '엘가 사랑의 인사' 기타 연주, 행위예술가 요셉 보이스 생명 퍼포먼스, 성민제 성미경 남매의 더블베이스 연주….
'삶을 일깨우는 봄의 노래'를 주제로 한 이날 강좌에서 보고 들은 연주와 음악을
여기에서 요령 있게 간추려 정리할 자신은 없다.
■ 예술 따로 삶 따로가 아니다
열강하고 있는 음악평론가 정두환 씨. |
그런데 선명한 점이 있다.
강좌를 진행한 정두환 해설자가 음악 나열,
음악 해설에 머무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 안에서 끊임없이 삶의 문제를
반추하고 예술정신의 고갱이로 육박하면서 사람과 대화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모습이다.
"앙드레 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은 저 봄빛 드레스를 보세요.
이건 엄청난 기획력입니다. 기획력이란 우연히 툭 던지는 게
아니지요. 본질을 꿰뚫는 힘에서 나오는 게 기획력입니다."
"요셉 보이스의 1982년 생명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키 작은 돌과 묘목 한 그루씩 짝을 지어 7000쌍을 땅에 심는 프로젝트였어요.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길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생명의 경이!"
금세 한 시간 반이 지났고, 강좌가 끝날 즈음 '이렇게 예술로 충만한 시간을 보낸 것도 참 오랜만이다' 싶었다.
20여 명 청중의 얼굴에서 행복감을 본 것 같았다.
정두환 씨는 음악평론가·작곡가·지휘자·철학전공자·음악교사·학교밴드지도자·문화기획자이다.
이를 뭉뚱그려 그는 오래전부터 자기를 '문화유목민'이라 표현했다.
2000년 3월 "음악·철학·예술로 사람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지역문화의 바탕을 다지고자
" 부산문화회관에서 무료로 화요해설음악회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강좌를 하면서
내가 배우고 느끼고 바뀌는 게 더 많아"
지금껏 매주 화요 강좌를 이어오고 있다.
■ 우여곡절 겪으며 보수동 안착
물어볼 것도 없이, 16년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작한 지 6년 만에 부산문화회관이 갑자기 장소를 더는 제공하지 않아 찻집, 음악카페, 대학연구실,
중학교 교사실 등지로 옮겨 다녔죠."
형편이 여의치 않아 1년 남짓한 기간은 매주 화요일이 아닌 '매월 한 차례' 개최로 버텼다.
건강 문제와 개인 정이 겹치면서 2009년 1월부터 2년 반 동안은 강좌를 접었다.
그러다 2011년 1월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 둥지를 틀면서 화요음악 강좌는 부활했고
그 뒤로 한 주도 빠짐없이 무료로 열고 있다.
그건 그렇고, 매주 화요일 저녁 강의실을 채우는 20~30명의 단골 수강생은
어쩌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화요음악 강좌로 몰려오는 걸까?
숱한 인문·예술 강좌가 명멸하는 가운데 여차하면 다른 강좌로 갈아탈 기회는 분명히 많을 텐데.
"저는 기장에 살아요."
얼떨결에 '뭐시라? 기장?' 하고 되물을 뻔했다.
기장에서 보수동까지는 너무 멀지 않나?
최행숙(57·여) 씨가 말을 잇는다.
"3년 전부터 다녔는데 올해는 안 빠지려고 마음 단단히 먹었죠. 강좌가 마음에 와 닿으니 화요일을 기다려요. 최근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공부하다 보니 더더욱 음악을 들어야 제대로 살겠다 싶더라고요. 저희만 듣는 게 아깝고 시민들께 더 알려지면 좋겠어요."
■ 부산 전역에서 오는 단골들
사하구 괴정동에서 오는 김영식(여·78) 씨가 이어받는다.
"모차르트의 생애에 관해 듣고 음악을 들었을 때 참 인상 깊었습니다. 철학·문학·미학을 아우르는 강좌에도
끌리고, 제사를 준비할 때도 클래식 음악을 틀 만큼 음악과 친해진 것도 좋지만 일상생활에서 배려심이 생기고 차분해지는 점이 좋더군요. 무엇보다 16년 세월을 무료로 강좌를 여는 정두환 선생님의 사심 없음이 느껴집디다."
부산진구 양정동에서도 한 말씀. 이순남(여·62) 씨다.
"처음엔 음악 듣고 스트레스 풀자는 얕은 마음으로 왔죠. 그러다 10년째 오고 있네요. 삶이 행복해지고 새로워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친구들한테 권유해서 데려와 보면 몇 번 와보곤 클래식 음악을 못 받아들여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게 안타깝더라고요."
정 씨의 강연 스타일이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무원인 중구 보건소 정순희 과장도 단골이다.
"음악을 통해 부드러운 사회를 만들려는 정두환 씨의 마음을 느껴요."
해운대에 사는 조봉호(57) 씨가 마무리한다.
"서울 살다가 부산으로 왔습니다. 함께 부산 와있던 친구가 서울로 다시 간다고 해서 '너랑 추억 한 번 만들자'하고 온 게 이 강좌예요. 첫 느낌이 좋아 친구한테 '100번만 더 들어보겠다'고 했어요. 그 뒤 친구는 서울 가고 저는 부산 남아 5년째 나오고 있죠."
그것이 오래가는 인문·예술 강좌의 비결인지 결과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단골 수강생 인터뷰로 알게 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이들은 자기 삶에서 변화를 체험했다는 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삶의 변화 체험이 바로 오래가는 인문·예술 강좌의 비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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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 기자 bg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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