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문화현장]
'제18회 부산독립영화제'
'감독'호칭 낯선 독립영화 감독들, 지난한 작업임에도 열정은 '프로'
'그들만의 무대'지만 그들을 응원할 이유
- 지난 22일 5일간의 축제 마무리
- 100편 이상 출품 양적 성장 확인
- 올해 대상 '시험 후' 김나영 감독
- 16회 본선, 17회 심사위특별상
- 영화제가 낳고 키운 영화인
- 현실복제·소수자 극단적 설정 등
- '치열한 고민 실종' 혹평 과제로
- 최용석 집행위원장 "총평 공감"
- 독립영화 격려·지원은 계속
상영관의 공기는 조금 상기된 듯했다.
대부분 감독·배우의 가족과 친구로 보이는 관객은
스크린에 내가 아는 누군가의 영화가 걸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간간이 혼자 앉아 작심한 듯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도 보였다.
이런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감독과의 대화'(GV)에서 꼭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수영만 시네마테크 시절부터 영화 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못했는데요…"로 시작하는, 이루지 못한 꿈을 신인 감독들에게 투영하는 질문을. '감독님'이라는 호칭조차 어색해하는 감독들은 조심조심, 때로는 엉뚱할 만큼 솔직하게 답변을 내놨다.
모든 것이 설익고 낯선, 그러나 영화에 대한 생각만은 진지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제18회 부산독립영화제의 경쟁 부문 '관객과의 대화'(GV)에서 한 영화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
■ 영화로 모인 사람들
'제18회 부산독립영화제'는 그렇게 지난 18일 개막해 22일 폐막했다.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경쟁 부문에서 24편(예선 105편 접수)이 상영됐고,
부산에서 찍은 독립장편영화가 4편 소개됐다.
부산에서 독립영화를 찍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긴 감독들의 작품이 4편, 대구 대전 전북 인천 광주에서 온 영화 5편, 그리고 일본(후쿠오카) 스코틀랜드 대만 불가리아 영국 등지에서 14편이 왔다.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문정현 감독은 '딥포커스' 섹션의 주인공으로 선정돼 작품 6편을 선보였다.
'독립영화'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지만, 핵심은 '자본 독립'에 있다.
산업으로서 영화처럼 대형 제작·투자·배급사를 통해 만들어지며 수익을 내기 위한 공식에 대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규모는 작지만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담아낸 영화를 보통 '독립영화'로 부른다.
물론 재정적 지원을 원했으나,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영화는 투박하거나, 거칠거나,
서툴 수 있지만 자유롭고, 살아있고, 맹렬하다.
영화제의 목적은 이 같은 원석을 발굴하는 것이다.
영화 하나만 바라보며 외롭게 작업하는 감독들을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를 통해 부산 독립영화의 토양은 깊고 풍부해진다.
18회를 맞은 영화제가 최근 3년 연속 100편 이상 출품작을 받을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행사를 주최한 부산독립영화협회 측은 "자그마한 장이지만 끈질기게 버텨가는 감독을 발굴하고 지지해 온 자리"라며 "영화제를 통해 발굴한 감독들의 의미있는 성과가 갈수록 쌓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 여성 감독의 약진과 다큐의 힘
영화 '시험 후'를 출품한 김나영(오른쪽) 감독이 지난 22일 폐막식에서 올해 부산단편영화제 대상을 받고 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제공 |
최근 몇 년 부산 독립영화계에서 눈에 띄는 성과는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다.
올해 부산독립영화제 대상은 '시험 후'를 만든
부산의 김나영 감독에게 돌아갔다.
김 감독은 2년 전인 제16회 때 경쟁 부문 본선에 진출하고, 지난해
제17회 때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아 3년 연속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시험 후'는 고교 시절부터 단짝인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영화를 보다 잠이 든 후 과거와 현재, 영화와 현실을 유영하듯 넘나드는 모습을 표현했다.
김 감독은 "실제로 영화를 보다가 졸면서 꿈과 과거가 섞여 들어가던 경험을 하곤 했는데
재밌었던 기억이라 담아냈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후원회에서 지원하는 '부산 옴니버스 단편영화 제작지원'에 선정된 감독 세 명도
모두 여성이었다.
지난해 대상을 받은 최정문 감독, 올해 경쟁부문에 진출한 배연희 감독, 부산독립장편영화에 초청된
김수정 감독이다.
이들은 각 400만 원씩 지원받아 같은 주제로 단편 영화를 만들어 내년 19회 독립영화제에서
옴니버스 영화로 선보인다.
2014년(윤지수 감독)부터 독립영화제 대상은 모두 여성감독이 거머쥐었다.
부산독립영화제 최용석 공동집행위원장은 "여성의 활약이 무척 두드러진다. 의미 있는 작업을 활발히 한다. 이번에 우리 지역에서 오랜만에 나온 장편극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도 김수정 감독의 작품으로,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 작품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인호 영화평론가는 "여성이라서 더 섬세하다거나, 시선이 따뜻하다기보다는 개인의 역량 문제"라며
"영화를 공부하는 여성들은 예전에도 적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영화계에 남아있기에 힘든 구조는 여전히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을 넘어 전국으로 진출하는 다큐멘터리 부문의 저력도 독립영화제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올해 개막작인 '할매-서랍'은 김지곤 감독이 2011년 '할매'를 만들어 제13회부산독립영화제에서 선보인 후 만든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동안 할매 시리즈는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부산독립장편영화부문에 초청된 박배일 감독 또한 노동 현장을 성실하게 기록해 서울인권영화제,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 느낀 부산 영화계의 과제
그럼에도, 올해 심사위원단은 작심한 듯 영화제에 냉정한 평가를 남겼다. 일부 의미있는 성과와 양적 성장이 있었음에도 전반적인 질적 저하는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주류 극영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치열한 고민이 실종'됐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출품작의 70~80%가 부산 지역 대학교 영화 관련 학과 학생들의 것인 만큼, 이런 현상은 대학과 교수의 책임도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심을 맡은 박인호 영화평론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충분히 고심하지 않은 채 현실을 게으르게 복제하는 데 그치는 작품이 많았고, 소수자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설정해 영화적 재료로 수단화하는 모습은 특히 우려스러웠다"며 "영화를 보고 고민하는 태도를 바르게 잡아주지 못하는 교육 현장에 큰 원인이 있다는 의견이 심사 과정에서 많았다"고 지적했다.
수상자 가운데는 대학 영화학과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대상을 받은 김나영 감독은 영화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가 그만두고 워크숍에서 영화를 배웠다. 한 영화인은 "영화학과 학생들이 오히려 영화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고, 절박함이나 치열함이 덜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삶의 치열함보다는 개인적이고 소소한 문제를 소재로 활용하는 분위기에 대한 걱정도 나왔다. 박 평론가는 "청춘들의 치열함이 아쉬웠다. 학생들이 시선과 태도를 제대로 갖추도록 영화학과 등 교육 주체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총평을 전했다.
최용석 공동집행위원장은 "심사위원단의 총평에 공감한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어쨌든 부산의 독립영화에 대한 응원과 지원은 부산독립영화제를 통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독립영화가 낯선 대중을 위해 내년 영화제는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참여의 기회도 크게 늘리려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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