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문화현장] 건축가 오신욱의 ‘비꼴로’
방치된 판잣집의 변신… 골목길 옆 문화공간, 초량의 #핫플 되다
- 설계자이자 건축주인 오 대표
- 마을 연결하는 비탈길에 반해
- 건물의 일부 혹은 골목의 확장
-‘관계의 철학’ 담은 건물 지어
- 1·2층은 건축·갤러리 카페
- 3·4층은 게스트하우스 위탁
- 도시건축포럼·건축가의 밥상 등
- 다양한 장르 강연·세미나 열려
- “언제든 누구나 초량을 찾으면
- 부산의 문화 느끼도록 하고파”
부산의 관문 ‘초량’이 즐거워지고 있다.
‘산복도로’로 상징되던 동네가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옛 백제병원 내부를 거의 손대지 않고 들어선 부산역 앞 빈티지 카페 ‘브라운핸즈’,
일본식 옛 가옥을 우유 카페로 변신시킨 ‘초량 1941’, 부산항이 보이는 이바구길과 모노레일은
이미 ‘블로그 스타’다.
여기에 한 곳을 더 보태야 할 것 같다.
초량 핫 플레이스에 도전장을 내민 복합문화공간 ‘비꼴로’다.
■ ‘비꼴로’
건축 스토리‘비꼴로’(Vicolo)는 부산역 앞의 부산 차이나타운(동구 초량동) 상해거리 바로 뒤
골목에 자리 잡은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이자, 이 건물에 들어선 카페 이름이다.
비꼴로는 이탈리아 말로 뒷길, 샛길, 골목길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주위에는 골목길 식당, 미용실, 공인중개사무소 등이 섞여 있는데,
왠지 건축주가 궁금해지는 세련된 외관의 4층 건물이다.
비꼴로의 설계자이자 건축주는 오신욱(47) 라움 건축사무소 대표다.
2013년 부산 신인건축가상, 2015년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 등을 수상한
실력 있는 건축가이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건축문화를 알리는 예술가다.
그가 스스로 건축주가 돼 비꼴로를 짓고,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오 대표는 2015년 비꼴로와 멀지 않은 곳에
‘초량도시민박(모닝듀)’ 건물 설계를 의뢰받았다.
최근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작품이다.
공사를 하는 동안 초량을 자주 오가다 건물을 발견했다.
적산가옥과 비슷한 형태의 1960년대 판잣집인데, 10년간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돼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오 대표의 눈을 사로잡은 건 건물 왼편의 ‘골목’이었다.
비탈길을 따라 첩첩이 들어선 마을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통행로다.
골목에 반해서 10분도 고민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그 건물을 계약했다.
“참 정겹고 예뻤어요.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과거 골목 위쪽에 부산에 정착한 화교들의 사당이 있었다고 해요. 화교들이 사당을 오가는 길이었죠. 지금은 윗동네 주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이용하는 길이에요.
유동인구가 하루 1000명 이상입니다.”
오 대표는 신축 건물과 기존의땅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건축가로서 지향하는 건축철학을 대중에게 보여준 것이다.
대지 면적이 53㎡로 건물 한 채를 짓기에도 빠듯한 규모였지만,
일부를 골목에 내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존 골목길을 손봤다.
“공사를 시작할 때는 그냥 비탈길이었어요.
손을 보기 시작하니 돌계단이 나오더군요.
시멘트를 걷어내고 20여 개의 돌계단을 복원했어요.
비탈길을 위태롭게 다니던 할머니들이 지금은 우리 건물을 잡고
좀 편하게 다니십니다. 돈은 많이 들었어요.(웃음)”.
건물은 골목의 확장이었고, 골목은 건물의 일부가 됐다.
6개월 공사 끝에 지난해 11월 건물이 완공됐다.
건물 폭이 4m밖에 되지 않는 협소 주택이다.
네 개 층을 합해도 133.08㎡로 여느 건물 한 층도 되지 않는 소박한 규모다. 외부 벽면은 노출 콘크리트 시공으로 비용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조용한 동네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진다.
일부만 하얀색 알루미늄 루버로 장식해 세련됨을 가미했다.
거미줄처럼 늘어진 공중의 전선을 최대한 피해 창을 냈다.
■ #갤러리카페 #건축카페 #편집공간
처음엔 일정 기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다 임대를 줄 생각이었다.
오픈 직후 부산 미술작가 28명을 초청해 ‘집들이 전’을 개최했고,
건축 관련 행사 공간으로 사용했다.
전시나 행사가 없을 땐 비워뒀다.
그러다 지난 5월부터 1·2층은 직접 커피숍을 운영하고,
3·4층은 게스트하우스 위탁을 맡겼다.
“건축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소통하는 베이스캠프를 항상 꿈꿨어요. 지역 재생 차원에서도 뭔가 기여하고 싶었죠.
여기서 해보자, 이 공간을 기꺼이 기부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층은 오 대표가 설계한 건물의 모형과 사진을 설치한 ‘건축 카페’,
2층은 미술 작가 작품을 전시하고 파는 ‘갤러리 카페’다.
김대홍 김성철 박재현 이정윤 등
부산의 실력 있는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어 주인의 안목을 짐작게 한다.
한 달에 고정적으로 열리는 문화행사는 4, 5개 정도다.
디자이너들과 문화단체 ‘보따리’가 정기적으로 공간을 활용한다.
다양한 장르의 1회성 강연과 세미나도 수시로 열린다.
오 대표가 회장을 맡은 ‘도시건축포럼B’도 올해 모든 행사를 이곳에서 연다.
특히 월요일 오후 7시 시작하는 ‘건축가의 밥상’ 행사가 재미있다.
오 대표가 셰프로 나서 참가자에게 요리를 대접하고 건축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벌써 두 달째 진행됐다.
요리에 취미가 없었지만 지금은 제법 맛있는 파스타와 샐러드를 내놓는다.
지금까지 건축설계사무소, 건설회사, 사진가, 연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오 대표가 끝내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동종 업계의 ‘무관심’이다. “부산의 건축인, 미술인들이 모이면 항상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어요.
제가 문화공간을 만들면 적극적으로 이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참여하고 지원하려는 사람이 드뭅니다.
오히려 서울 쪽에서 일부러 와서 보고 가서는, 부산에서 행사를 열면 꼭 비꼴로를 활용하려고 해요.
부산에서도 비꼴로를 마음껏 활용해도 되는데, 제대로 누리지 않아 힘이 빠질 때가 있어요.”
아직 운영은 큰 폭의 적자이지만,
오 대표는 다양한 문화 관련 행사로 꽉 차는 ‘편집 공간’을 꿈꾼다.
서울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유명인의 강연, 외국에 가야 볼 수 있는 행사가
1년에 하루라도 비꼴로에서 열려 1년 365일 스케줄이 빡빡하기를 바란다. 당장은 고정 문화행사가 현재 5개에서 15개로 느는 것이 목표다.
“처음부터 돈 벌 생각은 아니었죠. 카페 직원 인건비만 충당할 정도면 돼요. 대신 초량이 문화로 재생되길 바랍니다. 같은 뜻을 가진 건축인들이
주변에 비꼴로와 비슷한 문화 공간을 기획하고 있어요.
주민은 언제라도 비꼴로를 찾으면 재미있고 실용적인 행사를 경험할 수 있고,
부산역에 도착한 외지인들이 잠시라도 초량에서 부산의 문화를 느끼고 갔으면 좋겠습니다.”(051) 466-4805
박정민 기자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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