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어림산’

금산금산 2017. 12. 12. 19:50

경주 '어림산'




봉우리 넘고 넘어 마침내 정상…인생살이와 닮았다

안강읍 화곡저수지서 출발하는 새 코스 소개

잦은 오르내림으로 산세 비해 힘은 꽤 들어

총 구간 15㎞, 걷는 시간만 6시간 30분 걸려

패랭이꽃 등 야생화 천국… 한국전쟁 상흔도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중략)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중략)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경주 어림산은 야트막하지만 십여개의 봉우리를 넘고 나서야 정상을 허락하는 만만찮은 산이다. 취재팀이 하산 도중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정상을 바라 본다.

지난 1980년대 김민기 씨가 만들고 부른 '봉우리'라는 노래의

 노랫말 중 일부라는 것쯤은 아실테다.

근교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행지를 잡고 가다보면

 저절로 이 '봉우리'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 봉우리가 제일 높을 줄 알았는데

 올라보면 저만치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또 다시 조금 더 높은 봉우리에 오르면 더 높은 봉우리가 또 나타나고….



이 노래가 내포하고 있는 본래의 의미는 화려하고 높은 고지(욕망)만

 좇아가는 세태에 대해 나즈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경고음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낮고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열심히 땀흘리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진정으로 높고 고귀한 것임을 역설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노랫말을 단순히 근교산행에 대입시켜 봤을때도 그 의미가 크게 훼손되지는 않는 듯하다.



경주 안강읍의 어림산(御臨山·510.4m) 코스를 정의할 때

 바로 이 노랫말과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해발 200~400m 밖에 안되지만 나름대로 저마다의 존재감을 간직한 크고 작은 봉우리 11개를 넘어야만

 비로소 해발 500m를 조금 넘는 정상에 설 수 있다.

아주 한적한 코스에 하수오와 패랭이꽃, 은방울꽃, 삿갓나물꽃 등

 갖가지 야생화와 야생초가 만발한 자연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 참나무 숲 사이로 난, 의외로 잘 닦인 등산로는 융단같은 낙엽으로 덮여 걷는 이의 발길을 편안하게 해준다.



   
GPS 트랙 / 트랙 jpg파일

빼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사실 하나.

어림산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펼친

 필사의 전투로 기록돼 있는 '안강전투'의 아픔을 간직한

 민족사적 비극의 현장이라는 점도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낙동정맥 종주 구간중 일부이기도 한 어림산 주변에는

 국립묘지인 영천호국원도 자리하고 있어

  국가와 민족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며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번 산행의 전체적인 코스는

 경주시 안강읍 두류2리 두류교회 뒤 삼거리(들머리)~갈림길~

  안동 권씨 묘~248m봉~230m봉~담부동재~241m봉~271m봉~

   264m봉~380m봉~458m봉~394.4m(삼각점)봉~381m봉~

    424m봉(철탑)~대밭~내태재~철탑~507m봉(낙동정맥길 합류)~

     어림산 정상~갈림길~철탑~301m봉~갈림길(낙동정맥 이탈)~

      철탑~ 진주 강씨 묘~보현사로 이어지는 15.1㎞다.

짧지 않은 코스이기도 하지만 오르락 내리락을 많이 하다 보니

 산행시간은 걷는 시간만 6시간30분이 걸린다.

그래도 여름철 한 나절 산행하기에 큰 무리는 없다.



들머리인 두류교회 뒤의 삼거리는 말이 삼거리이지 좁은 콘크리트 포장 도로다.

하곡저수지 둑을 바라보며 이 포장도로를 따라 30m가량 가면 왼쪽 산 능선으로 붙는 등산로 초입이 보인다.

능선을 치고 오르면 널따랗고 푸근한 길이 이어진다.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밸 즈음이면 능선 오른쪽 아래로

 드넓은 하곡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금방이라도 풍덩 뛰어들고 싶어진다.

10분 후 무덤을 지나고 연이어 안동 권씨 묘를 거쳐 5분 정도 더 가면 무덤이 또 하나 있다.

살짝 내려서면 안부 갈림길이다.

약간 된비알을 올라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본격적인 내리막과 오르막의 끝없는 연속이다.

10분 뒤 무덤 3개가 직선으로 배치된 안동 권씨 묘를 지나고 오르막을 더 오르면 248m봉이다.

이어서 10분 뒤 230m봉. 살짝 내려서면 담부동재라고 불리는 안부 고개를 지나 10분 만에 241m봉을 넘고

 또 다시 12분 후에는 청안 이씨 묘가 있는 삼거리인 271m봉이다.

무덤 가에 꽃잎 5개가 달린 예쁘고 앙증맞은 패랭이꽃 수십 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무덤 가에 핀 패랭이꽃을 볼 때면 생각나는 시(詩)가 있다.

1980년대 후반 발표됐던 도종환 시인의 '당신의 무덤 가에'라는 작품이다.


당신의 무덤 가에 패랭이꽃 두고 오면

당신은 구름으로 시루봉 넘어 날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앞에 소지 한 장 올리고 오면

당신은 초저녁별을 들고 내 뒤를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가에 노래 한 줄 남기고 오면

당신은 풀벌레 울음으로 문간까지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위에 눈물 한 올 던지고 오면

당신은 빗줄기 되어 속살에 젖어오네.




   
어림산 산행 도중 자주 만날 수 있는 패랭이꽃.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시인은 지병으로 숨진 부인의 묘를 매주 찾으며

 쓴 시를 묶어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냈는데

  말 그대로 '빅히트'였으니 아는 이도 많을 테다.

애틋한 감정도 잠시, 시박천 계곡으로 떨어지는 오른쪽 길이 아니라

 주산행로인 왼쪽 길을 택해 또 한번 내리막을 타는데 취재팀 중 한 명이 "야, '하수오'가 다 있네. 이것은 진짜 귀한 약초거든. 특히 흰머리를 검게 해 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라며 한 뿌리를 캐낸다. 하지만 산에 약초 캐러 온 것은 아니니 계속 직진.


안부를 거쳐 경사진 길을 오르면 264m 봉우리다.

청안 이씨 무덤 지나 만나는 갈림길을 통과해 15분가량 오르막을 타면 380m봉이다.

도대체 몇 개를 넘었는지 셀 수조차 없던 것 같던 여러 개의 200m대 봉우리에서 벗어나

 300m대로 고도를 살짝 높인 것이다.

이 봉우리 주변에는 청정 산매실이 많아 취재팀 중 일부가 몇개를 따 보기도 했지만,

 "어서 가자"고 보채는 나머지 일행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따라 나선다.



평평하던 길이 경사가 급해지면서 15분 후 458m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취재팀은 오른쪽 직각으로 꺾어 내태재를 향한다.

그런데 이 봉우리에서 우회전 한 뒤 200m 정도 내리막을 타면

 안부처럼 보이는 평평한 곳에 닿는데 길찾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직진해야 할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른쪽 1시 방향 내리막 능선을 타야 제대로 된 코스다.

촘촘하게 '근교산 리본'을 달아 놓았으니 참고하자.

리본을 따라 가다보면 10여분 후 안동 권씨 묘를 지나는데 이번엔 무덤 주위에 은방울꽃 군락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다녀 갔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어림산은

 사실은 야생화의 별천지였던 듯 하다.



   
어림산 코스에는 인적은 드물어도 걷기에 좋은 길이 많다.

은방울꽃 군락지를 벗어나 50m가량 가면

 길이 약간 오른쪽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안부를 지나 10분 후 삼각점이 있는 394.4m봉을 만나고

 100m후에 갈림길도 통과한다.

오른쪽 내리막은 시박천 골짜기 최상류로 내려서는 길이다.

직진해 능선을 타고 된비알을 20분 정도 오르면 철탑이 서 있는 424m봉. 공사로 인해 봉우리가 많이 해쳐졌는데 덕분에 조망이 시원하다.

그렇게도 잘 보이지 않던 어림산 정상이 마침내 남서쪽에 우뚝 솟아나

 있고 동쪽으로는 금곡산(521m)과 그 뒤로 무릉산까지 보인다.

남쪽으로 난 길로 100m가량 내려서면 안부에서 직진해 다음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 내리막을 탄다.

직진해 봉우리를 오르면 금곡산으로 향하게 된다.

내리막을 타면 12분 후 대나무밭을 만나는데 이 곳에서 또 한번 길찾기에 주의하자.



일단 대밭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10여m 후에 잘 닦인 정면길이 아니라 왼쪽 샛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래야만 10분 후 내태재에 닿을 수 있다.

내태재에서는 오른쪽에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모습이 보인다.

임도를 가로질러 정면 오르막을 치면 곧바로 철탑이 나오고 이때부터는 꾹 참고 오르막을 타야한다.

어느새 해발 200m대까지 내려왔던 것인데 다시 500m대까지 치고 올라야 하니 땀이 비오듯 한다.

35분 정도 치고 오르면 해발 507m의 봉우리에 닿는데 이곳부터 낙동정맥 종주 구간에 합류하게 된다.

그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던 산악회 안내 리본들이 갑자기 확 늘어나는 것이

 역시 낙동정맥 구간에 들어섰음을 실감케 한다.

오른쪽(북쪽)으로 150m만 가면 어림산 정상이다.

들머리에서 10.5㎞ 지점.

삼각점과 나무에 붙은 작은 푯말만 있을 뿐 조망도 별로여서 정상 치고는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봉우리'의 노랫말처럼 높고 화려하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낮고 초라해 보인다고 덜 아름다운 것도 아니니 그저 자연의 일부로서 하나됨에 감사할 뿐이다.



   
취재팀이 내태재 못미친 곳에서 산행로를 확인중이다.

하산길은 북쪽으로 낙동정맥길을 따른다.

200여m가면 Y자 갈림길이 있는데

 좀 더 큰 능선으로 보이는 왼쪽 길을 택하자.


계속되는 낙동정맥길 내리막.

정상에서 20분가량 내려 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무덤 있는 방향이 아니라 오른쪽 길을 택한다.

7분 후 철탑을 지나고 안부 갈림길을 거쳐 직진,

 살짝 오르막을 치면 301m봉이다.

이제 8분 후 갈림길에서는 낙동정맥길을 버리고 오른쪽 내리막 능선을 탄다.

\좀 더 멀리로는 어림산 정상과 그 주변의 산봉들이 그려내는 하늘금이 선명하다.

철탑이 있는 공터에서는 왼쪽 끝 부분으로 난 길을 따라 하산한다.

7분 후 무덤 3개를 지나고 다시 10분 후에는 진주 강씨묘를 거쳐 좀 더 내려오다

 좌우 2개의 무덤 중 오른쪽 무덤쪽으로 내려선 뒤 의성 김씨 묘를 지나면 곧바로 마을 뒷길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작은 절집인 보현사.

오늘 산행의 날머리다.

행정구역상 경주시 안강읍 강교2리인 이 마을 길을 걷는데 어느 집 앞에 잘 자란 접시꽃이 탐스럽다.

감탄하는 취재팀에게 한 할머니가 "집 안에 가면 더 귀한 꽃이 많아. 보여주랴"며 따라오라고 한다.

염치불구, 작은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이름도 낯선 갖가지 화초들이 마당 한쪽에 줄지어 선 화분마다 가득하다. '접시꽃 당신'같이 곱디 고운 할머니의 배려에 감사함을 전하며 마을을 떠났다.





◆ 떠나기 전에

- 남북 분단의 아픈 역사 간직한 산
- 인근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 둘러볼 만



경주 안강의 어림산은 한국전쟁 발발 첫 해인 1950년 8~9월 사이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려던

 북한군 제12사단 병력을 맞아 국군 제1군단과 3사단이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던 현장 중 하나다.

경북 칠곡의 다부동전투와 함께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위한 혈전으로 기록돼 있는 '안강전투'에는

 특히 100명이 채 안되는 학도의용군들이 참전해 대부분 산화하는,

  민족적 비극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림산은 이미 한국전쟁 발발 반년 전인 1950년 1월에 소위 '빨치산'으로 표현되는 북한 추종 유격대가

 국군 토벌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쌍방 간 수백 명 이상이 운명을 달리한 곳으로서

  치열한 남북 간 이념대결이 빚어낸 아픔을 머금고 있는 곳이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어림산 산행을 한다면 꽃같은 청춘들이 흘린 피에 대해서만은 한번쯤 생각을 하며 걷자.



한편 들머리인 두류리에서 계곡을 타고 좀 더 들어가면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경북문화재 제97호)가 있는데 신라시대 화랑도의 정신으로 표현되는 세속오계를 만든 고승 원광법사를 기리는 부도다.

둘러 볼 만하다.




◆ 교통편

- 경주버스터미널서 두류리행 버스 이용
- 자가용 이용 땐 건천IC서 20번 국도로


부산 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경주버스터미널까지는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경주터미널에서 산행들머리인 두류교회 뒤 삼거리까지 가는 206번 버스가 하루 5차례 운행되는데

 오전 5시40분, 8시20분, 11시10분 등에 출발한다.


날머리인 강교2리 보현사 앞에서는 오후 3시20분과 오후 6시20분에 경주로 가는 208번 버스를 탈 수 있다.

1시간 1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건천IC에서 내려 좌회전한 후 포항방면 20번 국도를 타고 가다

 안강에서 영천방면 28번 국도로 옮겨탄 뒤

  옥산리 옥산서원 입구를 지나 하곡저수지 못미친 두류리 입구에서 좌회전, 두류리로 들어간다.

오른쪽 저수지 둑을 보면서 소로를 타고 들어가면 두류교회 뒤 삼거리에 닿는데

 승용차 5~6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산행 후 차량 회수를 위해서는 208번 버스나 안강의 월성택시(054-763-4500)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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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

    GPS 도움=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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