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서 [청동기 고인돌] '유적' 대거 발굴
대성동·동성동 주택가 땅속서 간돌칼·붉은 간토기 등 출토…집단매장지였을 가능성 높아
- 인근서 김해읍성 유적도 확인
- 시, 유적보전·추가발굴 검토
경남 김해 대성동 일대에 청동기 시대 고인돌 군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주변 지역이 당시 집단 매장지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금관가야의 고장인 김해에 과거부터 강력한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추가 발굴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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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청동기시대 유적- 최근 한 민간 발굴기관인 (재)강산문화연구원에 의해 김해시 대성동 일대 주택가 부지에서 대량으로 발굴된 고인돌 유적지 모습.고인돌 6기,돌널무덤 1기가 발굴돼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해시 제공 |
(재)강산문화연구원이 2월부터 최근까지 대성동과 동상동 일대 주택가 부지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 고인돌 유적과 조선 시대 읍성의 치성(공격용 돌출 구조)기단이 잇따라 발굴됐다고 2일 밝혔다.
청동기 유적은 대성동 일대에서 고인돌 6기, 돌널무덤 1기 등 모두 7기가 발굴됐다.
고인돌 내부에서는 간돌칼과 간화살촉, 붉은 간토기(홍도 紅陶) 등이 출토됐다.
여기서 200m 떨어진 곳에 서상동 고인돌(경남도기념물 제4호) 유적지가 있어
이 일대가 과거 청동기 시대 집단매장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800년대 제작된 김해부내지도에도 고인돌 6기가 그려져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연구원 측은 금관가야 이전 시대에도 이처럼 강력한 집단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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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내부에서 출토된 간돌칼. |
강산문화연구원 조상훈 조사실장은 “김해가 예부터 시대별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였음을 입증해주는 발굴”이라며
“주변 주택가 아래에 고인돌 등 많은 청동기 유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추가 발굴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주변지역인 동상동 김해읍성 유적지에서도
최근 (재)해동문화재연구원에 의해 해자와 치성기단이 발굴됐다.
현재 이곳에는 김해시에 의해 북문과 옹성 일부가 복원된 상태다.
치성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들을 막는 시설물이다.
김해읍성의 치성은 김해부내지도 등 고지도에 그려져 있지만 존재가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10년대부터 일제의 읍성 철거정책에 따라 김해읍성 역시 파괴돼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조사 결과 남아 있는 치성의 기단석은 2~4단이고, 평면 형태는 정사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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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읍성 유적지에 나온 치성 유구 모습. |
김해시 관계자는 “가야사가 재조명되는 가운데 금관가야의 땅에서
다양한 역사 유물이 쏟아져 나와 흥분된다”며 “앞으로 유적지 보전과
추가 발굴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동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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