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유해 고향 통영 이전, 독일 베를린시 적극 협조 약속
부인 이수자 여사 애타는 호소에 긍정적 답변 외교부로 보내와
통영시, TF구성·이장 진행 예정…원래 있던 자리엔 기념표석 설치
“저의 마지막 소원은 남편의 묘소가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이장돼
제가 죽어서라도 남편 옆에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간절히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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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의 윤이상 선생의 묘소. 옆에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방문 때 동행한 김정숙 여사가 통영에서 갖고가 심은 동백나무가 눈에 띈다. 통영시 제공 |
행간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독일 베를린에 있는 남편인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가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이장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는 편지를 쓴 이수자(91) 여사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베를린시가 긍정적인 답변을 외교부를 통해 전달했다는 사실이 18일 확인됐기 때문이다.
통영시는 정식 공문을 받는 대로 윤 선생의 묘지 이장 TF를 구성하고 이장 절차를 본격 진행할 방침이다.
독일 현지 이장 과정에는 선생의 딸 윤정 씨도 동행할 예정이다.
베를린 묘소는 이장하되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묻혔던 곳’이라는 기념 표석을 세울 방침이다.
최근 이 여사는 외교부에 남편의 묘소를 통영으로 모시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내용의 친필 서한을 썼다.
이 서한은 외교부를 통해 주한 독일대사관을 거쳐 베를린시장에게 전달됐다.
윤 선생의 묘지 이장과 관련된 통영시의 협조 공문도 함께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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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이상 선생 (왼쪽), 부인 이수자 여사 |
이 여사는 편지에서 “1995년 저의 남편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후 독일 정부와 베를린시에서
위대한 유산을 남긴 인물을 안장한다는 가토우공원 특별묘지를 20년 넘게 한결같이 관리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고마움을 먼저 전했다.
이어 “저희 모녀는 2010년부터 남편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통영에 보금자리를 잡아 베를린에는 아무도
묘지를 관리할 가족이 없다. 이제 90이 넘어 남편이 보고 싶어도 기력이 떨어져 베를린까지 갈 수 없다”고 했다. 이 여사는 “다행히 통영시에서 윤이상 선생을 고향으로 모셔온다면 고인이 평소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고향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모실 계획이라고 하니
부디 마지막 소원인 남편의 묘소가 이장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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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선생 묘소. |
동양의 정신을 독특한 선율로 표현해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칭송을 듣고 있지만
윤이상 선생은 고국에서는 동백림사건과 연루된 이념적 논쟁에 휘말려
결국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상처 입은 용 ’으로 남아 있다.
선생은 생전 베를린에서 늘 고향 통영을 그리워했다.
마지막을 예감한 선생은 1994년 일본에 와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를 먼발치서 보고 울며 돌아갔고
이듬해 11월 베를린에서 영면했다.
박현철 기자 phc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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