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바다]

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5> 북형제섬

금산금산 2013. 3. 23. 08:57

 

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5> 북형제섬

자리돔 '제2의 고향' 부산서 환상의 수중향연 펼치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놀라 흩어졌던 자리돔들이 다시금 모여들고 있다.

- 쿠로시오난류 타고 제주도서 부산으로
- 인간 피해 먹이 풍부한 청정 해조류숲 정착
- 바닥면엔 곤봉바다딸기 군집 '바다 꽃밭' 형성
- 얕은 수심대 메운 해조류 군락·소라떼도 장관

부산에 마흔 두 개나 되는 무인도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 숲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360만 명의 도시인들에게 무인도는 생소하다 못해 낭만적이다. 그래서일까, 꼭 탐험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무인도로 향하는 상상을 해본다.

   
무인도가 가진 낭만은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에서도 물씬 묻어난다. 이 중 가장 정감 있는 곳 중 하나가 부산 사하구의 형제섬이다. 형제섬은 육지와 동떨어진 거칠고 외로운 바다에 형제처럼 서로 의지한 채 붙어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북쪽에 위치한 북형제섬과 남쪽에 있는 남형제섬으로 구분된다. 감천항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1시간 정도 항해하면 먼저 마주치는 곳이 북형제섬이고 여기에서 20분 정도 더 떨어진 곳이 남형제섬이다. 사하구 어업지도선의 협조로 탐사한 북형제섬의 수중생태계를 소개한다.

■제주도가 고향인 자리돔 부산까지 온 이유는

   
"박 기자 이쯤이 좋겠는데~."

어업지도선 박봉율 선장이 어군탐지기를 가리킨다. 어군탐지기는 선박 밑에 붙어 초음파를 쏘아 물고기 떼를 찾아주는 장비인데 기본적으로 바다 지형과 수심이 함께 표시된다. 북형제섬에 가까워지면서 40~50m 정도를 가리키던 수심계가 본섬 옆에 있는 여 쪽으로 붙으면서는 20m 안팎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바닥면의 지형도 거친 산봉우리를 연상하듯 삐죽삐죽하게 돌출된 암반 형태이다. 평탄한 바닥면보다 거칠게 돌출된 암반에는 바다생물들이 보금자리를 틀기가 쉬워 관찰을 목적으로 하는 수중탐사로는 최적지이다.

조타실에서 나와 바다를 보니 너울성 파도와 강한 조류가 뱃전을 때린다. 북형제섬은 외해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어 조류가 있는 날 바람까지 강하면 4m가 넘는 너울성 파도가 인다. 2006년 이곳에서 8명의 낚시꾼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불귀의 객이 된 후 낚시꾼들은 북형제섬을 '마의 섬'이라 부른다. 조류가 강한 바다에서는 배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빠른 속도로 잠강해서 바닥면에 납작 붙어야 한다. 수면에서 머뭇거리거나 천천히 내려가다가는 바닥면에 도착하기도 전에 조류에 흘러가고 만다.

   
북형제섬 바다 속. 해조류 아래로 소라들이 뒹굴고 있다.
배에서 뛰어내려 바닥으로 치고 들어가는데 조류가 여에 부딪히며 만들어낸 와류가 몸을 감아 돌린다.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리돔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바로 자리돔떼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얼마나 놀랐을까. 자리돔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리로부터 벗어났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자 안정을 찾은 자리돔들이 다시 모여들며 그들만의 평화를 만들어냈다.

제주도가 고향인 자리돔들이 이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제주도를 스쳐 부산 앞바다로 올라오는 쿠로시오난류 탓이다. 자리돔들은 시속 3~5㎞에 이르는 쿠로시오 난류에 몸을 실으면 에스컬레이트를 타듯 별 힘 안들이고 이동할 수 있다. 이렇게 흘러가다가 먹잇감이 풍부한 곳에 다다르면 정착하는데 이날 관찰한 자리돔들은 북형제섬이 제 2의 고향인 셈이다.

북형제섬은 자리돔이 정착할만하다. 제주도 바다 못지않게 청정한데다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영양물질을 만들어내는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주도 보다 이곳이 살기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여름을 앞둔 5월~6월. 제주도 곳곳에선 자리돔 축제가 펼쳐지는데 말이 축제이지 주인공인 자리돔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없다. 단지 축제의 제물로 엄청나게 잡혀나갈 뿐이다. 그런데 부산 앞바다에서는 자리돔을 잡는 뜰망어업 자체가 불법이다. 자리돔이 부산 앞바다 뿐 아니라 울릉도와 독도에서까지 발견되는 것을, 인간이라는 천적을 피해 떠나왔다고 하면 다소 비약한 것일까.

■곤봉바다딸기·해조류 군집 빚어낸 수중경관

   
북형제섬 바다 속에 자리잡은 곤봉바다딸기들이 폴립을 활짝 펼친채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한 채 바닥면에 도착했다. 몸에 지니고 있는 수심계는 20m를 가리키고 삐죽삐죽 솟아 있는 바위 덩어리들이 얕은 수심을 향해 길게 이어져있다. 수심과 해저 지형을 보니 배에서 어군탐지기로 확인한 지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꽃밭이 따로 없다. 연산호의 일종인 곤봉바다딸기가 빼곡하게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수중경관이었다. 제주도 해역이나 남해안 등지에서 곤봉바다딸기를 만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가 광범위한 지역에 펼쳐져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곤봉바다딸기들은 플랑크톤 사냥을 하느라 저마다 폴립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멍게들이 불가사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갯고사리를 짊어지고 있다.
산호류 관찰의 백미는 폴립을 활짝 펼치고 있을 때이다. 민감한 자포동물인 이들은 위협을 느끼면 폴립을 강장속으로 거두어들인다. 폴립이 사라진 산호는 민숭민숭하다. 이들이 놀라 폴립을 거두어들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곤봉바다딸기의 모습들을 기록해나갔다. 곤봉바다딸기 옆으로는 입수공을 활짝 연 멍게들이 플랑크톤을 걸러내느라 연신 바닷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북형제섬에 서식하는 멍게들 중 대다수는 극피동물인 바다나리를 머리에 짊어지고 있었다. 아마 천적인 불가사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일 거다. 불가사리는 다섯 개의 팔로 멍게의 입수공을 틀어막아 질식시킨 다음 위장을 입수공으로 밀어 넣어 피낭속의 살을 녹여 먹는데 바다나리를 짊어지고 있으면 불가사리가 입수공을 틀어막기가 힘들어진다.

바닥면 관찰을 마치고 여 쪽으로 붙으며 상승을 시작하자 얕은 수심대가 삶의 영역인 해조류 군락이 펼쳐진다. 빼곡한 해조류 사이로는 어른 주먹크기만한 소라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고 산란기를 맞은 군소들이 짝을 찾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수면으로 올라오자 얕은 수심의 여를 피해 멀리 떨어져 있던 어업지도선이 보인다. 다시 땅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배를 향해 헤엄쳐가야 하는데, 자꾸 뒤처지던 마음은 북형제섬이 전하는 역동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그곳에 남아버렸다.


▶북형제섬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 150번지인 북형제섬은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섬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섯 개의 바위섬과 크고 작은 여로 이루어져 있다. 섬은 7000만년 전 땅 속의 마그마가 분출해 형성된 후 오랜 기간 암석에 발달된 절리를 따라 차별침식을 받아 현재의 모습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형제섬은 해식애 해식동 바위기둥 등 지형경관이 우수하여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존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특정도서로 지정돼 있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남해안에서는 드물게 관찰되는 연산호의 일종인 해송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형제섬 바다속. 해조류 아래로 소라들이 뒹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