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바다]

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9> [민락 수변공원]의 밤바다

금산금산 2013. 4. 20. 21:49

 

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9> 민락 수변공원의 밤바다

열대夜에 떠난 바다잠행

 

민락수변공원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동료 다이버의 모습을 반수면 촬영했다.

- 콘크리트로 된 543m 호안
- 수천 개의 테트라포드 틈에
- 해조류가 부착·서식하기 시작

- 안락한 보금자리서 휴식 취하던
- 꽃게 돌돔 성게 주걱치 무리 등
- '밤손님'에 깜짝 놀라 비상 태세

부산 바다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민락 수변공원일 거다. 유유히 넘실거리는 파도는 발아래로 부서지고 해운대 마린시티의 마천루에서 광안대교로 이어지는 화려한 조명들은 좌우로 도열한 채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바다에 비친 조명은 달그림자와 어우러져 잠시 일렁이는가 싶더니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이 모든 것을 머금은 바닷속이 보고 싶어졌다. 물론 밤바다 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이지만 화려한 물 위 세상을 뒤로하고 완벽한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짜릿한 경험일 것이다.


   
테트라포드에 부착한 해조류들(2012년 3월 촬영).
지난 주말. 스쿠버 장비를 짊어지고 민락 수변공원으로 향했다. 열대야를 피해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왔느냐'는 등 이것저것 물어온다. 스쿠버 다이버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수중사냥과 바다생물에 대한 채집활동이다. 작살이나 채집망을 들고 다니면서 지탄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다이버도 있지만, 대다수 다이버는 바다 생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길이 543m, 너비 60m에 이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인 수변공원 호안은 바다 쪽으로 갈수록 파래가 많이 붙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지점을 체크하며 조심조심 바다로 향했다. 호안 끝 부분에는 파도를 막기 위한 테트라포드들이 놓여있다. 수변공원 바닷속이 흥미로운 것은 543m에 이르는 호안에 놓여 있는 테트라포드의 존재이다. 수천 개의 테트라포드는 서로 이웃하며 작고 큰 틈을 만드는데 그 공간은 바다동물들의 훌륭한 보금자리가 된다. 공원 인근에 아파트들이 즐비한 것처럼 이곳에 줄지어 있는 테트라포드는 바다동물의 공동주택인 셈이다. 테트라포드에는 해조류가 부착하기 쉽다. 해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영양물질을 뿜어내니 공동주택에 사는 바다동물은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꽃게
수중랜턴으로 테트라포드를 비추자 보라성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행성인 이들은 낮 동안 테트라포드 틈 속 어두운 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밤이 이슥해지면 기어 나와 먹이활동을 시작한다. 가시를 위협적으로 삐죽삐죽 내민 성게 중 몇몇은 해조류를 뜯어먹고 있었다. 야간 다이빙 시 주의할 점 중 하나가 성게의 존재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 약간만 부주의해도 성게 가시에 찔리고 만다. 성게 가시 끝은 낚싯바늘과 같은 미늘 구조라 한번 찔리면 빼내기 어렵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샐빛수중사진 동호회 김성심 회원은 무릎을 다섯 군데나 찔렸다. 다이빙을 마친 후 살펴보니 굵직굵직한 성게 가시들이 잠수복을 뚫고 깊숙이 박혀 있었다. 왜 알리지 않았냐고 묻자 "방해하기 싫어서"라고 답한다. 수중활동은 짝을 이루어서 진행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몸에 문제가 생기면 동료도 다이빙을 그만둬야 한다. 김씨는 자기 때문에 기자까지 다이빙을 포기할까 봐 가시가 박힌 채로 버텼다는 이야기이다. 성게가 많이 있는 곳에는 성게를 즐겨 먹는 돌돔을 찾을 수 있다. 성게는 몸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곧추세우고 있지만 돌돔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가 된다. 돌돔은 딱딱한 주둥이로 성게를 들이받아 자빠뜨리고는 가시가 없는 배 부분을 뜯어먹는다. 아니나 다를까 랜턴으로 주변을 비추자 돌돔 한 마리가 호시탐탐 성게를 노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쏨뱅이
랜턴으로 테트라포드 사이를 비추자 무언가 화들짝 숨어든다. 틈 속으로 머리를 디밀어 살펴보니 잔뜩 긴장한 꽃게 한 마리가 집게발을 들어 올린 채 방어 자세를 취한다. 손가락 끝으로 '톡' 건드리자 옆으로 빠르게 내달리는가 싶더니 바닥을 박차고 올라 다리를 휘저으면서 헤엄친다. 꽃게는 다른 게들과 달리 열 개의 다리 중 마지막 다리의 끝 부분이 노처럼 넓적하다. 꽃게는 이 다리를 이용해 헤엄칠 수 있다. 꽃게가 사라진 테트라포드 아래쪽에 빨간색 식용 멍게와 투명한 곤봉멍게들이 보였다. 곤봉멍게는 아열대와 열대 바다가 고향이니 해류를 타고 이곳까지 옮겨온 이주민이라 할 만하다. 테트라포드에 자리 잡은 이주민은 곤봉멍게 뿐이 아니었다. 아래쪽을 더듬으면서 내려가자 들판에 피어 있는 들국화를 닮은 무쓰뿌리돌산호들이 보였다. 무쓰뿌리돌산호는 경산호의 일종이다. 경산호는 연중 수온이 20도 이상 되는 환경이어야 살 수 있으니 이들이 이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는지는 수온이 내려가는 겨울이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테트라포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광안대교 쪽으로 향하는데 한 무리의 주걱치(농어목)가 지나간다. 생긴 모양이 주걱을 닮아 이름 지어진 주걱치는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종이다. 물고기들은 일정한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면 놀라 달아나더라도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돌아온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주걱치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수면으로 올라왔다. 밤이 되면 바다는 변신을 시도한다. 낮 동안 활동한 바다동물은 깊은 잠에 빠져들고 휴식을 마친 바다동물이 주인공이 된다. 겉으로 보기엔 깜깜하기만 한 밤바다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바다동물이 저마다의 삶을 꾸리고 있다. 민락 수변공원 호안에 형성된 테트라포드는 다양한 바다동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공동체는 민락 수변공원이 가진 또 하나의 축복일 수 있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군소
   
투명곤봉멍게와 식용멍게
   
무쓰뿌리돌산호
   
성게
   
주걱치 떼
   
갯민숭달팽이
   
민락수변공원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동료 다이버의 모습을 반수면 촬영했다.
   
봄에 찾은 민락수변공원 바다속 모습이다. 테트라포드에 부착한 해조류들이 수변공원 바다속을 풍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