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바다]

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15> 겨울바다

금산금산 2013. 6. 2. 09:18

 

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15> 겨울바다

앙상한 땅위의 겨울, 물속은 해조류숲 울창

 

얕은 수심 바위위 파래 사이로 진주담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겨울 바다에서 살이 오른 담치는 지금이 제철이다.

- 겨울 평균수온 13도 안팎
- 미역·감태 등 갈조류 제철 무성
- 다년생 해조류들도 여전히 번성
- 이산화탄소 흡수 숲 역할 톡톡
- 서식처·먹이감 역할로 없어선 안돼

부산 지방 최저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 지난 주말 영도구 동삼동 해변을 찾았다. 인근을 지나던 사람이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쳐다본다.

'이 추위에 바닷속으로 들어가다니 제정신이 아닌 거 아니냐' 아마 마음속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을 거다.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적절한 장비를 갖추면 견딜 만하다.

   
선홍색 홍조류인 엇가지풀 사이에 미역이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대표적인 해조류인 미역은 겨울동안 성장해서 이른 봄 절정을 이룬다.
빙산이 둥둥 떠다니는 남극과 북극 바닷속도 드나들었는데 겨울철 평균 수온이 13도 안팎인 부산 바다에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겨울 바다는 해조류가 무성하게 자라는데다 차가운 수온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종들이 모습을 드러내기에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선홍색 홍조류인 엇가지풀 사이로 미역, 감태 등의 갈조류들이 하늘거리며 손짓한다. 땅 위의 식물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통해 생육이 달라지듯이, 바닷속에도 사계절에 따라 해조류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그런데 해조류는 땅 위 식물과는 삶의 사이클이 반대인 경우가 많다. 미역이나 감태는 늦가을부터 번성하기 시작해 겨울과 봄에 가장 무성하며, 여름이 되면 녹아 없어진다.

그렇다고 여름 바닷속이 해조류 하나 없이 황폐하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년생 해조류들은 높은 수온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다. 바다가 바다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들 해조류가 있기 때문이다.

   
모자반은 우리나라 바다에서 해중림을 이루는 대표종이다. 겨울 바다에서 성장을 시작하는 모자반은 이른 봄 최고로 성장한 후 수온이 올라가면 녹아든다.
해조류는 땅 위의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와 영양물질을 만들어낸다. 산소와 영양물질은 바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며, 이들이 소비하는 이산화탄소는 공업화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여준다. 해조류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은 육상식물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해조류는 이외에도 바다 동물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한다. 숲이 우거진 곳에 동물들이 모여 살 듯이, 바닷속 해조류가 만들어내는 해중림은 바다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해중림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와 영양물질은 플랑크톤을 불러들이고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로 연결되는 먹이 사슬을 형성한다.

이뿐 아니라 해조류는 초식성 어류와 전복 고둥 군소 등 연체동물과 해삼 같은 극피동물들의 직접적인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얕은 수심 바위에 붙은 굴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해조류 엽상체 아래를 살피는데 해삼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바닷속에서 해삼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이들은 '꿈틀꿈틀' 기어 다니느라 바닥면에 지나간 자국뿐 아니라 작은 모래무지 같은 배설의 흔적들을 남긴다. 해삼은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종이다. 여름 동안 수심 깊은 곳에 머물며 수온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해삼들이 겨울이 오자 제 세상을 만난 셈이다.

해조류가 자라는 바위 위쪽으로 진주담치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겨울 골목길 포장마차 솥단지에서 하얀 김을 모락모락 뿜어 올리는 뽀얀 담치국물의 로망을 아는 사람이라면 겨울과 담치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담치라 하면 외래종인 진주담치가 대세이지만 과거 담치는 토산종인 홍합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중해가 고향인 진주담치가 우리나라까지 흘러들어 홍합의 서식처를 밀어내는 바람에 이제 울릉도와 독도 외의 다른 해역에선 홍합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옛사람들은 춘궁기 때 겨울 동안 살이 오른 홍합을 잡아다가 약간의 곡식을 넣고 죽을 쑤어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기곤 했는데 홍합이야말로 겨울 바다가 안겨준 선물이었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해삼이 겨울 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군데 군데 모여있는 모래무지는 해삼의 배설물이다.
진주담치를 살피며 지나는데 바위 위에 굴이 잔뜩 붙어있다. '바다의 우유'라고 비유되는 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영국 속설에 "달 이름에 R자가 없는 5~8월에는 굴을 먹지 말라"며 여름철에 생산되는 굴로 인한 식중독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제는 겨울에 생산된 굴을 급속 냉동 보관하는 방식이 개발되면서 여름에도 누구나 굴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굴에는 철분과 타우린을 비롯하여 각종 비타민과 아미노산 등이 균형 있게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을 막는 데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아연 성분이 풍부하여 남성 호르몬의 활성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서양인은 "굴을 먹어라. 좀 더 오래 사랑하리라(Eat Oysters, Love longer)"라며 굴의 효능을 예찬해왔다. 또한 굴은 여성의 피부 미용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효능은 우리 속담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하얗다"에서 은유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조류 군락지를 지나 좀 더 깊은 수심으로 내려가자 바닥면에 넙치(광어) 한 마리가 납작 붙어 있다. 넙치는 겨울이 제철이다. 봄에 산란기를 맞는 넙치는 겨울 동안 활발한 먹이 활동을 벌여 몸에다 영양분을 비축한다. 그래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겨울 넙치가 최고의 상품으로 대접받고 "3월 광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