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1> 사마천의 '사기'와 '국부론' ①
백성은 시키지 않아도 물건을 만들고 가격을 매기고 거래한다
애덤 스미스는 본능이라 했고, 사마천은 자연의 道라 불렀다
요즘 우리 경제가 정말 어렵다!
이럴 때는 누구나 급한 해결책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해답이 있다면 왜 정부든 기업이든 진즉 경제를 살리지 못했을까?
우리 속담에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사기'에서도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인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제를 다시 살릴 지혜를 고전과 성현의 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먼 듯이 보이지만 실은 가장 빠른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 군자가 부유해지면 즐겨 그 덕을 행하고,
- 소인이 부유해지면 그 힘을 휘두르려 한다.
-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
중국 한 나라의 무제가 즉위한 지 5년 후의 일이다.
천문과 역법을 관리하는 직책인 태사령 사마천(司馬遷, 서기전 145~서기전 86)은 부득이하여 흉노에게 항복한
장수 이릉을 변호하다가 황제로부터 궁형을 명받는다.
궁형이란 남성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로,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선비들에게는
사형보다 더 치욕스러운 형벌이었다.
그래서 궁형을 명받은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결하지 않고 궁형을 받아들인다.
목숨을 구한 대신 평생 궁형을 당한 자라는 치욕을 안고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마천을 비웃고 모욕하였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사마천과 친구였던 익주자사 임안은 편지를 보내 "왜 구차한 목숨을 구하느라 죽음보다 더한 욕을 당하느냐?"며 자결을 채근하기까지 하였다.
사마천은 아무에게도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으나 후일 임안에게 자신이 치욕을 선택한 이유는, 역시 태사령의
직을 수행했던 선친 사마담(司馬談, ?~서기전 110)이 세상을 뜨면서 유훈으로 남긴 일 때문이라고 밝혔다.
선친이 못 다한 일이란 바로 '사기(史記)'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한무제(서기전 154~서기전 87). 유학을 장려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였으며, 적극적인 대외정복으로 한나라의 전성기를 건설하였으나 그로 인해 국가재정의 파탄을 초래하였다. |
사마천은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헤로도토스에 비견하여
흔히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런데 정작 '사기'를 읽노라면 오히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떠오른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핀 공장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스미스가 핀 공장에 갔더니 철사를 늘이고 자르고 갈고 핀 대가리를 붙이고 두드리는 공정들을
나누어 분업을 했더니 전혀 숙련되지 않은 10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들더라는 것이다.
반면에 분업이 없었던 과거에는 아무리 솜씨 좋은 장인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하루에 열 개의 핀을 겨우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스미스는 자신이 목격한 이러한 광경에서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가장 중요한 면을 보았다.
더 나아가 스미스는 분업이 공장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시장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찰하였다.
'국부론'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가정을 유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가 있다.
밖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절대로 집에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양복점 주인은 스스로 신발을 만들지 않고 신발 가게에 가서
사서 신는다.
신발 가게 주인은 자기 옷을 만들어 입지 않고 양복점에서 맞추어 입는다."
그런데 '사기'에서 사마천은 2000년 전에 이미 '국부론'에서 스미스가 한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농사꾼은 양식을 공급하고 나무꾼은 연료를 공급하며 기술자들은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장사꾼들은
이러한 상품들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활동들은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각자가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뿐이다."
타이완의 국가도서관이 수장하고 있는 '사기'의 고본. 사마천이 직접 저술한 '사기'는 선제(宣帝) 때 그의 외손 양운(楊惲)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일찍부터 적지 않은 부분이 결락되어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는 벌써 10여 편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잃어버린 효무본기(孝武本紀)는 후세인이 보필하였다. |
물론 이러한 원리는 단순해서 굳이 애덤 스미스를 들먹일 만한 일이
못될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기'를 읽으면서 애덤 스미스를 생각하는 이유는 더 심오한 데
있다.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조금 뜻밖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만, 애덤 스미스는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하였다.
굳이 뜻밖이라고 표현한 것은 흔히 경제학과 도덕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거나 심지어는 서로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런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질 자리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스미스의 도덕철학이란 바른 생활을 위한 교훈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선택의 배후에 있는 심리적이고 윤리적인 동기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역사학자든 경제학자든 다른 어떤 분야에서건 모든 위대한 사상가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이론이나 학설을 주장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이기심
또는 자애심도 바로 그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와 성찰의 결론이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분업을 하고 교환을 하는 것일까? 스미스는 인간에게는 교환 본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물론 본능이라는 설명은 얼핏 너무 모호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교환을 하는 이유는 분명히 교환이 자기에게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스미스가 그것을 이익이라고 표현하는 대신 본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자기의 이익을 선택하는 자애심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본성임을 이야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기'를 집필하는 사마천(<司馬遷著史>). |
사마천도 마찬가지다.
사마천은 그것을 본능이라는 말 대신 '도(道)'라고 부른다.
'사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물건 값이 싸면 비싼 곳에 가져가 팔고 비싼 물건은 싼 곳에서 가져와
팔면서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한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절로
모여 들고,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백성들은 물건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자연의 도에 부합하는 결과이다."
자연의 도와 사람의 본성은 아무나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스스로 궁형의 치욕과 세상의 비난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이루어야 할 사명을 다한 이만이 그것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해 치욕의 궁형 감수한 사마천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연표(年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 모두 13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글자 수는 52만6500자에 이른다.
서기전 104년에 본격 집필하였다고 하며. 완성된 시기는 불분명하나 서기전 91년 전후로 짐작되니 이것만으로도 13년 이상이 걸린 엄청난 노작이다. 그런데 사마천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선친의 유업을 잇고자 한 것이니
실은 그보다 수년 또는 수십년이 더 걸린 일이라고 해야 옳다.
궁형을 받은 사마천은 나중에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위직인 중서령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벼슬이 오른들 궁형을 당한 모욕이 씻어질 리는 없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이 모든 수치심을 잊고 '사기'를 완성한 것은 후대에 바른 역사를 남기고자
한 사명감 때문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경제를 바로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책이라는 것이 수능시험에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청소년들로 하여금 역사를 암기하게 하자는 군사정부 때의 사고방식이니 참 안타깝다.
요즘 어느 출판사의 국사 교과서 내용 때문에 시비가 많다.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를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시험성적을 위해 역사를 외우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할지를
제대로 고민해야 옳지 않겠는가.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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