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5> 경세의 이치 ①
옛 임금이 잘못 벌인 일은 빨리 폐기할수록 그 해악이 줄어든다
장자(왼쪽)가 친구이자 논적인 혜시(惠施)와 경세의 도를 논하는 장면을 그린 '장자논도(莊子論道)'. 장자는 "성인은 천지 밖의 일은 살피기만 하고 말하지 않으며, 천지 안의 일은 말하되 의미를 새기지는 않는다"고 설파했다 |
노 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의 제자인 재아(宰我, 서기전 522~
서기전 458)에게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에 심은 나무가
왕조에 따라 다르니 무슨 까닭이오?" 하고 묻자 재여는 잘 모르면서도 그럴듯하게 대답하였다.
"옛날 하 나라 때는 소나무를 심고, 은 나라 때는 잣나무를 심고, 주 나라 때는 밤나무를 심었는데, 이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밤나무 율(律)과 두려워할 율(慄)이 같은 소리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고, 이미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 법이다"고 하였다.
공자의 말씀을 단순하게 해석해 보면, 잘 알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재아의 태도를 꾸짖은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공자의 속뜻은, 과거에 이루어진 일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른 이유가 있기 마련이므로 오늘의 관점에서
그것을 시비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었던 듯 싶기도 하다.
지난 일을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말고, 앞으로 해야 할 제대로 된 방책을 세우는 데 더 힘쓰라는 뜻이다.
'논어(論語)'의 '팔일(八佾)'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은 경세와 제민을 합친
말이다.
경세란 간단히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인데, 중국의 옛 문헌들을
찾아보면 이 말이 처음 나오는 것은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
이다.
'제물'이란 만물을 가지런히 한다 또는 만물이 모두 똑같다는 뜻으로,
도(道)의 절대성 앞에서 실재의 다양성은 모두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제물론'을 보면 "春秋經世先王之志, 聖人議而不辯"라는 말이 나온다. 성인은 옛 임금들이 한 일의 의미를 새기기는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기서 경세란 "옛 임금들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한 일"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유가와 도가의 사상에는 꽤 먼 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논어'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 비슷하다.
옛 임금들이 한 일을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 공자는 "옛 것을 익혀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거듭하여
강조한 분이다.
그런데 왜 옛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했을까?
경제학에는 매몰비용이라는 말이 있다.
교과서에서는 이미 지출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미래의 편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용이 매몰비용이다.
미래의 편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뜻이다.
공자의 말씀이나 '제물론'의 경세는 모두 매몰비용은 생각하지 말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장주.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 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주(周)이다. |
그런데 경제학의 여러 개념들 가운데 이 매몰비용만큼 거꾸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도 드물다.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4대강 사업이 새삼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되고,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성현은 옛 임금들의 일은 시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지난 정부의 일도
모두 덮어 버려야 옳을까?
매몰비용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반대로,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도 그만두어야 옳을 때는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라는 뜻이다.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경인 운하니 김해 경전철이니 지자체들마다 경쟁적으로 벌여 온 토목사업들이 모두 그렇다.
막대한 적자로 시민들의 세금 부담이 뻔히 보이는데도 지자체들이 이런 사업들을 밀어붙인 이유는, 지금까지 투자한 매몰비용이 아까워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까워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이 아니라
앞으로 투자해야 할 비용이다.
앞으로 투자해야 할 비용과 그로부터 얻을 편익을 비교해 비용이 더 크다면, 지금까지 매몰비용은 그만 잊어버리고 부실한 사업계획은 하루 빨리 덮어 버리는 편이 현명하다는 말이다.
지난 정부가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쏟아 부은 돈이 6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또 이미 부실로 판정난 사업들에 11조 원을 더 투자하기로 했다고 한다.
송(宋) 나라 때 주희가 편찬한 '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는 공자 사후에 공자가 남긴 말씀을 제자들이 엮은 책이다. 제자들이 어떤 말을 넣고 어떤 말을 빼며 어떤 순서로 엮을 것인가를 서로 의논했다고 해서 '논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꼭 어느 정부를 짚어서 가리키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 우리 정부의 높은 분들을 보면 국민들에게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고치는 일을 무슨
포퓰리즘적 정치행태거나,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는 무능한 정치인 것처럼 여기는 듯 싶을 때가 있다.
더러는 심지어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을 자존심 싸움처럼 여기고 버티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공자 말씀에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말씀에도 또 잘못을 알아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하였다.
잘못된 일은 잘못되었다 말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 어서 바로 고치면 될 일을 모른쇠로 버티려 드니,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것이다.
# 공자의 '맞춤형' 교육방식
- 같은 질문을 한 두 제자에게 정반대의 답을 준 공자
재아. 본명은 재여(再予)이고, 자는 자아(子我)이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으로 언변과 외교에 뛰어났다. 십철은 공자 학파의 네 과목인 덕행·언어·정사·문학에 능한 이들로, 덕행은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 언어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는 염유(冉有)·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游)·자하(子夏)가 십철로 불린다. |
어떤 이가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중궁(仲弓)을 두고 어질기는
하나 말재주가 없다 하자 공자는 잘난 말재주로 남의 말을 막으면
미움을 받을 뿐이니 말재주를 무엇에 쓰느냐고 반박하였다.
다른 곳에서도 공자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공자는 말재주만 앞세우는 일을 특히 경계하였던 모양이다.
재아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말솜씨가 뛰어나지만 게으르고 실천력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공자에게 가장 많은 꾸지람을 들은 제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빈둥거리며 낮잠을 자는 재아를 보고 공자는 "썩은 나무에는 아무 것도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담벼락에는 덧칠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재아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10명을 가리키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제사인 석존대제 때는
네 번째 자리에 모셔지는 인물이다.
벼슬도 대부의 자리까지 올랐다.
따라서 공자가 자주 재아를 꾸짖었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재아가 무능하였거나 공자가 그를 낮게 평가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는 공자의 교육방법에서 나온 일이라고 보아야 옳겠다.
재아는 아마 재주가 지나치게 앞선 데다가, 스스로도 그런 점을 너무 잘 알아 교만하였던 모양이다.
'논어'의 '선진(先進)' 편을 보면 자로(子路)가 옳은 일을 보면 곧바로 실행해야 하는가 하고
묻자 공자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이어 염구(冉求)가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이를 들은 다른 제자가 그 연유를 묻자 공자는, 염구는 소극적으로 잘 나서지 않으니 나아가게
한 것이고, 자로는 나서기를 잘하니 물러서게 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사상가로서뿐 아니라 교육자로서 위대하다 함은 이처럼 제자마다 그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치는 원칙이나 절차를 중시하면서도, 현실의 급하고 중한 문제를 먼저 돌보는 법이다.
홍수가 나면 가뭄을 대비해 가마를 사고, 가뭄이 들면 홍수를 대비해 배를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화식(貨殖)의 이치일 뿐 경세의 이치는 아니다.
경세의 이치는 마땅히 홍수가 났을 때 백성들에게 물을 건널 배를 마련해 주는 데 있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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