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4> 제민의 도리 ②

금산금산 2014. 2. 12. 19:53

 

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4> 제민의 도리 ②

위정자들아, 곳간이 텅 빈 백성에게서 선한 눈빛을 기대하는가

 

맹자(왼쪽)와 양 혜왕. 위 나라 혜왕은 전국칠웅의 한 사람으로, 전국시대의 제후들 가운데 처음으로 왕(王)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전국시대 초기의 최강대국이었으나, 혜왕 말년에 서쪽의 진(秦) 나라가 강성해져 위협하자 수도를 대량(大梁), 지금의 개봉(開封)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위 나라를 양(梁) 나라로 불렀으며, 혜왕 역시 양 혜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국가의 재정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다지
걱정거리가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을 어떻게 공평하게
나누는가에 마음 쓸 일이다


- '관자' '목민' 편

맹자(孟子, 서기전 372~서기전 289)가 위 나라 혜왕(惠王)을 방문하였다.

혜왕이 정치의 도리를 묻자

맹자는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른 점이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혜왕이 다르지 않다고 대답하자

또 맹자는 "그러면 칼로 죽이는 것과 악정으로 죽이는 것은 다른 점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혜왕이 역시 다르지 않다고 대답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임금의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면서,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떳떳이 살 수 있는 항산(恒産)이 없으면 그로 인해 떳떳한 항심(恒心) 이 없어집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은 곧 백성이 풍요롭지 못하면 그 마음이 어질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 말하면, 맹자의 항산이란 단순히 사용할 재물이나 자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생업,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의 좋은 일자리를 뜻한다.

백성들이 풍요로우려면 과연 얼마만큼의 재화가 필요한가.

경기침체 이전의 일본에서는 국가는 부유한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당시의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자랑하였다.

일본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누리면서 엄청난 자산을 축적하였다.

그런데도 정작 국민들은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라에 재화가 아무리 넘쳐도 정작 백성들의 생활과 생계를 위하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많은 재화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물론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자는 뜻이 아니다.

 

1972년 10월 유신 당시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유신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내세웠던 목표가 1980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여 중진국에 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정부가 배포한 홍보물에는 국민소득 1000달러가 되면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모두 현대식 주택에 살면서 자가용을 가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은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정작 국민들이 먹고 입는 데 쓸 재화는 부족하다.

그 많은 국민소득은 도대체 누가 다 가져갔을까?

한 마디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은 것이다.


'논어''계씨' 편을 보면 공자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든 가족을 거느린 사람이든 적음을 걱정하기보다는 고르게 분배되지 못함을 걱정하며, 사람들이 빈곤한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안정이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재화가 부족한 일보다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하는 일이 더 걱정이라는 뜻이다.

"고르게 분배되면 가난이 없고, 모두 화합하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나라가 안정되면 위태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인 노인기초연금의 축소를 둘러싸고 주무부서의 장관이 사퇴하는 등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일이 불과 얼마 전이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둘러싼 과거의 소란을 생각나게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와 여당이 하는 말은 복지에 쓸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의 문제는 언제나 부족하고 넘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재원을 사용하고 어디에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 결국 선택과 포기의 문제일 뿐이다.

 

관자의 말처럼 재정이 부족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지금 있는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걱정하여야 옳다.

임금의 곳간이 꼭 정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 가운데는 수백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수십조 원의 영업이익을 누리는 기업도 있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

이익이 많아도 기업들이 일자리를 늘이는 데 제대로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라와 기업은 부자인데 국민들은 가난한 것이다.

부자와 귀족들은 화려한 동방의 귀한 보물들로 장식한 목욕탕에서 사치스러운 연회를 즐기고, 평범한 시민들은 토지와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던, 그래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도 망하고 말았다는 옛 이야기가 생각난다.

항산이 없는데 어찌 국민들에게만 항심을 요구하느냐는 말이다.


 

   
맹자(孟子).

지금 밀양에서는 일흔,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 송전탑 때문에

찬바람에 떨며 노지에서 밤을 새우고 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해야 옳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요구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고압전선을 지중화해 달라는 것이다.

한전과 정부는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대며 지중화가 불가능하다는 태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강남의 어느 부자동네에서는 관내의 전신주를

모두 뜯고 고압전선을 지중화하는 사업을 마쳤다고 또 수천만 원의 공공예산을 들여 기념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한 하늘을 이고 사는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거만 서울사람과 시골사람의 살림살이가 이렇게 다르니, 어찌 제민의 도리에 올바르다고 하겠는가.

역시 대통령의 중요한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동남권 신공항은

또 어느 세월에 건설할 것인지 궁금하다.


<사진설명 : 맹자(孟子). 이름은 가(軻)이고, 자는 자여(子輿), 자거(子車), 자거(子居) 등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제자이다.

'논어'에서는 인(仁)과 의(義)가 지(知)·용(勇)·신(信) 등의 다른 덕목들과 동렬의 것으로 등장한다.

인과 의를 대비시키거나 합쳐서 말하는 경우도 없다. 의가 인과 나란히 선 것은 맹자에 의해서이다.

이처럼 맹자가 유학의 발전에 미친 많은 영향들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바로 의의 가치를 중시하여 높였다는 점이다. >


#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뒤엎기도 하므로

   
순자(荀子, 서기전 298~서기전 238)는 조(趙)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황()이고 자는 경(卿)이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비판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으며, 덕(德)보다 예(禮)를 강조했다.

게으르고 무능한 정치인들이 제 이익을 찾아다니면서 함부로 민생을

말할 때마다 감히 맹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제 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탕왕이 걸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를 정벌했다는데, 신하가 자기 임금을 살해해도 괜찮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맹자가 대답하기를 "인자한 사람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고 하고, 의로운 사람을 해치는 자를 잔학하다고 합니다. 흉포하고 잔학한 인간은 한 필부일 뿐입니다. 필부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는 하늘의 보복을 받고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는 백성의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맹자가 생전에 등용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맹자는 공자의 뒤를 이어 유교의 정통을 확립한 사상가이다.

공자의 근본 윤리는 인(仁)이다.

그런데 맹자의 근본 윤리는 인의(仁義)이다.

 '맹자'에는 "인은 사람이 거해야 할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이다"라고 하였다.

얼핏 같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한 이 차이는 결국 불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나타난다.

공자는 아비가 죄를 지어도 자식은 모른 척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다르다.

 맹자는 인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임금은 물리쳐도 좋다는 역성혁명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맹자를 들어 너무 과격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중요한 계승자 가운데 한 사람인 순자(荀子, 서기전 298~서기전 238)"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

경계하였다.

유가의 진정한 도리는 언제나 백성에게 있었지 임금에게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