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년 초량왜관 등대 발견], '일본보다 190년 앞섰다!'
부산항만청, '고지도'서 2기 확인
1678년 초량왜관 고지도. 아래쪽 방파제 끝에 등명대(원안)가 보인다. 부산해양항만청 제공 |
국내 최초로 여겨졌던 인천 팔미도등대(1903년)보다 225년이나 앞선 [1678년, 부산 초량왜관에 등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가 발견됐다.
이는 우리나라 등대 역사를 새로 써야 할 뿐 아니라 우리 등대(항로표지)가 일본 최초의 등대(1868년)보다 190년 빨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부산해양항만청은 지금으로부터 336년 전인 1678년 제작된 조선시대 초량왜관 관련 고지도를 정리하다가 초량왜관 앞바다에 설치된 근대식 방파제 양쪽 끝에 지금의 등대와 비슷한 '등명대' 2기가 설치된 점을 확인했다고 14일 밝혔다.
같은 해 일본에서 만든 '초량왜관 준공도'에도 같은 위치에 등명대 2기가 표시돼 있고 이후 몇몇 고지도에도 같은 등명대가 기록돼 있다고
부산해항청은 설명했다.
초량왜관은 1678년께 조선에서 직접 투자해 조성한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역이다.
부산해항청은 부산세관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1886년 부산해관(부산경남본부세관의 전신) 기록물을 조사한 결과, 당시 부산항 진입항로상
암초에 '돈다리 등표'(부산항 진입수로 남쪽 절영도 쪽의 작은 바위 위에 설치)와 '홍리도 등표'(부산항 진입수로 북쪽 작은 바위 위에 설치)의 존재를 확인했고, 이를 유지·보수하고 관리한 기록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부산해항청 서병규 청장은 "이번에 발견된 사료를 통해 1868년 일본 최초의 등대 역사보다 무려 190년 앞선
우리나라 등대 역사에 자긍심을 가지고 등대의 불을 어떻게 밝혔는지 등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지속해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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