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재발견

[아픈 역사도 문화유산] <하> '보존'과 '활용방법' 고민하자

금산금산 2016. 9. 30. 17:09

[아픈 역사도 문화유산] <하> '보존'과 '활용방법' 고민하자




일제 군사시설 전수조사…가치 따진 후 관광자원화 모색








- 태평양전쟁 전후로 만들어진
- 방공호 탄약고 부대건물들
- 관리·조사 없이 오랜세월 방치
- 학계에서도 최근에야 주목

- 지자체들, 광명 성공사례 기반
- 인공동굴·벙커 시설에 눈독
- 먼저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 문화재 지정 검토과정 거쳐야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일제강점기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잊을 만 하면 불쑥 우리 곁에서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도 있다.

더는 외면할 수 없다.

아프더라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시설이, 어떤 용도로,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전수조사라도 해야 한다.

무조건 보존할 필요는 없지만 후세에 남길 가치가 있다면 지켜야 한다.

각 기초지자체가 관심을 보이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문제는 그다음 순서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방치되고 있는 남구 용호동 장자등 포진지. 안내판이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말해주지만 읽는 사람은 없다.

 


■ 흔적부터 찾아내자

지난 18일 공개된 중구 대청동 용두산공원 뒤편 인공 동굴은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축대 보강 공사 중 이 동굴을 발견한 중구는 출입구를 막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포크레인으로 깨고 철문까지 제거한 뒤에 내부로 들어갔다.

동굴 내부에는 '농구공' '축구공'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은 철제 선반이 남아 있었다.

이곳이 1921년부터 1998년까지 동광국민학교 자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제강점기 때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설된 이후 여러 용도로 활용되다가

마지막에 학교 체육 기구를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학교가 문을 닫고 이 일대가 축대가 되면서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그 속에 파묻힌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특히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0년대

일본이 집중적으로 구축한 군사시설은 그동안 사각지대였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설이 건설됐는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조차 거의 없다.

물론 보안이 중요한 군사시설이란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실제 만들어졌던 시설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잊히거나 방치된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는 아픈 역사를 외면하려는 정서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학계에서조차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파트 공사와 함께 원래 출입구가 사라져 지금은 철 계단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일제강점기 유적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3년부터 태평양전쟁 유적

일제 조사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까지 진행되는 용역을 통해 문화재청은 국내에 남아 있는  일제 유적을 조사하고 평가해 문화재로 등록할 것과 보존할 것을 결정할 예정이다.

또 학계에서 해당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연구자가 배출됐고

관련 책도 출간됐다.

김윤미 유엔평화기념관 학예사는 지난해 부경대에서

'일제시기 일본군의 대륙침략 전쟁과 부산의 군사기지화'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박사는 문화재청이 실시한 태평양전쟁 유적 현장 조사에 참여하는 등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에 관한 연구 폭을 넓히고 있다.

또 앞서 2014년 KBS 이완희 PD가 '한반도는 일제의 군사요새였다'(나남)란 책을 내놨다.

이 책은 부산을 포함해 남한 전체에 분포한 일본의 군사기지를 조사해 호평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학계는 서둘러 군사시설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리된 부산과 관련된 자료는 문화재청이 2014년 발표한 부산지역 태평양전쟁 유적과 부산시의 일제강점기 방공호 목록뿐이다.

나마 있는 것도 내용이 빈약하다.

문화재청 자료는 가덕도와 태종대, 남구 장자등 포진지 등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

 시의 방공호 목록에는 지역과 숫자만 표기돼 있고 구체적인 규모나 건설 시기 등은 없다.

결국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학계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김윤미 박사는 "역사 단절을 막기 위해서 서둘러 나서야 한다""남아 있는 군사시설이나 흔적을 조사하고 역사적인 가치 여부를 따져서 문화재 지정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암흑의 동굴 내부. 대형 포가 있던 넓은 공터에는 거미줄과 쓰레기뿐이다.

최근 인공 동굴을 포함한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 재조명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단초를 제공한 것은 경기도 광명동굴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광산으로 개발된 광명동굴은

1972년 폐광이 된 뒤 40년간 버려졌다.

이후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해 동굴테마파크로 다시 문을 열었다.

광명동굴은 갱도 면적이 34만2797㎡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크다.

처음에는 무료로 개방하다 지난해 4월 유료로 전환했고 그 뒤 1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해 대박을 쳤다.

올해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국제순회 광명동굴전과

판타지 전문영화제가 열리는 등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광명동굴 성공에 자극받은 부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불을 지핀 것은 연제구 황령산 물만골 지하벙커다.

소유 기업이 지난해 관광명소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올해는 국제 아이디어 공모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용호동 장자등 포진지를 관리하는 남구는 인근 오륙도와 연계한 관광 명소로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3월 추가 동굴 존재 여부를 조사했고 광명동굴 벤치마킹을 위해 현지 답사도 다녀왔다.

남구 윤현섭 문화체육과장은 "장자등 포진지를 지금처럼 방치할 수 없다""오륙도를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고려해 관광 벨트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남구는 조만간 장자등 포진지 정밀 조사와 개발 방안에 관한 용역을 실시할 방침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구다.

올해 발견된 6곳을 포함해 관내에 인공 동굴이 적지 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구의 인공 동굴이 과연 관광 명소로 개발될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더욱이 동광동과 영주동 일부 동굴은 소유권 문제가 얽혀 있어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는 부산의 일제강점기 군사시설 대부분이 안고 있는 문제여서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려면

적지 않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 연구 쉽지않은 군사시설…미군자료·주민증언 힌트

- 김윤미 유엔평화기념관 학예사, 단순히 아픈 역사 흔적 아닌 실제 우리 삶과의 밀접성 강조

   
동굴테마파크로 변신한 광명동굴.연합뉴스

"보여줄 자료가 없어 죄송합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도움을 받으러 갔는데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유엔평화기념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김윤미 박사 이야기다.

김 박사는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군사시설에 대해

"남구 용호동의 장자등 포진지 외 대부분은 도면이 없어 정확한 형태를 단정 짓기 쉽지 않다""특히 군사시설은 보안 때문에 자료 구하기가 어려워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부산은 보급과 수송에서 일본과 대륙을 잇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45년에는 전투병력까지 주둔한 중요한 군사기지였다""당시 1만 명이 넘는 병력이 머물러 군사시설이 많이 건설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밝혔다.

일제에 의해 건설된 군사시설에 대해 김 박사는 "사람이 사는 중구 동광동 인공 동굴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현재에 이르면서 역사가 침전돼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단순히 일제에 의한 아픈 역사 흔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시각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군사시설을 연구하기가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박사는 "대부분 군사시설에 관한 문서는 일본이 퇴각하면서 없앴거나 미군이 가져갔다""일부 일본에 남은 자료는 방위청에 보관돼 있어 방위청 문서를 뒤지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해방 후 주둔한 미군 자료를 연구하거나 생존해 있는 주민들의 증언을 모아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그동안 학계에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고 행정기관에서도 별도의 조사가 없었는데 지금부터 보존은 하지 않더라도 관련 자료를 축적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희국 유정환 기자 kukie@

-끝-



◇ 문화재청 조사 부산의 일제강점기 
  군사시설

영도구 동삼동(태종대)

포진지(추정)

철근
콘크리트

1개

사하구 하단동(에덴공원)

방공감시 진지

소실

1개

사하구 하단동(동아대 승학
  캠퍼스)

창고추정
건물

콘크리트

2개

남구 용호동(이기대공원)

해안포대, 탄약고, 
부대건물

목조, 철근콘크리트

15개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외양포)

부대건물, 포대,대공포진지

목조, 철근콘크리트,
동굴 벽돌조

37개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새바지)

동굴 기관총 진지

암반, 콘크리트

2개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대항포구)

방어용 동굴 진지,경계 표지석

암반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