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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8> '치국(治國)'의 술 ①

금산금산 2014. 3. 12. 15:32

 

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8> 치국(治國)의 술 ①

백성의 이기적인 본능을 다스리는 기술, 그것이 '왕의 자질'이다

임금에게는 술(術)이 있고, 신하에게는 법(法)이 있다-'한비자(韓非子)' '정법(定法)' 편

 

 

 

 

왼쪽부터 한비, 진시황, 상앙

 

# 한비

한비는 전국칠웅 가운데 가장 허약했던 한 나라의 공자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방책으로 '한비자(韓非子)'를 썼으나, 정작 자기 나라

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시황제에 의해 [천하를

통일하는 방책]으로 이용되었다.

한비는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설복시키는 것은 말재주가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높은 뜻과

깊은 마음이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일화이다.


# 진시황

진 나라 시황제(始皇帝, 서기전 259~서기전 210)의 본명은 정(政)이며, 장양왕(莊襄王, 서기전 281~서기전 247)아들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서기전 221년천하를 통일했다.

통일을 이룬 직후 황제라는 칭호를 제정하고 스스로 시황제라 칭했다.

전국을 36군1400여 개으로 편성해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는 한편, 법가 중심

사상통제정책을 실시했다.

문자, 화폐, 도로, 도량형통일했으며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장성을 축조했다.

그러나 불요불급한 사업을 방만하게 벌여 국가재정을 탕진했고, 후계자를 세우지 못해 천하를 통일한 지 불과 15년만에 진 나라망하는 원인을 만들기도 했다.



# 상앙

상앙의 원래 성은 공손(公孫)이다.

재상이 되어 상(商) 나라의 땅을 영지로 받았기상앙 또는 상군(商君)이라고 부른다.

위(韋) 나라 사람이어서 위앙(韋鞅)이라고도 부른다.

위(魏) 나라의 재상인 공숙좌(公叔座)를 섬겼는데, 당시 위 나라의 왕은 맹자와도 인연이 깊은 혜왕이었다.

공숙좌는 혜왕에게 공손앙을 천거하였으나 혜왕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상앙이 진 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 나라를 공격하자, 혜왕은 크게 후회하며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도

 양 나라로 바꾸었다.


법가를 세운 한비(韓非, 서기전 280~서기전 233)이사(李斯, ?~서기전 208)는 젊어 순자에게서 같이 수학

하였다.

그런데 이사의 재주가 한비를 따르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니중에 이사진(秦) 나라재상이 되었는데, 진의 시황제(始皇帝, 서기전 259~서기전 210)는 한비가 쓴

'한비자(韓非子)'를 읽고 크게 감동하여,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말하였다.

한비는 시황의 부름을 받아 진 나라로 가는데, 한비 때문에 자신이 황제의 신임을 잃을까 두려워 한 이사는

그를 모함하여 죽게 만든다.

한비는 흔히 법가를 세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굳이 말하면 법가의 여러 갈래를 하나로 정리하고 통일시킨 사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다.

그 당시 법가에는 크게 법(法)술(術)세(勢)를 중시하는 세 가지 부류가 있었다.

법을 중시한 사람은 상앙(商, 서기전 390~서기전 338)인데, 그의 주장은 엄격하면서도 공정한 법의

집행이다.

상앙은 원래 위 나라 사람이나 벼슬을 얻지 못하자 진 나라로 가 효공(孝公)에게 등용되었다.

그때까지의 법을 보면 사대부는 예로 다스리고 일반 백성들은 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위가 높으면 죄를 지어도 형벌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앙은 태자가 죄를 짓자 그 스승 둘을 불러 한 사람은 코를 베고 한 사람은 얼굴에 자자(刺字)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이때부터 진에서는 죄를 짓는 대부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서쪽 변방의 후진국 진 나라가 강대국이 되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임금이 신하들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이를 중시한 사람은 한 나라의 재상인 신불해(申不害, ?~서기전 337)인데, 한비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는 임금에게는 오직 임금만이 가질 수 있는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권세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 권세 때문이지 덕행 때문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조(趙) 나라 사람 신도(愼到, 서기전 395~서기전 315)가 주요한 인물이다.

한비는 이들의 주장을 모두 모아 [법과 술과 세를 통일한] 법가의 사상을 완성하였다.

   

한비의 사상은 "임금에게는 술이 있고, 신하에게는 법이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이란 '임금이 신하에게 상과 벌을 내리는 일'을 말한다.

이는 임금 아닌 다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임금이 해야 할 일이다.

반면에 은 '정해진 제도와 규칙에 따라서 정사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신하는 함부로 자신의 뜻에 따라 상벌을 취해서는 안 되며, 오직 법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은 '드러나지 않게' 하여야 하며, 은 ;드러나게' 하여야 한다는 말도 있다.

동서고금을 모두 둘러보아도 정치가 문란한 이유는 [술과 법이 제대로 서지 못한] 탓이다.

과거 우리 정부를 보아도 무슨 2인자니 소통령이니 실세니 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정치를 농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정부의 말로는 항상 불행하였다.

지난 정부와 그 앞의 정부에서는 영일대군이니 봉하대군이니 하는 말들이 떠돌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는 대군도 아니고 무슨 대원군이라는 분이 감사원장에게 임명을 통보하고, 검찰총장 인사를 사실상 결정하였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모두 임금에게는 술이 없고 신하에게는 법이 없는 데서 나오는 말들이다.

   

진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의 일이다.

순자가 진 나라에 있었을 때 진의 재상이 그에게

진 나라를 보고 무엇을 느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진나라에는 견고한 요새가 있고, 산물과 자원이 풍부하고, 순박한 백성의 풍습과 옛 음악이 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유자(儒者)가 없다.

그러기에 대국의 조건은 갖추었지만 아직 임금으로서의 사업은 못 이루고 있다."

 

대국의 조건은 갖추었으나, 민심을 하나로 묶을 정치철학이 없다

뜻이다.

글머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비는 순자의 제자이다.

말하자면 순자는 유가의 제자이면서 법가의 스승인 셈이다.

순자가 법가의 스승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그의 주장은 따라서 엄격한 법치와 교육에

의해 사람의 악한 본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법가의 주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법가의 사상을 보면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사랑의 대상이어서는 안 되며, 두려움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생각난다.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권모술수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주장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진의는 국민들 즉 보통사람들은 국가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일신의 편안을 추구하는 이기적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군주는 그런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법가가 엄격한 법치를 주장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뒤에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에게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주장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정치든 경제든 바로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설명 : 명 나라 때 발간된 '한비자(韓非子)'.

원래는 '한자(韓子)'라 불렸으나, 당(唐)나라의 대학자인 한유(韓愈, 768~824)와 구분하기 위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통용되어 왔다. '한비자'는 55편 20책에 이르는 대저술이다. 이 가운데 한비가 직접 쓴 것은 시황제가 읽고 감동했다는 '오두(五)', '고분(孤憤)', '현학(顯學)' 등이며, 나머지는 그의 제자들이 쓴 글과 제자들이 모은 민담 설화 등이다.>


# 상앙의 '移木之信' 일화

- 사람들이 법을 믿게 하려면 가혹한 법을 만들게 아니라 법을 공정히 집행해야 한다

   
이목지신일화를 그린 그림.

진 나라 효공의 신임을 받은 상앙여러 법을 만들었으

과연 백성들이 믿어 줄지 걱정되어 쉽게 공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상앙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큰 나무를 세워 놓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금 열 냥을 준다"

방을 붙였다.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 오십 냥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한 사람이 나서서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그에게 약속대로 금 오십 냥을 주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상앙의 말이라면 신뢰하여], 법령을 공표하면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

'사기'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효공이 죽고 예전에 상앙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태자가 임금에 오르자, 상앙은 역모의 혐의를 받아 졸지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상앙은 변방의 함곡관에 이르러 객사에 묵으려고 하였으나 객사 주인이 그를 받지 않았다.

 상앙의 법에 따라 통행증이 없는 사람은 객사에 묵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상앙은 내가 만든 법이 나를 죽이는구나 하고 크게 탄식하였다.

뒤에 사로잡힌 상앙은 다섯 수레에 묶여 몸을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흉악범죄가 자주 일어나다 보니, 법은 무조건 엄격하여야 하고  형은 무조건 가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형벌이 가혹하여도 죄를 짓고도 이리저리 빠져나가 형벌을 받지 않을 궁리가 있다면,  반드시

죄를 짓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면], 형을 가혹히 할 것이 아니라 법의 집행을 공정하게 하여야 한다.

예전에 부동산투기병역기피 같은 문제로 공직에 나가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법의 공정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 이 정부의 인사청문회에 나선 몇몇 공직자 후보들이, 그런 문제들에 대해 아예

자료 제출조차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제 이 정부가 나무를 옮기라 하면 과연 어느 국민이 나설 것인지 걱정스럽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