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10> 치국(治國)의 술 ③
옛것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 회귀를 꿈꾸는 순간 공포가 된다
<사진설명 : 적에게 인의를 지키느라 나라를 패망케 한 고사를 그린 송양지인(宋襄之仁).
송(宋)나라의 양공(襄公)은 초(楚)나라와 싸울 때 먼저 강 저쪽에 진을 치고 있었고, 초나라 군사는 이를 공격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공자목이(公子目夷)가 송양공에게 이르기를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을 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고 권하였으나
송양공은 "그건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참다운 패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면서 듣지 않았다.>
춘추 시대의 열 두 제후국 가운데 하나인 송(宋) 나라는 한 때 제법 세력을 떨쳤으나 전국 시대에 오면서 급속히 쇠약해 간다.
그래서 그런지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으나, '사기'나 제자백가의 책에서는 송(宋) 나라의 이야기가
부정적인 예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임금이 어리석으면 백성도 어리석다는 교훈인지 반대로 백성이 어리석으면 임금도 어리석다는 교훈인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어리석은 대의명분이나 불필요한 인정에 집착하는 것을 비웃는 말인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송 나라 양공(襄公, ?~서기전 637)의 고사에서 나왔다.
어리석은 농부가 억지로 모를 잡아당겨 모두 말라죽게 했다는 알묘조장(揠苗助長)도
송 나라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맹자'에 나온다.
어리석은 농부가 토끼를 기다리다는 고사 수주대토(守株待兎)를 그린 그림. |
그런데 '한비자'에도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또한
송 나라 사람이다.
한 농부가 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더니 그만 밭 한 가운데 있던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토끼를 얻은 농부는 그때부터 농사일을 팽개친 채
또 토끼가 달려오기를 기다리며 나무그루터기만 지켰다는 것이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의 유래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과거에 옳았던 일이라고 해서 지금도 옳지는 않다는 뜻이다.
'논어'의 '팔일(八佾)' 편을 보면 공자는 "주 나라는 하 나라와 은 나라의 이대를 본보기로 삼아 그 문화가 찬란하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주 나라의 예법을 따르는 것이 온당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비자'의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편을 보면 복자(卜子)라는 인물―다행히 이번에는 정(鄭) 나라 사람의 이야기다 ― 이 아내에게
바지를 지어 달라고 말한다.
아내가 바지를 어떻게 지을까 물으니
복자는 옛 바지를 그대로 본떠 지으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아내가 새 천을 찢어 헌 바지를 지어 놓았더라고 한다.
새 바지는 새로 지어야 마땅하거늘 왜 헌 바지를 본따 지으라고 했느냐는 뜻이다.
이처럼 '한비자'에는 유가를 빗대어 조롱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역시 '외저설좌상' 편에 나오는 차치리(且置履)라는 인물은
신을 사려고 발 문수를 재어 쪽지에 적어 놓았다가 깜빡 잊어 버리고 빈 손으로 시장에 갔다.
쪽지를 잃어버린 줄 안 차치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쪽지를 가져 오지만 그때는 이미 시장이 파한 뒤였다.
사람들이 왜 직접 발로 신어 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차치리가 대답하기를 "자(尺度)는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을 어이 믿겠는가" 하였다고 한다.
신어 보면 내 발에 맞는지 알 수 있거늘 옛 법을 금인 양 옥인 양 따르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이야기다.
꼭 공자건 맹자건 누구라고 찍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가를 보는 법가의 시선이 잘 엿보이는 이야기다.
유가와 법가는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유가의 제자인 순자가 법가의 스승이 된 것도 두 학파의 사상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유가와 법가는 서로를 경쟁자로서 의식하기도 하였던 듯 싶다.
물론 유가보다는 법가 쪽에서 더 그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선인들의 말씀을 두고 감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비의 비유에 적잖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아무리 성인의 뜻이 높고 선대의 제도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오늘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무조건 옳을 수도 없고 그대로 적용해서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연예계에서는 이른바 복고 열풍이 대세라고 한다.
나도 TV나 영화에서 옛날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저절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옛 노래들을 다시 들으면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반갑고 즐겁다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행상품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정말 다시 중고등학생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추억 삼아 옛날의 양은 도시락을 팔기도 한다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일 양은 도시락만 먹으라고 한다면
반가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한 집안의 가장이 집안일은 나 몰라라 팽개친 채 옛날 교복을 입고 책가방에 양은 도시락을 들고
디스코텍만 돌아다닌다면 제대로 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나라살림을 그렇게 운영한다면 참으로 놀랍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경제개발을 위하여 채택했던 정책들을 지금 그대로 추진한다면, 지금도 그때와 같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다.
많이 양보하더라도 우리나라가 7%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국민소득이 겨우 천 달러를 넘긴 시절의 일이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은 지 오래인 지금 그 정책들을 그대로 추진하자는 주장은
마치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를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주장이다.
새마을 노래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애고…"
거꾸로 이야기하면 새마을 노래는 지붕은 초가집이고 마을길은 좁디좁던 시절의 노래라는 뜻이다.
창조경제 시대에는 당연히 맞지 않다.
경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 우리 사회에는 무작정 옛 법이 좋았다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장주는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서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꾸는지 나비가 장주의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예비역 남성들은 나이가 쉰이 넘어서도 군대 꿈을 가끔 꾼다지만, 21세기의 내가 지금
유신 시대의 꿈을 꾸는 것인지 유신 시대의 내가 21세기의 꿈을 꾸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 동서고금 정치의 갈등 '머무를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효공(오른쪽)과 상앙. 효공이 상앙의 법치의 도를 듣고 있다 |
진 나라가 대국이 되고, 천하를 통일하게 된 데에는
상앙의 변법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예전에 이야기한 바 있다.
효공(孝公)이 상앙을 등용하여 법을 바꾸려 하자, 신하의 우두머리 격인 감룡(甘龍, ?~?)이 반대했다.
감룡이 말하기를 "성인(聖人)은 풍속과 예절을 바꾸어 백성들을
가르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법을 바꾸어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익숙한 풍속과 관습을 좇아 가르치면 애쓰지
않아도 공로를 이루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법을 좇아 백성들을 다스리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해 할 것입니다."
다른 신하인 두지(杜贄, ?~서기전 255)도 나서 반대하였다.
"100배의 이익이 없으면 법을 바꾸지 않고, 10배의 공로가 없으면 그릇을 바꾸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옛 법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절을 좇으면 사악함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임금께서는 이것을 살피십시오."
감룡은 진 나라의 세족명신으로, '사기' 이외에도 상앙이 쓴 '상군서(商君書)'나 '전국책(戰國策)' 등에도
그 이름이 여러 번 나온다.
두지는 대부의 벼슬을 지냈을 뿐 아니라, 문학가로서도 유명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더 자세한 이력은 알기 어렵다.
아무튼 '사기'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효공과 세 신하의 대화는 보수와 진보의 정의를 잘 보여 준다.
진보란 옛 법을 고쳐 백성을 이롭게 하자는 것이며, 보수란 옛 법을 지켜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심각하다고들 한다.
진보가 옳으냐 보수가 옳으냐는 사람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무튼 진보든 보수든 그 핵심은 백성을 위하는 데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우리 정치에서 언제 제대로 된 법이 있어 본 적이나 있는가.
보수든 진보든 도대체 법이 있어야 지키든 고치든 할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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