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11> 치국(治國)의 술 ④

금산금산 2014. 4. 3. 08:23

 

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11> 치국(治國)의 술 ④

정책결정은 작은 생선을 굽듯…채신없이 뒤집지 말고 백성의 도에 맞게

성인은 마음에 고정된 바가 없으며, 백성들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는다-노자의 '도덕경'

 

 

 

주(周) 나라가 망하고 진(秦)시황제가 다시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시기를

춘추 시대전국 시대라고 부른다.

 

주 나라 말기에는 시절이 하 수상함을 깨달은 현자들이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는 일이 많았다.

주 나라의 서쪽 관문인 함곡관의 수비대장이던 윤희(尹喜)는 어느 날 푸른 소를 타고 온 진인(眞人)을 만난다.

윤희가 가르침을 청하자 진인은 5000여 자에 이르는 글을 남기고 함곡관을 떠났다.

이 진인이 바로 노자(老子)이며, 이때 그가 남긴 글이 '도덕경(道德經)'이다.


도가는 제자백가 가운데 유가와 비견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사상이다.

그런데 정작 도가의 시조인 노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진(陳) 나라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주 나라의 사고를 지키는 벼슬을 하였다는 말도 있지만, 정작 주 나라에는 그런 벼슬이 없었다고도 한다.

젊은 공자가 노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역시 후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노자와 공자에 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도가의 전승을 이은 장주(莊周)의 책 '장자'에 나온다.

그러니 장주가 다분히 사정을 과장하거나 윤색하였을 가능성도 크다.

다만 노자의 속성은 이(李)씨인데도 이자가 아니라 노자로 불린 연유로 볼 때,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가들보다 윗 연배였던 사실은 분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노자의 사상을 가장 잘 요약한 말은 '무위자연(無爲自然)', '무위이치(無爲而治)'이다.

무위자연은 아무런 작위나 인위적 요소가 없는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다는 말이며,

무위이치는 그러한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라는 말이다.

 

'도덕경'에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의 뜻은 새기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하라는 것일까?

요즘은 가사 일을 돕지 않는 남편들을 두고 간 큰 남자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가사 일을 돕겠다고 나서도 그다지 탐탁치 않을 때가 많다.

돕는답시고 오히려 더 어질러 놓고 새로 일거리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선을 굽는 일이 바로 그렇다.

작은 생선을 굽는데 혹시 타지 않을까 뒤집었다가 덜 익은 것을 보고 또 뒤집었다가,

이런 일을 몇 번 하다 보면 겉은 타고 살은 부스러져서 도무지 먹을 것이 없다.

 

 

   
함곡관을 나서는 노자를 그린 단원 김홍도의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노자는 중국 화가들뿐 아니라, 겸재 정선을 비롯하여 여러 우리 화가들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경제도 이와 같아서 가령 경기가 하락한다고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 섣불리 이런 정책으로 개입했다가,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인다고 또 저런 정책으로

개입하기를 왔다갔다 하다보면, 나라 경제가 작은 생선마냥

부스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연의 도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자의 치국관은 가까이는 사마천의 사상과 비슷하고, 멀리는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와도 다르지

않다.

더러는 도가의 사상을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 해석하는 사람들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을 너무 단순화시켜서 해석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흔히 제자백가의 사상은 대체로 도가를 한 편으로 하고 다른 사상들을

또 한 편으로 한다고 말한다.

세세한 점에서는 차이가 있어도 유가법가 등은 모두 현실참여

주장한 반면, 도가세상을 버리고 은일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해지는 노자의 전설, 즉 노자가 함곡관을 떠난 일을 연상시키면서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정작 '도덕경'을 읽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도덕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오히려 험난한 세상을 무난히

살아가기 위한 지혜에 더 가깝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큰 뜻을 품고 세상에 나간다는 것은 마치 검림지옥(劍林地獄)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이다.

그래서 노자는 그런 위험을 피하는 지혜를 말할 뿐,

세상을 버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은 장자와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장자와 관련해서는 아예 세상에 나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가령 '사기'를 보면 초(楚) 나라 위왕(威王)이 대부 두 사람을 보내어 재상을 삼으려는 뜻을 전했더니,

장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당신이 거북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장자 스스로가 한 이야기이므로, 정작 장자가 세상에 나가기를 거부하였는지 세상에 나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신세를 거꾸로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노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세상에 나가지 말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세상에 나가되 이러저러하게 처신하여 몸을 보존하라는 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법가는 물론 유가도 너무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려 드니 몸을 상하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 곧으면 곧은대로 굽으면 굽은대로,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

   

나비의 꿈을 꾸는 장주를 그린 그림.

'장주몽접(莊周夢蝶)'.

졸업한 학생에게서 오랜만에 메일을 받았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많이 생각납니다만, 그 가운데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단지 쓸모가 서로 다를 뿐이지 하셨던 말씀이 가장 생각납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하여 세상에 꼭 쓸모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스스로 하려니 좀 민망하기는 하다마는 그렇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쓸모가 서로 다를 뿐이지.

'논어'나 '노자'가 교과서라면, '장자'는 이야기책이다.

'장자'에는 재미있는 비유와 상징이 많이 나온다.

장자는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인데, '맹자'에도 자주 나오는 위 나라

혜왕의 재상이자 명가의 논객인 혜시(惠施)는 장자의 친구이자

논적이었다.

 

하루는 혜시가 말하기를, "위 왕이 나에게 큰 박씨 하나를 주길래 땅에 심었더니 다섯 석(石)이나 되는 큰 박이

열렸네. 박이 너무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깨뜨려 버렸네"라고 하였다.

이에 장자가 대답하기를 "어이 자네는 그 박을 쪼개 배를 만들어 강에 띠워 즐기려 하지 않았는가?"고 하였다.

또 혜시가 말하기를, "우리 집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대어 널빤지로

쓸 수 없고, 그 가지는 굽어서 곡척을 댄들 쓸모가 없다"고 하였다.

역시 장자가 대답하기를, "지금 그대는 그 커다란 나무가 쓸모없이 덩그라니 서 있는 것만을 걱정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넓은 들에 그 나무를 심고, 그 옆에 하릴 없이 거닐다가 그 아래 누워 잠을 즐기려 해 보지 않는가?"고 하였다.

혜시는 자신의 기준에서 이 나무는 굽어서 쓸모없다, 저 박은 너무 커서 또 쓸모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자는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쓸모가 있고, 큰 박은 큰 대로 쓸모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쓸모가 다르다는 이치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사람을 쓸모에 맞게 쓰지 못하는 것이다.

꼭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청년층 고용률이 겨우 40%밖에 안 된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도 청년실업률은 7.5%를 넘으며, 다른 자료에서는 16.7%라고도 한다.

일자리가 없어서 아예 취업을 포기한 잠재실업률은 또 21.2%를 넘는다고 한다.

이 청년들이 모두 쓸모가 없어서 쓰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사회가, 기업들이 이들을 쓸모에 맞게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