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9> 치국(治國)의 술 ②
나라의 인재를 골라내는 왕의 '감식안'이 백성의 안녕을 좌지우지한다
천리마를 칭찬함은 그 힘이 아니라 그 덕을 칭찬하는 것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편
중국 화가 정세필(丁世弼, 1939~ )의 그림 '관포지교(管鮑之交)'. |
관중(管仲, ?~서기전 645)은 젊어 포숙(鮑叔, ?~?)과 사귀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장사를 하면서 관중은 포숙을 속였으나
포숙은 한 번도 관중을 탓하지 않았다.
관중의 집안이 빈궁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뒤에 관중은 제(齊) 나라 공자 규(糾)의 신하가 되고,
포숙은 규의 이복 아우인 소백(小白)의 신하가 되었다.
제 나라 양공(襄公)이 죽자 이복형제인 공자 규와 소백이
왕위를 놓고 다투게 되었다.
관중은 소백이 귀국하는 길에 매복해 있다가 그를 암살하려고 하였다.
화살을 맞은 소백이 쓰러지자 관중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규에게 소백을 죽였다고 보고하였다.
경쟁 상대가 사라졌다고 믿은 규는 느긋한 마음에 천천히 군사를 이끌고 왔으나, 이미 소백이 먼저
제 나라에 들어온 뒤였다.
관중의 화살은 허리띠에 맞았지만, 포숙이 일부러 죽은 척하여 규를 안심시키라는 꾀를 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백이 제 나라의 임금이 되니, 바로 춘추오패의 첫 번째 자리에 꼽히는 제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관중을 잡아 죽이려고 했으나 포숙이 환공을 설득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도록 하고, 자신은 기꺼이 관중의 아랫자리에 만족하였다.
훗날 관중은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진정으로 나를 알아 준 사람은 포숙(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
이라고 말하였다.
유명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유래이다.
'사기'의 '관안열전(管晏列傳)'과 '춘추좌전(春秋左傳)'의 '장공(莊公)'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관중(管仲) |
제 환공이 춘추오패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관중의 뛰어난 능력이
큰 역할을 하였다.
관중은 강력한 부국강병책으로 써 상업과 공업을 육성하고,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하였다.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한 관중의 부국책은, 사마천이 다른 곳에서 주장한 자연의 도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사마천은 '사기'의 여러 곳에서 관중을
늘 높이 평가하였다.
가는 길은 달라도 가고자 하는 곳이 같고,
방법은 달라도 제민의 도리는 같았기 때문이다.
공자도 관중에 대해서는 평가가 인색하였는데, 임금으로 하여금 왕도로 천하를 다스리는 군자가 되도록 하지 않고 패자로 이름을 떨치도록 하였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면서 공자 또한 말하기를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오랑캐의 꼴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관자(管子)'의 '치국' 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백성을 먼저 부유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고,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왜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쉬운가.
그 마음이 어질기 때문이다.
한 때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경기침체가 10년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또 경기침체가 10년을 넘어 어느덧 20년을 넘어가니
이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기도 하다.
아무튼 많은 전문가들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변화는 평범한 시민들이 사나워졌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보통사람들의 표정이 무거워지고 행동거지가 거칠어졌다는 이야기다.
경기침체가 오래 계속되니 생활은 더욱 힘들어지고, 미래는 아무 희망도 없이 불안하기만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면서 작은 배려나마 베풀 만한 여유가 전혀 없어진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사교집단의 지하철의 독가스 살포 사건 같은 경우는 그런 변화의 극단적인 예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도 그렇고, 숭례문 방화 사건도 그렇다.
백성이 풍요롭지 못하면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마음이 어질다는 것이 꼭 물질이 넘친다는 뜻은 아니다.
이웃과 나눠 쓰고자 하는 마음에 거리낌이 없을 때 부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누가 만들 것인가.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백성이 어질 수 없거늘 말이다.
관포지교는 흔히 매우 친한 친구 사이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이야기를 보면 포숙이 일방적으로 관중에게 배려한 일들뿐이고,
관중이 포숙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관중은 임종 직전에 환공이 자신의 후임으로 포숙을 재상에 임명하려 하자,
포숙은 재상에 적당한 인물이 아니라며 반대하였다.
관중은 포숙이 나와 친하다가 아니라 나를 알아주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중도 포숙을 알았을까.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니 포숙을 재상으로 삼지 말라고 했던 것을 보면 관중도 포숙을 제대로 알았던 모양이다. 친하다거나 또 예전에 은혜를 입었다고 재상에 추천하는 것은 오히려 포숙을 위하는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나라를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준현 |
관중을 평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공과 사가 분명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주영 대사관이 인턴 직원을 뽑으면서 주미 대사관에서와 같은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어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뜻인 줄 모를 사람이 없다.
윤 아무개 전 대변인이나 요즘 어떤 고위 공직자들을 보면,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공직자들을 얼마나 제대로 아는지 궁금하다.
공자는 천리마를 칭찬하는 것은 그 힘이 아니라 그 덕을 칭찬한다고 하였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이다.
그래서 흔히 천리마의 덕은 빠른 데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공자가 말씀한 천리마의 덕은, 천리를 달리는 데도 마치 집안의 의자에 앉아 있듯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에 있다.
재주 많은 정치가 좋은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는 뜻이다.
◇ 관중(管仲)
관중은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이다.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자이다.
제 환공을 도와 토지등급에 따라 세금을 걷고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염전과 제철업을 육성하는 등 강력한 부국강병책으로 제 나라를 춘추시대의 가장 막강한 맹주로 만들었다.
"창고가 가득 찬 뒤에야 예절을 안다"는 말로 도덕과 교화가 물질생활을 기초로 함을 주장하는 한편, "예의염치가 널리 퍼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로 도덕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 군주의 신념이 물드는 것의 위험성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중요한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자 노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뒤집어 버렸다.
분양원가 공개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변하고 사정이 달라지면 대통령의 공약도 취소할 수 있다.
다만 내가 듣기에 그 당시 정부의 변명은 참으로 구차하였다.
원가를 공개하는 일은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신의성실의 의무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것이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며,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면 불과 몇 개월 전에
공약을 내걸 때는 시장원리도 모르고 그랬다는 말인가.
묵자가 실을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탄식하였다.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래지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래진다.
그러므로 물들이는 일은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을 물들이는 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의 군주에게도 물들이는 일이 있다."
군주에게 물들이는 일이란 어떤 신하를 가까이 두느냐는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말하자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는 파란 물감이 들었다가, 시장원리를 핑계로 그것을 철회할 때는 노란 물감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한 번 공약을 내걸었다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맹자도 "소인은 신(信)을 지키고 군자는 의(義)를 지킨다"고 하였다.
한 번 뱉은 공약이라고 잘못된 줄 알면서 고집하기보다는, 잘못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의 공약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토록 천대받아서야, 예전 정부든 지금 정부든
옳은 일이 아니다.
<사진설명: 청 나라 화가 예전(倪田)의 '고사세이도(高士洗耳圖)'.
요 임금이 왕위를 받아달라고 청하자, 허유(許由)가 귀를 씻었다는 고사를 그린 것이다.
묵자는 이렇게 말한다.
"순 임금은 허유와 백양에게 물들고, 우 임금은 고요와 백익에게 물들었다. 탕왕은 이은과 중훼에게 물들고 무왕은 태공과 주공에게 물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성군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 나라의 걸왕은 간신과 추치에게 물들고, 은 나라의 주왕은 승후와 악래에게 물들었다. 그래서 나라는 패망하고 자신은 죽게 된 것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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