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18> '업은골'의 열녀
호랑이로부터 남편 구한 김해김씨 열녀
- 장소: 금정구 부곡3동
- 부부 함께 마당서 잠자다
- 남편 문 호랑이 꼬리 잡고
- 산속서 구출해 업고 내려와
- 열녀로 추앙 비석 세워져
업은골에서 남편을 구한 김해 김씨 열녀비는 현재 금정구청 금샘뜰 한 켠에 모셔져 있다. |
- 태풍에 무너져 방치됐으나
- 효친사상 고취 원위치 복원
기찰(機察)마을은 동래의 진산 윤산(輪山·옛 구월산) 기슭,
지금의 금정보건소(부곡3동 78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이다.
십휴정(十休亭)기찰은 지금의 금정농협 기찰지점 자리에
검문소가 있었다는 연유로 마을 이름이 기찰로 불리고 있다.
조선 정조(재위 1777~1800) 때 기찰마을에
김효문이라는 선비가 김해 김씨 처와 살고 있었다.
젊은 김씨 부부는 한여름 밤에 더위를 식히려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모깃불을 피워 놓고
그 옆에서 나란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한밤중에 난데없이 큰 호랑이가 나타나 남편을 물고 가려는 찰나
잠결에 놀라 깨어난 부인이 호랑이의 꼬리를 잡았다.
남편을 문 호랑이는 그 부인이 꼬리를 잡자 산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 논밭을 지나 바위와 나무 투성인 산속으로
호랑이는 그녀의 남편을 물고 뛰었지만
그 부인은 '사람 살려주세요'라고 큰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의 꼬리를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호랑이는 윤산 업은골 중턱에서
그의 꼬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부인에게 질려버려
그녀의 남편을 그대로 두고 도망쳐 버렸다.
부인은 업은골에서 남편을 구출해 업고 집까지 힘겹게 내려왔으나
결국 남편은 소생하지 못하고 곧바로 죽고 말았다.
부인도 이로 인해 충격을 받아 이내 절명하고 말았다.
날이 샌 후 마을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김씨 부인은 열녀로 추앙받아 열녀 비각에 모셔졌고, 동시에 마을사람들은 호랑이로부터
남편을 구해 업고 내려온 골짜기를
'업은골'(현재 가톨릭대 계곡 일대)이라 부르고 있다.
열녀 비각은 황산도로에서 북면사무소로 통하는 길 옆
주재소 앞에 있었지만 1959년 발생한 사라호 태풍 때
무너져 방치돼 있었다.
이후 1970년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확장공사 때 철거되어
도로변에 방치된 것을 김종암 전 부산시의원의 주선으로
경로당(부곡3동 26-11) 담벼락으로 옮겨 철장 안에 열녀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2003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인 김종오 씨는 금석문 보호 차원 및 효친사상 고취를 위해
열녀비를 원위치로 복원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였지만
이듬해 금정구청 광장에'금샘뜰'이 조성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파고라 왼쪽 화단으로 다시 이전 설치를 하였다.
비의 몸통 전면 중앙에는 '열녀학생김효문처김해김씨지려(烈女學生金孝文妻金海金氏之閭)'라고
음각돼 있고, 옆면에는 '건륭54년기유10월 일 입(乾隆五十四年己酉十月 日 立)'이라 새겨져 있다.
김효문의 처 김해 김씨 열녀비는 1789년(정조 13년) 세워졌다.
열녀비의 규모는 2단 기단으로 가로 70㎝, 세로 45㎝, 너비 55㎝인 기단 중앙에 비의 몸통 높이가 78㎝,
폭 33㎝, 두께 18㎝의 크기로 세워져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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