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이야기 공작소 <15-6> [산복도로 숨은 보석 찾기]- 팩션: 아미동 '비석마을'의 비밀

금산금산 2014. 9. 6. 17:35

이야기 공작소 <15-6>

[산복도로 숨은 보석 찾기]- 팩션:

아미동 '비석마을'의 비밀

 

 

레이코는 사랑하는 이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권총을

안중근에게 전했다

 

 

 

그림=박호·화가

 

 

-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몰살당한
- 야마모도가 유일 생존자 레이코
- 가문 원수 암살 기도 조선청년에
- 벨기에제 M1900 권총 넘겨줘

- 부부로 위장해 국경 건넜지만
- 日 군대 총격받고 청년은 숨져
- 안 의사에 권총 넘겨주고 도피
- 부산 아미동서 숨 거두고 묻혀

 

# 1

'明治四十二年十月二十日(명치42년 10월 20일)'

나는 이름도 없이 사망 날짜만 적힌 비석 앞에서 물 한 그릇을 떠놓았다.

이곳 비석마을이 옛날 일본인의 공동묘지 터 위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비석의 임자도 일본인일 것이다.

내가 집의 창고 안벽에 박혀 있는 비석 주인에게 물 한 그릇을 올리는 일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죽음이 죽음을 부르는 것인가?

나도 오늘 이 비석 밑으로 들어간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집 창고 벽에 박힌 비석이 싫어 돌로 긁거나 발로 툭툭 찼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말했다.

"행석아, 또 발로 차제. 니 그라모 동티난다!"

마루 밑에 있는 영혼을 잘 모셔야 우리 집이 복을 받는다고 함부로 뛰어다니지도 못하게 했다.

비석이 있는 집들은 모두 우리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복은 무슨 얼어 죽을 복인가.

그렇게 비석의 영혼을 고이 모시던 어머니는 일찍 청상이 되고 평생을 병과 가난 속에서 살다 돌아가셨다.

결혼도 못한 채 생파리같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나에 비하면

그나마 어머니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절망과 분노로 움켜쥔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비석 앞에 차려 놓은 하얀 도자기 그릇의 물을 마셨다.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 약을 꿀꺽 삼킨다.


올해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며 수면제를 사 모으는 약국 순례를 중단할까도 생각했다.

선실에 갇혀 '살려줘'라고 외쳤을 아이들.

그들에게 나갈 문은 얼마나 절박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나도 지금 어둡고 물이 차오르는 선실에서 손톱으로 벽을 긁으며 '살려줘'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성채영이 남긴 마지막 말이 잠시 머뭇거린 약국 순례를 계속하게 했다.

"행석 씨, 이제 그만 만나고 헤어져."

그녀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세상이 나에게 문을 닫았다.

죽음으로 간다는 생각 탓인지 벌써 졸음기가 느껴진다.



# 2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가면

 축대나 받침돌로 쓰인 비석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가시밭길로 들어갔다.

내가 이곳 비석동네에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다가 인도양에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청상이 된 어머니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슴이 꺽꺽 막힐 때마다 내 어린 발로 가슴을 밟아달라고

하더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자는 중에 돌아가셨다.

 나는 일어나지 않는 어머니를 흔들며 얼마나 깨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부모를 잃고도 좌절하지 않았다.

신문배달, 식당알바, 노가다를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해 나가는 거야.'

어려울수록 운동화 끈을 더 단단히 졸라매었다.

고학으로 공부해 지방 명문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선배 동료들을 따라

행정고시 공부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일차에는 늘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으나 2차에 번번이 낙방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또 치고 또 치고 하다가 어느덧 나이가 서른, 고시낭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몸에 미열이 나고 기침이 멎질 않았다.

병원을 찾았더니 뜻밖에도 결핵 판정을 받았다.

요즘 결핵은 큰 병이 아니라지만 독한 약을 먹으면서 몸이 까부라져 공부할 기력을 잃어버렸다.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정답이다.

졸음이 몰려온다.

짙은 약 기운이 나를 뿌연 곳으로 데리고 간다.

"어머니 아버지 미안합니다. 당신의 못난 아들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다 이제 당신 곁으로 갑니다."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맞아 최대 규모의 민족대이동을 하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시간이 걸린다는 둥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눈앞에 갑자기 하얀 기모노를 입고 게다 소리를 내는 일본 여인이 등장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귀신이 사는 저승에 왔는가?'

옛날에도 이 비석마을에서 심심찮게 일본 귀신에 대한 목격담이 전해져 왔지만 미신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런데 게다 끄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젊은 일본 여인이 창고 방 앞에 멈춰 일본식 반절을 하면서 말했다.

"행석 씨."

"누구세요?"

"난 일본여자 레이코예요. 당신과 당신 어머니가 늘 영혼을 위로해 주던 야마모도 레이코."

"당신이 바로 이 비석의 주인이오?"

"그래요. 나도 한이 많은 여자지요."

기이하게도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도 그녀의 말소리가 귀에 들렸다.

아니, 그녀의 삶이 일목요연하게 스크린처럼 다 비쳤다.



# 3

1909년(명치42년) 10월은 경술국치 한해 전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반일 의병들이 일어나 전투를 벌이던 때였다.

독립의병단 경상지부 소속이었던 김용직은 조선의 왕을 겁박하여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고

만주를 진출하려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려는 꿈을 안고 있었다.

당시 조선청년이면 모두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일부는 성능이 좋지 않는 육혈포로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명사수였던 김용직도 그 중 하나였지만 그는 반드시 이토를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을 굳힌 열혈청년이었다.

그는 고향 부산을 떠나 현해탄을 건너 동경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먼저 요코하마의 무기상을 찾았다. 무기상은 뜻밖에도 일본의 젊은 여자였다.

"육혈포 같은 것 말고, 성능이 뛰어난 권총 있소?"

"조선청년이 고성능의 권총을 찾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밀무역을 하는 당신에겐 이유보다 돈이 더 중요할 텐데."

"아무래도 암살용을 찾는 것 같은데 이건 어때요?"

무기상 레이코가 내민 권총은 벨기에제 M1900 브라우닝 자동권총이었다.

"당신은 우리 일본제국의 심장에 총을 겨누려는 거죠?"

"신고할 거야? 밀무기상도 신고대상일 텐데."

김용직이 돈을 지불하고 총을 받고 돌아서서 나가는데 등 뒤에서 레이코의 말이 들렸다.

"이토 히로부미는 저의 가문의 원수예요. 저의 집안은 이토 히로부미 때문에 전멸했어요."

전통적인 사무라이 집안인 야마모도 가는 세이난 전쟁 때 이토가에게 패해 아버지는 배를 갈라 죽고

온 집안이 처형당하고 단 하나 어린 딸이었던 그녀만이 시체 가운데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코는 당돌했다.

"사실 전 언제 조선인이 여기에 나타나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난 조선인이 좋아요."

"왜? 다들 '기타나이 조센징(더러운 조선인)'이라고 하는데..."

"천만에요. 보시다시피 키도 크고 말도 시원시원하고 호남형이잖아요."

그녀는 무정부주의자로 조선인이 여기에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그녀 자신이 직접 이토를 처형해

가문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날 둘은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하는 데 하나가 되었다.

이후 둘은 사랑에 빠져 함께 조선으로 가는 관부연락선을 탔다.

경부선을 타고 올라간 김용직과 레이코는 경성으로 잠입해 이토 히로부미를 노렸으나

사실상 조선의 왕인 그에 대해 경호가 철저해 저격할 틈이 없었다.

마침 그때 낭보가 들어왔다.

"레이코, 이토가 이제는 중국마저 먹기 위해 만주 하얼빈으로 간다는군."

"원래 그자는 탐욕의 화신이지요. 만주는 아무래도 조선보다 경호가 허술할 거예요."

"다만 우리가 압록강 검문을 통과하는 게 문제야."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좋아. 일단 부부로 위장하고 압록강을 넘어가자."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압록강 검문 검색이 물샐틈없이 강화되었다.

마지막 밤 열차를 탄 김용직과 레이코는 압록강을 무사히 넘었으나 도문역에 파견나온

일본 경시청 소속의 특별고등계 형사에게 걸려들었다.

"조선인과 일본인 부부라, 이거 수상한데."

눈매가 쥐눈처럼 작고 매서운 경시청 특고는 조선인으로 위장한 레이코를 단박에 알아봤다.

이들은 얼굴과 신체에 나타나는 각종 인종적 특성을 연구해 일본인 사회에서 조선인을 정확하게 구별해내

차별하는 능력을 지녔다.

"둘이 잠시 경찰서까지 가야겠다!"

"왜 뭐가 잘못됐소?"

"그냥 기분이 나빠. 기타나이 조센징과 우리 대일본제국의 처녀가 어떻게 결혼해서

이곳 만주까지 올 수 있단 말인가. 둘 다 따라와, 느낌이 아주 개같아."



둘은 발각되는 순간 최후까지 싸우기로 미리 약속해두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이 있었다.

"레이코, 만약 내가 실패하면 하얼빈의 안중근에게 이 총을 전해주게.

그는 나를 능가하는 명사수로 우리 독립군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토를 죽여줄 수 있을 거야."

탕탕탕, 김용직의 총 끝에서 불이 뿜으며 둘을 검문하던 특고가 쓰러졌다.

심야의 총소리를 듣고 도문역에 주둔하던 일본 군대가 순식간에 몰려와 응사했다.



"윽."

김용직이 배를 움켜쥐고 레이코에 말했다.

"난 틀렸어. 이 총을 안중근에게 전해줘. 레이코 사랑해."

일본 군대는 레이코와 반대로 뛴 김용직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고 레이코는 짙은 만주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4

내가 깨어난 것은 토성동 부산대 병원 응급실이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여의사가 레이코로 보였다.

"레이코, 레이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왜 약을 먹고 죽으려고 하는지…."

레이코가 비석 밑으로 사라지기 전에 말한 기억이 희뿌윰하게 떠올랐다.

"난 김용직 씨의 온기가 남아 있는 권총을 안중근에게 전했죠.

뛸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다리에도 피가 흐르고 있는 거예요.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 다리의 총상이 파상풍으로 번져 이곳 부산에서 죽어 이곳에 묻혔죠."

 

 

비석마을의 비석 글귀.

"안중근 의사는요?"

"내가 죽은 지 엿새 뒤에 하얼빈에서

조선인의 공적이자 우리 가문의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죠."

"아, 레이코 씨는 우리 민족에 참 고마운 분이에요."

"정말 나라가 고마워해야 할 분은 어려울 때 용기를 낸

김용직 씨와 같은 사람이죠. 행석 씨도 그런 사람이 될 거예요.

내가 응원할게요."

나는 두 주먹을 쥐고 병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끝-


■ 후기

부산 아미동 산 19번지 비석마을.

이곳에서는 흰 기모노를 입고 게다 소리를 내는 일본 귀신에 대한 목격담이 전해져 온다.

이곳이 바로 100여 년 전 한일합방 전에 만들어진 일본인 공동묘지였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인들은 중구 복병산, 동구 증산공원 주변 등 부산지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공동묘지를

서구 아미동 아미산 자락으로 옮겼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전국 각지의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이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지하에 유골을 품고 사는 집들이 많다.

요즘은 감천문화마을과 연계되어 많은 사람들이 세계 건축사상 매우 희귀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비석마을을 찾고 있다.

난 이 마을에서 '明治四十二年十月二十日'이라 새겨진 비석을 보고 이 글을 썼다.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골목길에서 발길마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김하기 소설가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