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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 <16-1> [신선(神仙)한 부산]- 부산은 '신선 판타지'의 보고

금산금산 2014. 9. 14. 07:38

이야기 공작소 <16-1>

[신선(神仙)한 부산]- 부산은 '신선 판타지'의 보고

 

영도 봉래산·배산 겸효대·강서구 칠점산 '신선문화 삼각지대'가 깨어난다

 

 

 

그림=서상균 기자

 

 

- 한민족 고유의 선풍 ·도교 영향
- 철학·민속 등 풍성한 문화 토대

- 진시황 불로초 등 10여곳 자취
- 콘텐츠로 빚어 적극 활용해야
- 전문가, 仙遊여행 시행 제안


 

# 부산지역은 신선의 땅?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있는 금정산성 부설비와 받침돌에 새겨진 '백록동천' 글귀.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바위언덕신선이 노닐던 자리라고 한다.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

지금은 주변이 시가지로 변해 옛 정취가 사라졌지만

원래는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지류의 포구였다.

덕포의 원래 이름은 덕개.

덕은 언덕을 뜻하므로 덕포는 언덕 끝에 배를 대는 포구란 의미.

주민들은 이곳의 위 아래를 각각 상강선대(上降仙臺, 할배당산)

하강선대(下降仙臺, 할매당산)라 부르며 신성시 한다.

[금정구 장전동] 일대의 소하정(蘇蝦亭) 소하라는 사람이 흰 사슴을 타고

금구선인(金龜仙人)과 놀았다고 전해지는 곳.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래현 고적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전동 GS아파트 101동 옆 쌈지공원에 있는 금정산성 부설비에 신선놀음의 자취가 있다.

19세기 초에 세워진 금정산성 부설비의 받침돌에 '白鹿洞天(백록동천)'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백록'은 흰사슴이 뛰노는 곳이란 뜻이고, '동천'은 그윽하고 운치어린 계곡, 즉 신선이 사는 선경을 일컫는다. 장전동 일원에 소정마을, 소정교회, 소정탕 같은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산에는 이처럼 신선문화의 자취나 전설을 남기고 있는 곳이 10여 곳에 이른다.

영도 봉래산, 신선동, 영선동, 청학동, 신선대(용당동), 신선암(태종대), 광선대(문현동), 칠점산(강서구), 겸효대(배산), 학장동, 승학산 등이 모두 그런 곳이다.

전설 형태의 이야기가 많지만, 문헌에 언급되거나 바윗글 등 자취로 남은 것도 있다.

신선문화 판타지 또는 콘텐츠로 빚어낼 수 있는 좋은 원석들이다.




# 영도 봉래산의 신선들

영도 봉래산(蓬萊山, 395m) 주변에는 신선이 들어간 동명(洞名)이 많다.

봉래산 자체가 그렇거니와 영선동(瀛仙洞) 신선동(新仙洞) 청학동(靑鶴洞) 봉래동(蓬萊洞)

모두 신선과 연관이 있다.

이들 지명은 1883년 절영진 첨사로 부임한 임익준이 행정개편을 하며 붙인 것으로 돼 있다.

임익준은 절영도에서 많은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송덕비가 영도여고 뒤편에 남아 있고, '승정원일기'에도 그의 행적이 나온다.

당시 [영도]는 인적 드문 절해고도신비스러운 섬이었다.

임익준이 중국의 삼신산((三神山) 전설을 바탕으로 지명에 신선을 끌여들인 것은

난세인 구한말에 영도지역을 신선이 사는 낙원처럼 가꿔보려 한 바람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이름들이 붙여진 데에는 지역의 전설 또는 구전이 바탕이 됐을 것 같다.

혹자는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과도 관련 있을 것으로 본다.

영도 태종대의 영도등대 주변의 신비로운 경관을 신선대, 신선암, 망부석 등으로 부르는 것도

신선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곳에는 옛날 선녀들이 놀러왔다 돌아갔다는 전설과

왜인에게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돌덩이로 굳어버렸다는 애틋한 전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영도구는 지난달 봉래산 자락에 '불로초 공원'을 열어 신선문화 콘텐츠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봉래산 일대의 신선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 스토리텔링될 지 주목된다.




# 광선대, 서시과차 이야기

'2233년 전, 중국 진시황의 사절단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부산 문현동에 왔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를 전해주는 비석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그 당시 사절단을 이끌던 사람은 서복(徐福, 일명 徐市).

그의 내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서시과차(徐市過此)'라는 돌비석이 일제시대 때까지

문현동 장고개를 오르는 길목에 있었다고 한다.

'서시과차'는 '서시(서복)가 한때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으로, 일명 '서불과차'로도 일컬어진다.

그곳이 바로 광선대(廣仙臺, 일명 강선대), [남구 장고개]로 85번길 배정고등학교 뒷산 어름이다.

산등성이에 서면 우암동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주변이 개발되기 전에는 경관이 수려하여 신선놀음을 할 만한 자리다.

문현동의 '서시과차' 비석은 전설이 희미해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과 함께 신선 이야기만 나오는 약방의 감초처럼 이곳이 거론된다.

용당의 신선대나 영도 봉래산과도 그리 멀지 않아 어떤 형태든 연관성도 있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조사나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 선인 김겸효와 겸효대

'동국여지승람'에는 신선처럼 멋있게 살다간 선인(仙人)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러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겸효대(謙孝臺)소하정(蘇蝦亭)이다.

겸효대는 연제구 연산동과 수영구 망미동의 뒷산인 배산(盃山)에서 세속을 떠나

신선처럼 노닌 김겸효가 살았다는 곳.

'동국여지승람'에는 '동래현 남쪽 5리에 겸효대가 있다'고 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다.

고려 공민왕 때 정쟁에 떠밀려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어 내려온 정추(鄭樞)가 쓴 시 중에 '겸효대'란 게 있다.

'겸효의 밝은 빛은 연꽃을 닮고/ 가슴으로 품은 기운 속세를 떠났구나/

고개를 돌리니 만호읍(萬戶邑)이 바로 거긴데/ 휘적휘적 신선가(神仙家)를 오간다.'

시에 나타난 김겸효는 도가의 노장사상과 도교의 신선사상에 심취한 인물같다.

그의 삶이 시의 소재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명성이 높았음을 의미한다.


조선 선조 38년(1605)에 동래부사로 부임한 윤훤도 김겸효에 대한 시를 남겼다.

'연화가 맑은 물에서 나오듯/ 천고의 그 사람과 서로 닮았는데/

겸효는 이미 백운을 타고 가고/ 텅빈 세상에는 정추의 시만 남았구나.'

이러한 시문으로 볼때 겸효대를 무대로 유유자적하게 탈속한 신선처럼 살다간 김겸효는

부산지역의 상징적 선인(仙人)으로 회자될 만하다.


# 동래라는 명칭도 신선문화와 연관

부산의 원형인 '동래(東萊)'라는 지명도 신선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동래는 東(동녘 동)과 萊(명아주 래)가 쓰여서 '동쪽(동해)의 내산(萊山)'이란 의미이다.

내산은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의 약칭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동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삼한시대 24개국 중 하나인 독로국의 '독로'가 '동내'로,

'동내'가 다시 '동래'로 음차되었다고 보는 설도 있다.

아무튼 동래라는 명칭은 통일 신라 이후부터 줄곧 사용되었으며, 신선문화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동래부사 정현덕이 1869년 지은 '봉래별곡(逢萊別曲)'은 동래부의 신선 자취를 찾아다닌 일종의 탐방 가사다. 이 가사에서 정현덕은 봉래라는 지명이 신선세계를 뜻한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선경을 두루 밟아 구경하였으나, 불사약은 구하지도 못하고 어느 새 3년 세월이 꿈처럼 지나버렸다'고 토로하고 있다.

부산 신선문화 연구에 놓칠 수 없는 자료다.


# 신선문화의 의미

신선 또는 신선사상은 중국 도교(道敎)에서 도교의 의식과 가르침에 따라 심신을 수양하여

신성을 얻은 불멸의 존재 또는 그러한 학풍을 일컫는다.

하지만 신선은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 땅의 어른이었고 우리 문화의 원형질이었다.

중국에 도교가 있었다면 한국엔 선도(仙道)와 풍류가 있었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다른 칭호가 선인(仙人) 왕검이었고,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신선과의 하룻밤으로 태기가 생겼다.

신라의 화랑들이 추구한 풍류도는 한민족 고유의 선풍(仙風)을 잇고 있다.


고운 최치원은 이 땅에 유교, 불교, 도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 겨레에게 독특한 가르침이 있었는데

이를 현묘지도(玄妙之道), 즉 풍류로 정의하며 한민족 자주사상을 일깨웠다.

최치원 자신 만년에는 합천 가야산 또는 부산 신선대로 흘러들어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고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지식인과 민중들 사이에선 신선을 좇거나 흠모하는 기류가 있었다.

신선은 이처럼 철학·문학·예술·종교·민속 곳곳에서 살아 숨쉬며 민족문화를 풍성하게 해왔다.

신선이 사는 곳, 즉 선계(仙界)는 흔히 꿈과 판타지로 그려진다.

판타지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먹고 자란다.

또다른 의미에서 신선은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품고 혼탁한 세상을 정화할 권능을 지닌 존재로서

현대사회의 불안과 부조리를 치유할 '묘약'이 되기도 한다.

신선 콘텐츠가 중요한 이유다.


# 신선문화 콘텐츠 활용 방향

부산지역의 신선문화 자취는 영도, 남구, 금정구, 연제구, 강서구 등 곳곳에 산재할 만큼

분포지역이 광범위하고 내용이 다채롭다.

대부분 고증이 어렵긴 해도, 신선문화가 알게 모르게 지역민들의 삶 속에 녹아든 건 사실이다.

관건은 지역 문화콘텐츠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신선문화 전설이나 자취를 바탕으로 문학작품이나 영화, 만화, 캐릭터 같은 문화콘텐츠를 빚어내는 작업을 통해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먼저 '부산지역 선유(仙遊)여행'을 기획,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신선문화 콘텐츠가 풍성한 영도 봉래산(불로초 공원)을 중심으로, 용당동 신선대(유원지), 문현동 광선대(배정고교 뒷산), 연제구 겸효대(배산), 금정구 소하정(금정산성 부설비), 사상구 덕포동 상·하강선대(덕포역, 사상초등 뒤), 강서구 칠점산(대저동) 등을 답사하는 코스다.

전문가가 안내를 맡아 진행하면 동아시아 신선문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와 판타지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확대하여 아카데미 형태의 '신선학교'를 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신선문화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커지면, 부산을 신선문화의 메카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영도 봉래산과 배산의 겸효대, 강서구 칠점산 세 곳을 '신선문화 트라이앵글'의 거점으로 설정해

다양한 이벤트를 펼칠 수도 있다.

 요리하기에 따라선 답사, 여행, 출판, 교육, 콘서트, 나아가 테마파크까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자고 있는 신선문화를 깨워 '신선(神仙)한 부산'을 만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동기획:부산정보산업진흥원,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