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6-3>
'신선(神仙)한' 부산- 맹이와 나- '신선대'에서
임종 앞두고 후손들을 모두 불러모은 증조할아버지
나를 꽉 껴안으며 "넌 원래 신선이야"하고 외치셨다
일러스트= 최해솔·카투니스트 |
맹이는 원래 신선대에서 용을 타고 놀던 신선이었더란다
언젠가부터 인간들이 하나 둘씩 꾸역꾸역 밀고 들어와
바다를 메우고 산을 뚫고 오염물질들을 마구 쏟아내자
생태 교란에 빠진 신선계는 결국 돌연변이를 겪게되고
어떤 신선은 새·벌레가 되고, 맹이는 인간 모습이 됐단다
그리고 사람 형체로 사람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단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이십 년 가까운 기간 동안 병원에 계셨다.
명절이나 어버이날, 또는 결혼식 같은 날에 이른바 '후손'들은 대대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곤 했다.
때마다 많게는 승합차 세 대에서 적게는 한 대 정도의 인원이 움직였는데, 더러 핑계를 대고 빠지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빠지지 못했다.
뭐라 핑계라도 댈라치면 장손(長孫)이 어쩌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호통이 날아왔던 것이다.
그 증조할아버지께서 마침내 후손들을 마지막으로 불러모으셨으니, 이른바 임종에 다다르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나는 기분을 잡쳐버렸다.
코흘리개 사촌들과 승합차 뒷자리에 처박히는 신세가 됐다.
형 어쩌구 하며 매달리는 꼬맹이들을 한 대씩 박아주고 나는 창희에게 카톡을 날렸다.
증조할아버지가 죽는대. 지금 작별 인사하러 가는 중이야.
창희 대답이 곧 날아왔다.
남긴 건 좀 있대?
죽을 때 남기는 거 있어?
등신. 돈 같은 거 말야. 아님 땅이라든가, 건물. 이른바 유산이란 거지...
그런 것도 있어?
등신. 장손이라면서...
카톡 창을 닫고 이어폰을 꼈다.
괜히 말했다가 등신 소리만 두 번 들었다.
툴툴대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될대로 되라지.
솔직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이신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병원에 계셨기에 특별한 교감도 없었다.
또 올해로 아흔아홉, 내년이면 일백세를 돌파하시니 살만큼 사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종실은 어둑한 복도의 끝에 있었다.
너무 좁아서 세 대의 승합차에서 내린 스물일곱 명이 다 들어갈 수 없었다.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작은할머니와 아빠 등 중요 인사들과 함께 나는 임종실로 들어갔다.
동생과 사촌들, 고모와 숙모 등은 일단 복도에서 대기했다.
갖가지 기기를 꽂고 매단 채로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침대에 고이 누워 계셨다.
큰할아버지께서 헛기침을 하시고는 증조할아버지 귀에 대고 편안히 가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이후 몇 번인가 똑같은 행동과 말이 반복되다가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증조할아버지께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드렸다.
안녕히 가세요.
그런데 증조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으시더니, 코와 입, 머리와 손가락에 달린 기기들을
후두둑 뜯어내시고는 목청껏 외치셨다.
맹이! 그러더니 나를 꽉 껴안으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대략난감한 상황에 어른들도 우왕좌왕이셨다.
그때 증조할아버지께서 다시 소리치셨다.
어이 주모. 여기 막걸리 좀 주소.
암바사 두 잔이 왔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잔을 부딪치면서 에헤라~ 하시기에, 얼결에 조오타~ 했더니
단숨에 비우시고 다시 주모를 부르셨다.
암바사가 또 왔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나더러 맹이, 맹이 하시면서 손을 잡고 어깨를 다독이고, 감회 어린 표정을 지으셨다.
어쩌나. 난 감회가 없는데.
그제서야 엄마가 얼얼해 있는 내게 귓속말을 해주었다.
조금만 참아. 돌아가시기 전에 가끔 펄펄 살아나시는 경우가 있다는구나. 곧 가실 테니까, 겁내지 말고, 응?
영 기분이 나빴다.
어른들도 참.
진작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조금이라도 덜 놀랄 거 아니겠어?
내가 소심하고 진짜 뭣도 모르는 어린애였다면 어쩔 뻔 했어?
놀라움이 투덜거림으로 바뀌는 와중에,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사람 맹이는 형상은 사람이나 사람이 아니니라.
그 곡절을 말해주겠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내 손을 꼭 잡고 여러 어른들에게 말씀하신 곡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 용당동 신선대 정상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신선대 부두. 이곳에 신선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진다. |
삼십사년 전, 예순여섯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셨단다.
워낙 성품 좋고 기운 좋아 2년을 노셨는데, 2년 지나고 나니 노는 일이
딱 죽을 맛이라서 모 회사 경비실에 2년 임시직으로 일하게 되셨더란다. 그 회사는 외국선박이 자주 드나드는 신선대 부두에 있었고, 경비라고는 해도 폼이 좀 나셨단다.
2년 임기가 끝나자 2년을 더 일하고 싶어서 인사과라는 데에다
재계약 요청 서류를 접수시키셨단다.
사흘 뒤, 그 회사의 중역이라는 이가 서류를 내밀면서 하는 말이
더 일하고 싶으시면 여기에 사인을 하시오 하더란다.
얼씨구나 사인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굽히셨는데, 허리를 굽혔다 하면
펴야 하는 것이 순서인지라 허리를 펴니까 중역이라는 이가 손을 척 내밀더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고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덥석 내민 손을 잡으셨는데,
잡으셨는데….
가느다랗고 길며 하얀데다가 새끼손가락에 옥가락지를 낀 그 손이 무척 낯익었고,
그것은 바로 맹이의 손이었단다.
맹이가 누군고 하니 일천구백오십 몇 년에 만난 동료교사로서 해맑은 얼굴에 살풋 웃음을 띤
그야말로 옥골선풍, 시선깨나 받았단다.
그 맹이는 지금의 용당 신선대 부두 어디쯤 해당하는 맹뭍 출생이었단다.
원래 용당이라는 곳이 용이 마을을 폭 감싸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인데, 그 용은 맹뭍에서 놀다가
고래도랑 가서 고기 잡아 먹고 서말도 언덕에서 다이빙하며 놀았으니, 바로 그 용이 놀았다는 맹뭍에서
태어났으므로 이름이 맹이었단다.
의하고, 의하면 맹뭍이라는 데는 파도가 산의 맨살을 싹싹 갉는 소리가 들린다 할 정도로 드세었고,
그렇게 깎여 떨어진 바위가 오랜 세월 물에 씻겨 둥글둥글한 자갈이 되어 바닷가를 좍 덮고 있었더란다.
고개 넘으면 백운포 오륙도에, 좀 멀리 해운대 몰운대까지, 신선들이 왔다갔다하기 딱 좋았더란다.
특히나 달 밝은 밤에 맹뭍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면 신선이 그 연을 타고 건너편 조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나 어쨌대나...
어른들은 벽에 머리를 처박거나 바닥에 주저앉거나 하면서 놀라움을 표현했다.
말씀은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맹이와 막걸리를 시켜 놓고 일흔 나이에 어찌 그리 동안(童顔)인가 물으니,
여차저차하니 저차여차하노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 여차저차 저차여차가 무엇인고 하니, 맹이는 원래 사람이 아니라
맹뭍에서 용을 타고 노닐던 신선이었다는 것이다.
맹뭍에서 빤히 보이는 뻘기이 고갯마루, 즉 지금 신선대 표지석이 서 있는 부근을 거점으로 백운포 오륙도
조도는 물론이고 몰운대 해운대 이기대를 오가며 불로장생의 경지를 누리고 있었는데,
어느 해 키가 작고 말씨가 다른 인간들이 바다를 건너오더니 물살 막는 둑을 쌓고 저희들 배를 갖다대더란다. 동료 신선들을 데리고 대책을 강구하였는데, 물질성이 없는 신선의 몸이다 보니 인간에게 어필하기 어렵더란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꼬마소녀가 할머니한테 옛 얘기를 듣고 있기라도 한 듯 작은고모가 침을 꼴깍 삼켰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헛기침을 하시더니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셨다.
어쩌긴 뭘 어째? 인간을 어찌 당할 수 있다더냐? 샛바람 돌개바람도 일으켜보고, 풍랑도 불러보고,
귀신 흉내도 내보았지만 도무지 먹히지가 않았다더라. 오히려 신선들의 기운만 쇠해졌다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보니 키 작고 말씨 다른 그 인간들이 저절로 없어지더라는 게야.
한데 안심도 잠시, 남루한 차림새에 짐보따리를 든 인간들이 꾸역꾸역 찾아들더라지 않냐.
지나고 나면 참 허망한 것이 인생이야. 맹이가 몰려드는 인간을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거기 나도 끼어 있었단 걸, 어찌 알았겠냐고.
1·4후퇴 때 피란민들이 맹뭍 용당에 터를 잡지 않았더냐. 맹이는 그때, 그때부터….
증조할아버지의 감정이 격해졌으므로 말씀은 잠시 중단되었다가 이어졌다.
맹이를 비롯한 신선들은 그래도 거 뭐, 같이 살면 되겠거니 여겼단다.
판자로 겨우 가린 집에서 서로 다독다독하고 있는 인간들을 보니 눈시울도 시큰했고, 신선이란 게 뭐 특별히 공간을 점유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여 그 좋던 해변에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해도 에잉,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뭐 어쩌겠누, 인간이란 하루 세 번을 먹어야 한다니 열심히 일하는가 보다 하였는데,
어느 날 인간들은 그 좋던 바다를 메우고 땅을 골라 철제 빔을 세우고 커다란 철갑상자를 자꾸 실어나르고
있더란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에 다리를 놓고 산에 구멍을 뚫어 여기저기 굴뚝처럼 높은 집을 지어놓고 사방에서 구린내며 독가스를 뿜어대니 아무리 물질세계를 초월한 신선이라 해도 견딜 수가 없더란다.
하여 신선들은 혹 기가 쇠하여 물거품이 되기도 했고, 혹은 목숨 가진 새나 벌레가 되기도 했으며, 또 혹은
인간으로 되돌아가기도 하였다니, 신선계에 돌연변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라고? 놀라서 되묻는 증조할아버지께 맹이 신선이 말했더란다.
신선계 돌연변이는 키 작고 말씨 다른 인간들이 맹뭍 앞 바다에 둑을 쌓을 때부터 시작되었단다.
먼 바다에서 몰려와 맹뭍 삐알에 시원하게 부딪치던 파도를 막으니 신선계에 큰 충격이 가해졌고, 지속적인 해안 개발과 오염으로 신선계는 심각한 생태계 교란에 빠졌단다.
하여 대부분의 신선들은 돌연변이를 겪게 되었단다.
그때 맹이신선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이되었단다.
그것도 수십 년 아니라 수백 년 동안 똑같은 형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변이를.
하여 인간과 섞여 살면서도 세월 따라 늙어가는 인간과 오래 관계 맺지 못하고 떠나고, 또 떠나야만 했단다. 휘유~.
한숨과 함께 증조할아버지의 몸이 갑자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세상으로 가시려다 말고 너무 많은 말씀을 하신 탓인지, 원래의 병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떨림은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어른들은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주먹을 꽉 쥐고 떨림을 견디면서 말씀하셨다.
다들 알아들었지? 나 없더라도 맹이 신선을 잘 부탁한다. 이제 난 간다.
그 말씀을 끝으로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일어나실 때처럼 갑자기 허리를 팍 꺾으시더니 침대에 쓰러지셨다.
그것으로 끝, 운명하셨다.
여러분 더러 내 말을 믿으라는 건 아니다.
나도 나를 못 믿는 세상에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열다섯 소년의 말을 믿으라니,
어림없겠지.
하지만 증조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다섯 해가 지난 뒤,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석 달이 지난 뒤, 증조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는 까마득 잊어먹고서 그야말로 우연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게 된 어느 봄날에 일어난 일은 꼭 믿어주기 바란다.
참말로 좋은 봄날이었다.
꽃향기 그윽하고 나무 냄새 상큼하여 여자친구도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잘하면 키스까지 가겠구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신선대 올라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고 가파르지도 않았다.
꼭대기에 도달해서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그때 나무 위에서 기척이 났다.
새나 청설모겠지 생각하면서 여자친구의 어깨에 손을 슬쩍 얹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짜식들, 질투나지? 나 어때?
한데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새인지 청설모인지가 나무를 타고 조르르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딱 내 눈높이에 멈춰서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도 빤히 마주보았다.
그것은 새도 아니었고 청설모도 아니었다.
하지만 새이기도 했고, 청설모이기도 했다.
머리는 동그랗고 부리는 뾰족한 것이 분명 새였으나 네 개의 다리는 청설모였고, 게다가 다갈색 깃털 달린 것이 망토처럼 앞뒤 다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혹 날다람쥐가 아니더냐고 넘겨짚지 마시길.
중요한 건 그 새도 청설모도 아닌 것이 나와 여자친구를 향해 진짜 사람처럼 빙그레 웃었다는 것이다.
착각인지 환각인지 헛갈리는 건 둘째 치고, 여자친구가 문제였다.
여자친구는 그 희한한 생물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아주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안녕. 잘 있었어?
상대야 알아듣거나 말거나 개나 고양이한테 주절주절하는 여자아이들을 더러 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생물이 앞다리인지 손인지를 흔들며 여자친구에게 대꾸까지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이네.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 생물은 나무를 타고 사라져버렸다.
하도 어이가 없어 나는 어깨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
방금 그거…, 뭐지?
여자친구가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야, 돌연변이 신선이지.
신선대에 돌연변이 신선들 산다는 거 알만한 사람 다 안다던데, 자긴 몰랐어?
앉은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풀썩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엉덩이를 옆으로 빼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너, 넌 뭐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여자친구가 다시 방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뭐긴 뭐야. 신선이지. 인간 여자라면 이 좋은 봄날에 뭣 하러 이런 델 오겠냐? 등신.
조명숙 소설가
※공동기획:부산정보산업진흥원,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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