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28>
용당 '학사대'의 윤씨묘
더 잘되려 조상묘 옮기니 승승장구 멈춰
용당마을의 배산인 학성산 정상에 있던 학사대 바위는 학성산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근 근린공원으로 원형 그대로 옮겨져 있다. |
- 장소: 북구 화명동
- 평택 임씨 가문서 온 며느리
- 용당 학사대에 조상묘 쓰면
- 자손들 잘 풀린다는 소문 듣고
- 돌아가신 시아버지 거기 묻어
- 이장하면 더 출세한다는 말에
- 파묘했더니 학 한마리 날아가
- 그 이후부터 후손 상승세 멈춰
어느 날 부엌에서 일하던 며느리는 사랑방에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용당의 학사대(學士臺·학성산의 정상 바위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가졌던 곳)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이 잘되고 신분이 귀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 소문은 금세 이웃 임씨 마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친정 편을 들 것인가, 아니면 시집 편을 들 것인가.
하지만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니 며느리는 자기의 후손이 태어날 시집 편을 들기로 마음먹고
날마다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이 명당자리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이 명당자리는 결국 물이 고인 웅덩이로 변해 어느새 명당이 아닌 흉당으로 소문이 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호시탐탐 이 자리를 탐내던 사람들은 이 소문 탓에
이곳을 아예 포기하고 다른 곳에 조상의 묘를 썼다.
이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며느리는 모든 집안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에 시아버지를 묻었다.
그러자 자손들이 불꽃같이 일어나 가문이 흥했다.
그런데 이곳에 묘를 쓴 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구포 쪽에서 말을 타고 학사대 윤씨 묘앞을 지날 때마다
타고 가던 말의 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당기고 밀어도 말굽이 떨어지지 않았다.
윤씨 묘 앞을 걸어야만 말이 움직이는 거였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윤씨의 조상 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게 된 인근 마을사람 사이에는
묘의 위치를 한 자만 위로 올리면 윤씨의 자손들이 더 잘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처음 윤 씨 가족들은 조상의 묘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며 주저했다.
하지만 이 소문에 결국 현혹돼 조상의 묘를 파기 시작했다.
일순간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묘를 마지막 파는 순간 땅 깊은 곳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하얀 기운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커다란 학 한 마리가 땅속에서 나와 하늘로 높이 날아가더니
가까이에 있는 '율등덕'(지금의 부산어촌민속관 자리)이라는 언덕 대밭으로 사라졌다.
이 일이 일어난 이후부터 윤씨 후손들의 상승세는 멈춰버렸다고 한다.
동시에 묘 이전 때 명당의 기운이 다른 데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용당마을의 배산인 학성산 정상에 있던 학사대 바위는
[화명 2지구 택지개발]로 인해 2001년 1월 제3호 근린공원(북구 화명동 2304번지)에 원형대로 복원됐다.
자연석 가운데 '學士臺'(학사대)라 음각하고 왼편에 '일심추월(一心秋月·한마음에 가을 달이 있고) 사면춘풍(四面春風·사방에 봄바람이 불어온다)'이란 4언시가 새겨져 있다.
'예조좌랑 김재진'이라는 직위와 이름이 함께 음각돼 있어 조선시대에 새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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