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부산의 전설 보따리] <29> 용천산과 '사기점 골'

금산금산 2014. 9. 20. 11:28

[부산의 전설 보따리] <29>

용천산과 '사기점 골'

 

 

 

왜군 노략질 막으려고 솟아난 용천산

 

 

 

기장군 정관면 두명리에서 올려다본 용천산 전경(사진 왼쪽)과 사기점골에 위치한 용주암.

 

 

- 장소: 기장군 정관면 두명리
- 인부·사기그릇 자꾸 사라지자
- 효녀 아월 산신령께 매일 기도
- 꿈에 나온 노인 왜적소행 언급
- "집 동쪽으로 산을 만들라" 주문

- 어느 순간 새벽이 계속 늦어져
- 알고보니 커다란 산이 솟아나
- 사람들은 '용천산'이라 불러


 

옛날 지금의 정관면 백운산(白雲山·520m) 기슭에 아월이라는 효성이 지극한 처녀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릇을 만드는 도공으로 몇 사람의 인부를 거느렸고, 딸은 집안일을 도왔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도공의 집에는 인부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감쪽같이 실종되는가 하면

만들어 둔 사기그릇이 자꾸 줄어드는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났다.

인부를 구해 놓으면 밤중에 없어지고, 사기그릇도 없어지는 일이 한동안 계속되자

아월이는 산신령님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뒷산에 올라가 빌었다.

산신령께 기도를 드린 지 백일째 되던 날 밤, 꿈에 흰 도복을 입은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너희 집에 있는 인부는 밤중에 화장실에 갔다 올 때면 왜적들이 숨어 있다가 납치해가며,

많은 그릇이 없어지는 것 또한 그들의 소행이다"고 일러주었다.

아월이는 이에 대한 예방책을 물었다.

산신령은 "너의 집에서 일할 때 나오는 연기를 멀리서 보이지 않게끔 동쪽에 산을 하나 만들고,

또 어떤 소리도 멀리서 들리지 않게끔 해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뒷날 대(大) 씨란 총각이 일하려고 찾아오거든 서슴지 말고 신랑으로 맞이하라고 덧붙였다.

잠에서 깨어난 아월이는 이상한 꿈도 있구나 하면서 집안일에 더욱 힘을 쏟았다.


아월이 꿈을 꾼 뒤 한두 달이 가는 동안 이상한 일이 또 생겨났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던 자신과 도공들이 자꾸만 늦잠 아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작업시간에도

지장이 있는가 하면 노(爐)에 이상이 생겨 그릇을 못 쓰게 되는 일이 허다해 졌기 때문이다.

왜 새벽이 늦게 올까.

그 이유를 알아본 결과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집 동쪽에 커다란 산이 생긴 것을 그때야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산이 날이 갈수록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월 처녀는 산을 찾아 다시 기도를 올렸다.

그러면서 부지깽이로 산을 두드렸다 '그만 솟아올라라. 그만하면 됐다' 하면서 애원했다.

기도발이 먹혀 그날 이후 산은 더는 높아지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 산을 용천산(湧天山·솟음산)이라 불렀다.

아월의 집에 얼마 후 산신령의 계시대로 대씨 성을 가진 건장한 총각이 일하러 찾아왔다.

그의 성실한 품행을 칭찬하던 아월의 아버지는 이내 그를 사위로 삼았다.

하지만 사위는 흙일 하는 것보다 쇠를 만지기를 좋아했다.

장인은 그래서 사위에게 칼과 창, 호미, 괭이 등 무기류와 농기구 만드는 일을 시켰다.

대 서방이 만드는 무기류 가운데 방패는 천하일품이었다.

어느 해 가을 이웃 서창 농촌에서 벼를 훔쳐가던 왜적이 달아나다 길을 잃어 도공의 집 앞에 머물게 되었다.

왜적 일당 10여 명은 도공의 집에 침입, 눈이 부시게 만들어져 있는 그릇들을 보고 그만 탄복해

말에 싣기 시작했다.

 

 

마침 창을 다듬고 있던 대 서방이 이를 보고 방패와 창을 들고 왜적과 싸워 순식간에 그들을 물리쳤다.

이후부터 쇠를 달구고 두드려 농기구를 만드는 곳을 대장간이라 부르게 되었고, 도자기를 만들었던 그곳을

현지 주민들은 사기점(沙器店)골(용천산 서쪽 기슭, 도자기를 굽던 골짜기로 지금의 용주암 터)이라 불렀다. 사기점골(옹기골)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밭을 파다 보면 지금도 깨진 사기그릇이 군데군데 나온다고 전해온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