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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부산,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 4. '순환'

금산금산 2014. 10. 1. 21:11

[2014 부산,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 4. '순환'

 

 

 

포구를 삼킨 마천루, 도시 생명의 물길을 막다

 

 

 

 

 

우동항은 주변의 고층건물, 광안대교 등 거대한 도시 구조물에 둘러싸여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재찬 기자 chan@

 

배가 들락거리는 곳이 항구이자 포구다.

포구는 물의 끝이자 땅의 시작이고 땅의 끝이자 물의 시작이다.

항상 시작과 새로운 도전이 일어나는 곳이다.

끝이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다시 순환되는 곳이 바로 포구다.

부산에는 큰 항만만 있는 게 아니다.

크고 작은 항구와 포구 60여 개가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다.

그곳에는 아직도 부산사람들의 삶이 숨 쉬고 있다.

도시의 팽창과 난개발로 인해 부산의 해안선과 포구는 사라져 가고 있다.

개발과 현대화라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포구는 희생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포구에 대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부산의 역사는 포구를 버렸다(?)

부산은 역사적으로 부산포라는 작은 포구가 항구로 발전해 국내 최대 항구도시가 됐다.

포구의 시대를 지나 항구 도시로 바뀌었지만, 부산 곳곳에는 포구들이 남아 있다.

포구의 모습은 다양하다.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포구가 있는가 하면

스펙터클한 도시 공간 속에서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항구도 있다.

아파트나 공장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항구와 포구도 있다.

하굿둑에 약해진 조류로 홍티포구 쇠락
광안대교 불빛·매립에 활력 잃은 우동항
자연과의 공존 '물의 도시' 잠재력 살려야

부산의 근대 공간사는 물의 도시가 지닌 잠재력을 인위적으로 파괴해 온 역사였다.

그 시작은 일제의 식민지화와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 건설을 위한 공간 재편 작업이었다.

수많은 매립과 매축이 일어나고 바다와 강은 단절됐다.

해방 후엔 경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수변공간이 파괴됐다.

바다와 강, 물과 뭍의 경계가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던 물가의 경관과 문화는 사라졌다.

수영만, 센텀시티, 용호만, 신평 등 끊임없는 매립과 매축, 교량 건설을 통해 부산은 끊임없이 변모했다.

얻은 것은 근대화된 항만시설, 배후 공단, 획일화된 고층 아파트였다.

잃은 것은 시민 모두의 것이었던 수변공간이다.

정겨웠던 포구의 경관과 정서, 문화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 '쓸쓸한 너무도 쓸쓸한' 홍티포구

지난 24일 오후 사하구 다대동에 위치한 홍티포구.

적막했다.

포구 옆 공장에서 나오는 기계음만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포구라면 있을 법한 왁자지껄함이나 역동적인 움직임이 없다.

수십 척의 소형 선박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주변이 공업단지인 홍티포구는 적막한 풍경을 자아냈다. 김상훈 기자

 

홍티포구는 삼면이 공업단지인 도시근교형 포구로 낙동강 하구의 마지막 자리에 있다.

낙동강 하구는 하굿둑이 놓이기 이전까지 황금어장이었다.

하굿둑이 생기면서 홍티포구의 운명도 바뀌었다.

조류의 변화로 모래톱이 형성되면서 어자원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2006년 완료된 다대동 홍티마을 매립사업도 홍티포구의 크기를 줄여 놓았다.

현재 포구는 홍티1교와 2교 사이에 자리 잡았다.

주변은 매립돼 무지개 공단이 들어서 버렸다.

마을이 매립되면서 배 주인들은 다대동, 신평, 장림 등지에서 출퇴근한다.

이날 만난 배상욱(60) 씨도 다대동에 살면서 출퇴근한다고 했다.

그는 21년째 통발어선을 운영하며 '돌짱게'를 잡고 있다고 한다.

"낙동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조류가 약해져 모래톱이 형성됐어요. 배가 다니기도 힘들게 됐고,

어자원도 많이 줄었죠. 배들은 새벽 5시에 나가 오전 8~9시에 들어와요.

기름값은 치솟는데 어획량은 적어서 60척 가운데 상당수가 정박해 있죠."

김권철 홍티어촌계장도 "어획이 안 되니까 배를 처분해 업을 중단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어업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정비를 원한다.

김 계장은 "낙동강 수문을 상시 개방해 조류의 순환을 활발하게 한다면 어자원도 늘어날 텐데…"라고

되뇌었다.

낙동강 하구 마지막 자리의 느린 물살에 삐걱대는 홍티포구.

 개발로 인해 주변 지역과의 기능적 부조화 속에 쇠락하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 랜드마크에 압도당한 '우동항'

해운대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수영2호교를 건너면 우동항이 있다.

고층건물과 거대한 랜드마크인 광안대교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에서

우동항은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동항과 마주치려면 시선을 낮춰야 한다.

지금의 우동항은 1980년대 만들어졌다.

승당마을(동부올림픽타운 자리) 근처에 있던 포구가 매립으로 사라지면서 현재 위치에 배치됐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지만 인접한 경관에 굴복한 느낌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벡스코, 센텀시티, 마린시티 등 주변의 고층 빌딩과

광안대교가 스펙터클한 컬러 사진이라면 우동항은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보인다.

우동항도 개발로 인해 자연적 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사례다.

최용길 우동어촌계장의 얘기다.

"광안대교 불빛 때문에 고기들이 포구 주변에 잘 다니지 않아요.

주변을 매립하면서 조류 방향도 바뀌었고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바람 방향도 바뀌었죠."

인위적인 개발이 자연적 순환의 흐름을 막아 버린 셈이다.

순환의 고리가 끊기면서 어항의 활력도 사라졌다.

우동항은 어선수리소 이전 등 현재 정비사업 중에 있다.

최 계장은 "개발 방향이 빨리 확정돼 어민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 항·포구, 삶과 쉼의 공간으로

강물이 바다와 만나듯 포구는 자연과 삶이 만나는 자리다.

진정한 삶의 뿌리 박은 순환이 이곳 포구에서 일어난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이미 저질러 놓은 많은 것을 되돌릴 순 없다 해도,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흔적과 모습을 부여잡으며 잃어버린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삶과 쉼이 순환하고 부산의 시간성, 역사성이 축적된 곳인 포구가 그 하나의 가능성이다.

김승남 건축가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작은 어촌 마을의 정서와 정취를 간직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자연과 즐거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지훈 철학자도 "전체 보존은 힘들더라도 핵심적인 포구를 선별해 보존해야 한다"

"언제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삶과 쉼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의 정신적, 문화적 원형질인 항·포구는 부산의 기억을 가장 많이 지닌 곳,

인문적 상상력이 출렁이는 곳, 부산의 내면의식이 꿈틀대는 곳이다.

커다란 순환의 관점에서 항·포구의 가치 회복을 위한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