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2014 부산,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 나눔과 봉사

금산금산 2014. 10. 22. 10:49

[2014 부산,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 나눔과 봉사

 

 

"돌아가신 분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좋은 걸 나눠 주시는 거야"

 

 

 

 

▲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센터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한방 무료 진료 모습. 강원태 기자 wkang@

 

"우리 선생님이 정말 침을 잘 놓아요. 제가 무릎이 아파서 다리를 굽히지도 못했는데 지금 보세요!

 이렇게 다리를 접을 수도 있다니까요."

"침 맞고 가면 하루가 가뿐해요. 지팡이를 잡는 팔도 가볍고"

"무료니까 부담 없이 찾아오지. 병원보다 마음도 편하고"

"우리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침도 여러 곳 놓아 주시고…"

"무료 진료 있는 날이면 시작하기 2시간 전부터 줄 서. 진료 못 받고 돌아간 날도 있었지."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센터가 매주 수요일 진행하는 한방 무료 진료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이야기이다.

센터 관계자가 "오늘 부산일보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소개하니

침을 맞기 위해 대기하던 어르신들이 모두 한마디씩 건넨다.

진료를 마친 어르신들도 그냥 가지 않고 기자 앞에 앉아 이야기를 보탠다.

그냥 나가는 이가 있으면 "어디 가능교? 여기 기자님에게 선생님 고마운 이야기하고 가야제!"라고

 붙잡아 주기까지 한다.



"아랫동네까지 가기 힘들었는데…"
산복도로 무료진료 아침부터 긴 줄




■ '더 나눔센터'의 흐뭇한 나눔 현장


인터뷰를 하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풍경은

나눔센터 무료 진료가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센터를 방문해 장기려 박사 나눔 정신을 배우고 있는 유치원생들. 더 나눔센터 제공

 

지난해 4월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센터가 부산 동구 초량동에 문을 열며

장기려 박사의 나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양·한방 무료 진료도 함께 시작되었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건강 상담, 수요일 오전에는 한방 진료가 진행되고 있다.

병원도 많고 건강보험으로 병원비도 싸졌다지만 산복도로 나눔센터의 무료 진료는 매번 인기 폭발이다.

하루에 20~25명 정도만 이용할 수 있는데 무료 진료가 있는 날은 새벽부터 줄을 선다고 한다.

나눔센터 직원들이 "이렇게 일찍 안 오셔도 된다. 건강 해치신다"고 만류하지만, 어르신들은 지금도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아침 7, 8시부터 나눔센터 주변을 서성인다.

"병원이 많다지만 아직도 산복도로에선 아랫동네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해.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지냈지. 그런데 나눔센터에서 무료 진료를 해 주니 아주 고맙지.

이 센터가 굉장히 훌륭하신 박사님을 기념하는 곳이거든. 박사님 덕분에 여기 산복도로 주민들이

혜택을 보는 거지. 돌아가신 박사님이 아직도 우리에게 좋은 걸 나누어 주시는 거야."

꼭 할 말이 있다며 기자를 붙잡던 70대 할머니가 장기려 박사 이야기를 꺼낸다.

나눔센터가 기억하고 전하고 싶은 나눔 정신은 이렇게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행려병자까지 돌본 장기려 박사
헌신적 활동 기억하는 이들 많아



■ 장기려 박사의 나눔 정신은 이어진다!


장기려 박사 기념관인 더 나눔센터에는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며 기념관을 찾는 이가 많다.

나눔센터를 관리하는 문혜영 씨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60대 여자분인데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한 자신을 업고 장 박사님께 치료하러 다녔대요.

다리를 못 쓸 수도 있는 상황인데 장 박사님의 헌신적인 치료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대요.

영도에서 장 박사님이 무료 의원을 개원했을 때 이야기죠. 가난해서 병원은 생각도 못 했는데

장 박사님 덕분에 본인이 이렇게 살아있는 거라고 말씀하시며 우시더라고요."

장 박사가 돌아가신 지 20년이지만 부산에는 장 박사의 헌신적인 활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난 장 박사는 평양의과대학과 김일성 종합대학 외과 의사로 재직하다

6·25전쟁 때문에 부산으로 피란을 온다.

당시 피란민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자 영도에 천막을 치고 무료 진료소를 차린 후

장 박사는 인술을 펼친다.

우직스럽게 무료 병원을 계속하며 아무렇게나 방치된 행려병자까지 제 식구처럼 돌보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도 적은 부담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했고 1976년 복음병원장을 은퇴한 이후에도

부산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설립해 무료 진료와 사회봉사 활동을 계속했다.

한평생 의사로 살았지만, 그는 정년퇴임 때 집 한 채 없이 복음병원 옥상에 마련한 관사에서 살았고

평생을 무소유로 일관하며 참 의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장 박사는 평소 "누구나 존귀한 존재들이고,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의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의술은 이웃을 섬기는 봉사의 수단이다"고 강조했다.

명예나 물질에 관심 없이 자신이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고 한다.


인제의대, 이태석 신부 '봉사' 공부
소외청소년 위한 '힐링캠프'도 운영


■ 봉사정신이 사회에 번지기를 희망합니다!


지난해 5월 2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부산사람 이태석 기념음악회'.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로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8년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

헌신적인 의료 봉사를 하다가 선종한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자리이다.

인제대에 설치된 이태석 신부 기념실 모습. 부산일보 DB

 

음악회 포스터엔 '48세 짧은 생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의 봉사, 희생정신을 계승하고 그 정신이

                    우리 사회에 잔잔히 번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장기려 박사가 전쟁 전후 어려운 시기에 우리 사회에 나눔과 봉사를 실천했다면

이태석 신부는 더 힘들고 어려운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 그 정신을 이어 갔다.

가난한 이, 낮은 곳을 위한 인술을 펼친 이태석 신부의 정신은 부산 곳곳에 아름다운 나눔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태석 신부가 졸업한 인제대 의대에선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이 신부의 사랑과 봉사정신을 공부하는

주간을 정했으며 이 신부가 청소년 시절을 보낸 송도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다.

부산사람 이태석기념 사업회는 캄보디아 의료 봉사와 청소년 아카데미, 지역 소외 청소년을 대상으로

 '힐링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이태석 봉사상을 제정해 이태석 신부의 나눔 정신을 실천한 이를 격려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장기려 박사 기념사업회 역시 장 박사의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블루크로스 봉사단을 구성해 청소년들이 각 지역에서

나눔활동을 실천하도록 격려한다.

청소년들의 봉사 활동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공유하고

연말 장기려 봉사상을 통해 나눔 활동을 열심히 한 청소년을 시상한다.

또 매년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낙후 지역에서

이동 진료 캠프, 수술 캠프 등 의료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