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34>
'배석사와 선바위'
그리고 '거북바위'의 인연
임란때 의병 지켜준 바위와 쌀 쏟아지는 절
기장군 철마면 임기천 돌매암골에 있는 거북바위. |
- 장소: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 부상병 추격하던 왜병들
- 선바위 기운에 눌려 돌아가고
- 백성·의병들 먹여살리기 위해
- 배석사는 쌀이 쏟아지는데
- 이후 주지의 탐욕에 폐사돼
- 거북바위는 선바위를 지켜줘
기장군 철마면 임기마을에서 임기천을 따라 상곡마을로 향하다 보면
지장암 남쪽 산기슭 선바위골에 선바위가 있다.
임기천 돌매암골에서 150m 절벽 위에 마치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비석처럼 생긴
이 거대한 바위(높이 4m, 폭 1.5m)는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닮아 선바위(立岩)라 불렀다.
이처럼 절벽 위에 우뚝 솟아 서 있는 바위 앞에 사람들은 저절로 두 손을 모아 절을 한다.
이 선바위는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는 신비한 영혼이 감돌고 있다.
사람들은 이 선바위를 절을 하게 하는 돌이라 해서 배석(拜石)이라 부르기도 했다.
선바위골에 위치한 신비한 선바위. |
예부터 이 지방의 지세가 배(船)의 형국인데 이를 지관들은
배설(船穴)이라 하였다.
그 배설의 중심지가 되는 곳에 배의 돛대가 되도록 선바위를
돛대처럼 높게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선바위가 의연하게 우뚝 솟아 있는 한
이 마을은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로워질 것이라 굳게 믿었다.
선바위골 아래 돌매암골(돌바위가 많은 골짜기)의
하천 한가운데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거북처럼 생긴 이 큰 바위는 예부터
선바위의 신령을 지켜주는 거북이라는 것이다.
선바위에서 임기천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가면 상곡마을을 만난다.
상곡마을은 백운산 줄기가 뻗어내린 산기슭에 터를 잡고 있고,
그 앞은 철마산의 거봉이 앞을 막고 있다.
상곡마을 앞 철마산 기슭에는 배석사(拜石寺)라는 큰 절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배석사에는 선여(仙如)라는 여승이 주지를 하고 있었다.
황산도 소산전투(김정서 의병장이 소산고개에서 유격전술로 전공을 세운 전투)에서
부상병들이 왜적의 추격을 피해 깊은 계곡인 임기천 상류 쪽에 위치한 배석사에 모였다.
부상병을 추격하던 왜병들은 돌매암골 선바위 앞까지 와서는 그 거대한 바위에 머리를 숙이고
이곳이 임기천 계곡의 끝인 줄 알고 되돌아갔다.
선바위에서 얼핏 보면 지금의 지장암이 있는 곳에서 철마산의 실개천이 끝난 것처럼 보여 상곡마을 쪽 계곡은
산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상병들은 선바위의 위력 때문에 모두 무사히 배석사로 피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배석사의 주지 선여 스님은 그 많은 부상병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밀교 스님이었던지라 비밀진언을 염송해 절에 있는 샘물에서 필요한 만큼의 쌀이 흘러나오게 하였다.
배석사는 백운산 산정 바로 옆에 있었던 선여사(船餘寺)의 말사였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백여사에 어느 탐욕 많은 한 스님이 주석했다.
하지만 본사인 통도사와 선여사에서 간섭이 많고 객승이 많이 찾아와 괴롭히는 것이 싫었다.
해서, 못된 술객(術客)의 말을 듣고 통도사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돌매암골의 거북바위를 통도사로 향하게
돌려놓고, 객승들이 잠을 못 자도록 요사채에 빈대를 많이 넣어두었다.
쌀이 흘러나오는 샘물구멍은 넓게 하여 쌀이 많이 흘러나오도록 욕심을 부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샘물에서는 쌀이 흘러나오지 않게 되고 빈대가 들끓어 객승들이 머물지 못하게 되자
통도사와 선여사는 배석사를 돌보지 않게 돼 배석사는 빈대만 득실거리게 돼 폐사되었다고 한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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