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7-1>
[남구 비화(秘話)- 팩션] :
'황령산 바람고개 두 여자' 이야기
광안대교 위로 불꽃이 치솟았다, 민초들 아픔을 산산조각 내려는 듯…
황령산에서 본 해운대 신시가지와 센텀시티. 저 멀리 불빛은 오징어잡이 어선들이다. 국제신문 DB |
치매 걸린 시어머니는 산을 오르며 어린애처럼 칭얼댔다
봉수대에 다달았을 무렵 순남의 가슴을 힘껏 밀어내고는
펑!펑! 펑! 불꽃소리와 함께 어둠의 숲길 속으로 달아났다
"어무이, 어디 있소?" 애타는 목소리는 축포에 묻혀 버리고
경찰에 실종 신고 낸 뒤 눈물 범벅이 되어 돌아온 집에는…
■ 새색시 김장 삼십 번 담그면
푸른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 하나 창안을 기웃 기웃거렸다.
몸집 큰 TV에서는 아침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었다.
13평정도 되어 보이는 연립주택 거실에는 이삿짐이 풀지도 않은 채 쌓여 있었다.
"이 망할 것아, 이 시어미 굶겨 죽일 작정이가?"
"… 금방 아침밥 자셨다 아닝교?"
순남은 새삼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 담그면 늙어버리는구나 싶었다.
"… 머리 깎고 목욕재계 하입시더."
"…나는 요양병원 절대 안 간다."
순남은 앙다문 입술의 월선네를 쳐다보며 시집 간 큰 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엄마의 나이도 생각하세요. 이번에는 내가 비용을 감당할게요."
사실 2년 전, 월선네를 황령산 터널 근처 요양병원에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돌아다니다가 넘어져서 오른 팔에 기브스를 하게 되었는데, 담당의사가
간병인을 따로 두어야 한다고 했다.
간병비가 한 달에 무려 150 만원이라 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집으로 모셔온 것이다.
순남은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했다.
그래서 신문지를 깔고 월선네의 엉킨 실 같은 백발을 가위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월선네는 거울 앞에서 아기가 된 듯 조용하더니, "저 마귀 같은 노파가 와 자꾸 날 보고 웃누?"라고 말했다.
순남의 입가에는 초승달 하나가 살짝 물리었다.
"어무이…서두릅시다. 병원에 가서 검진도 받아보고, 황령산 올라가서 불꽃놀이도 구경하고
금강암에서 오늘밤은 자고오입시더."
"에이 망할 것, 내는 황령산 요양병원 다시는 안 간다 말이다."
방금 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월선네였다.
그러나 한 가마솥 밥을 60년씩 함께 먹다보니 며느리의 속내를 신통방통하게 꿰뚫고 있었다.
순남은 경대 속에서 주름살이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얼굴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순남은 마치 누가 손짓하는 듯 한 거울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 흰 서리 내린 거울 속으로
황령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안리 불꽃축제 모습. 국제신문 DB |
황령산에서 이어지는 금련산 쪽에서 돌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색의(色衣) 차림의 월선네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손에 들고 온
보자기에 싼 떡뭉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망할 것 같은 거, 내가 언제 너를 종처럼 부려 먹었다 말이냐?"
장독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순남이 땅바닥에 흩어진
쑥개떡(멥쌀가루에 데친 쑥을 같이 빻은 것에 소금과 물을 넣어
반죽하여 둥글납작하게 빚어 찐 떡)에 묻은 흙을 정성껏 털어
보자기에 다시 싸서 건네자, 그녀는 다시 그것을 평상 위에다 내던졌다.
"아이고 어무이요. 떡이 무슨 죄가 있는 교? 이건 누가 주던 가예?"
"너그 친정 어미는 쌀 세가마니 씩이나 받고 이바지(잔치를 뜻하는 '이바디'에서 변한 말로 정성을 들여
음식 등을 보내 주는 일) 음식도 못해 준 게 인자 걸리는 갑제? 니 약장수 김 씨랑 대체 무슨 사이고?
널 종처럼 부려먹지 말고 잘 해주라고 개떡 같은 소리하던데?
니는 우리 아들 봉구 돌아오면 뼈도 못 추리게 만들 끼다."
약장수 김 씨는 바람고개(반보기산) 터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떠돌이장꾼이었다.
종종 '월선네 주막'에서 숙박하기도 하였다.
"제발 민철이 아비한테는 이 이야기는 하지 마이소. 이 며느리를 제발 믿어 주이소."
"도둑이 지 발에 질린다더니… 이 더러운 것 같으니라고."
월선네는 설거지하고 모은 구정물통을 며느리의 얼굴에다 갖다 끼얹어졌다.
그리고 부지깽이를 들고 순남에게 매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를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주면 약장수 김 씨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으리라 싶었다.
■ 만나면 즐겁고 행복했던 바람고개
칠공주 중에 다섯째 딸로 자란 순남은 친정엄마에게서 이렇게 들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
신세란다.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살고 나면 미나리 꽃이 피는 게 여자의 운명이란다.
… 여자로 태어난 게 죄다하고, 시집가면 그 집의 귀신이 되어야 성공한 기다…"
때는 바야흐로 손꼽아 기다려온 꽃비 내리는 사월초파일이었다.
알록달록한 소원등이 황령산 봉수대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홉 살의 순남은 밤잠을 안자고 외할머니가 엄마 대신 만들어준 떡함지를 이고
용호동 외갓집에서 잰걸음으로 바람고개에 당도했다.
약장수 김 씨 일행이 공터에 설치한 가설무대 앞에 사람들이 벌써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확성기에서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오이지 콩나물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빠는 욕심쟁이…오빠는 심술쟁이…" 흥겨운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순남은 신바람이 났다.
약장수 김 씨 일행이 바람고개에 진을 치면 덩달아 떡도 불티나게 팔렸다.
어린 순남은 "내 쑥개떡 사이소"라고 목이 터지게 외쳤다.
순남이 떡을 반 정도 팔았을 때 약장수 김 씨 일행의 공연은 절정에 올랐다.
순남은 떡 판 돈으로 만병통치약을 살 생각이었다.
빨래터에서 빨래 씻던 엄마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물에 빠졌는데
무슨 이유인지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서였다.
순남은 꼬깃꼬깃 때가 묻은 지전(紙錢)에 침을 발라 헨 후 버선목에 집어넣고, 흰 광목천이 휘날리는
가설무대 앞자리를 찾아 앉았다.
코흘리개 동생들도 언제 와 있었다.
막 김씨가 등허리에 냄비를 집어넣고 곱추춤을 얼싸 얼싸 추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고
흥이 난 사람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서 같이 춤을 추었다.
들리는 소문에 김 씨는 남사당패거리로 장안에서 이름 날렸다고 했다.
그런 그가 어름(줄타기)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전 이후, 약장수가 되었다고 했다.
김 씨는 긴 담뱃대 끝으로 버나(접시돌리기)도 정말 잘 돌렸다.
순남은 사월초파일, 부처님의 생신이, 제 태어난 생일보다 더 좋았다.
생일에는 시집간 언니를 만날 수 없지만, 사월 초파일이 되면 기장 바닷가로 시집 간
큰 언니와 작은 언니들을 만나 옛날이야기하고 맛난 거 먹는 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시집 간 큰 언니가 낳은 조카는 순남의 막내 동생과 나이가 같았다.
시집가서도 친정동생들이 그리워 그 먼 밤길을 잠도 자리 않고 걸어왔다가 반나절도 안돼서
헤어지는 것이 너무 싫어 얼마나 부둥켜안고 울었는지 모른다.
그 서럽고 배고픈 유년의 바람고개에서의 흥겨운 추억은
순남의 새파란 가슴 속에 품은 새 한 마리와 같은 꿈이었다.
쨍그랑!
황령산 금강암의 원통문 같이 생긴 둥근 경대 속의 거울이 산산조각 깨어져 흩어지는 소리에
순남은 소스라쳐서 눈을 떴다.
마치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실 바닥에는 거울 조각이 아픈 기억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아이고, 6. 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 기라."
저승사자라도 본 것 같이 놀란 토끼눈이 된 월선네의 약지와 검지에서 뚝뚝 붉은 피가 무섭게 흘렀다.
순남은 엉겁결에 그녀의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한참 지혈을 시켰다.
그러자 월선네의 표정이 달라지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박순남 여사여. 제발 날 요양병원에 갖다버리지 마이소."
순남은 '박순남 여사여'란 호칭에 헛웃음이 나왔다.
오랜 세월 '망할 것 같으니라고', '얼어 죽은 것 같으니라고' 따위로 월선네에 의해 불리어 왔다.
뿐만 아니다.
월선네의 아들, 순남의 남편, 정봉구 씨가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탓이
며느리의 박복한 사주팔자에서 비롯되었다고 원망해 왔던 것이다.
허기진 어느 봄날이었네.
가마솥 밥에 뜸이 잘 들었나 싶어
밥알 몇 개 입에 넣고 오물거렸을 뿐인데
시어머니에게 밥도둑으로 몰려 모진 매를 맞았네.
그리고도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살고도 석삼년을 시집살이 살았네.
죽어서도 반보기산 시집 귀신이 되어
무덤의 창을 열고 고향바다 바라보네.
■ 가슴이 아파도…여자이기 때문에
꼭 어린애 같았다.
다리 아프다고 칭얼댔다.
월선네를 등에 업고 몇 걸음 걷다가 쉬고 또 달래서 걷게 하다가
시나브로 올라온 사자바위에 앉아 바라보는 고향 마을은
수십 번의 생애를 지나온 듯 낯설기만 하였다.
아니 아득한 명부(冥府)의 저편 같았다.
어둠이 슬슬 커튼처럼 내렸다.
봉수대 올라가는 길목은 어느사이 광안대교 불꽃놀이 구경하려는 구경꾼으로 웅성거렸다.
순남은 생각난 듯 손수건을 꺼내 월선네의 손목과 자신의 손목을 수갑처럼 묶으려 했다.
그때 "에이 이 천벌 받을 것!" 하고 시어머니가 순남의 가슴팍을 밀어버리고
쏜살같이 울울한(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매우 무성한) 숲길로 달아났다.
그 바람에 비탈길에서 주르르 순남은 미끄러졌다.
펑펑, 펑펑…
수천수만 민초(民草)들의 가슴에 맺힌 답답함을 산산조각 내는 듯,
밤하늘에 터지는 광안대교 불꽃놀이의 환상적인 축포 소리는, 아름다운 우주의 교향곡 같았다.
"어무이요. 어무이요. 어디 있는교?"
시어머니를 찾는 순남의 애타는 목소리는 펑펑 불꽃 터지는 소리에 삼켜졌다.
그녀의 눈에서는 비 오듯 눈물이 쏟아졌다.
황령산 금강암 스님 말씀처럼 선용기심(善用基心)즉, "마음을 바로 써야 했다."
더듬더듬 밤길을 내려와서, 경찰서에 가출 신고부터 했다.
힘없이 털레털레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집 베란다를 쳐다보니 불빛이 환했다.
순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월선네는 등을 지고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어무이요. 세상에나 집을 우찌 찾았능교?"
순남이 묻자, 월선네는 동문서답을 하였다.
"이 벼락맞을 것아, 약장수 김 씨랑 연애질하다 인자 오는 기가?
내 아들 봉구 돌아오면 니는 뼈도 못 추리게 만들 끼다…"
뒷베란다 창 너머 어둠과 함께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늦은 저녁밥을 지으면서 순남은 거실을 향해 외쳤다.
"어무이요, 내년에도 황령산에서 멋진 불꽃놀이 같이 보입시더."
월선네는 그사이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TV에서 가요무대를 하는지 옛 노래가 흘러나왔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송유미 시인
※ 공동기획: 부산남구청,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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