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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전설 보따리] <37> 금정산 '대천천 애기소'와 선녀

금산금산 2014. 11. 15. 10:23

[부산의 전설 보따리] <37>

금정산 '대천천 애기소'와 선녀

 

 

 

소(沼) 주변서 아들 사라지자 '애기소'라 불려...

 

 

 

금정산 대천천계곡의 애기소 전경. 국제신문 DB

 

 

- 장소: 북구 대천리
- 백일기도 정성에 선녀 나타나
- "아들 점지, 3년 뒤엔 데려가"
- 감사 인사 전하던 중 없어져
- 아기 빠져 죽은 줄 알고 명명


금정산 대천천 애기소의 본래 이름은 이시미(이무기)소였다.

예부터 이 폭포는 아주 깊어 사람이 헤엄치러 들어가면 헤어나오기 어려웠다.

폭포 밑 암벽 속에 이시미가 굴을 뚫고 살았다고 하여 마을사람들은 '이시미소'라고 불렀다.

이시미소 주변에는 숲이 울울창창하여 우수기에는 주변 바위나 수목에 이끼가 많아 '이끼소'라고 불리다

훗날 '애기소'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옛날 대천리의 산속 외딴집에 젊은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낙동강에 배를 띄워 고기를 잡고, 아내는 집 주변에 텃밭을 일궈 채소를 가꾸며 행복하게 살았다.

부부는 금실이 무척 좋았지만 자식이 없었다.

이 때문에 아내가 차츰 수심이 깊어지자 부부는 의논 끝에 천지신명에게 백일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아내는 남편의 승낙을 얻어 폭포수가 내리는 소(沼) 옆 너럭바위 위에 촛불을 켜고 몸을 단정히 한 후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백일째 되는 날 저녁쯤에 한 선녀가 나타나

 "하늘의 법도에 의해 너희 부부 사이에는 아기가 없지만 너의 정성이 지극하여

아기를 점지해 주지만 3년 후엔 도로 하늘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한 후 이내 사라져 버렸다.

어찌 됐던 부인은 아기를 점지해 준다는 사실에 한없이 기뻤다.

그럭저럭 해가 바뀌어 이듬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아내는 3년 후 선녀가 아기를 데려가면 어쩌나 하고 애간장을 태우며 아기를 길렀다.

만 3년이 되는 날 부부는 여태까지 아무 일이 없자 선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폭포수 밑 소 옆 너럭바위에 아기를 내려놓고 제물을 진설한 후 촛불을 켜고 선녀에게 고맙다고 절을 삼배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 부부는 소 주변의 풍광을 완상하다 일순간 아이가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아기를 찾아 헤매다가 부부는 문득 선녀의 말이 생각나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선녀에게 아기를 돌려 달라고 애걸했다.

이때 선녀가 나타나 "하늘의 법도를 어길 수 없는 일이니 그리 알고 그만 돌아가거라.

만약 아기를 보고 싶다면 밤마다 이곳으로 오면 매일 아기와 선녀가 목욕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부부는 몇 차례 소를 찾았지만 결국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고 발걸음을 끊었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이 소에 아기가 빠져 죽은 줄 알고 '애기소'라 불렀다고 한다. 

산성마을에서 화명동 방향으로 산성로를 따라 1㎞쯤 가다 우측으로 숲이 우거진

대천천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너럭바위가 말없이 전설처럼 누워있는 애기소가 있다.

 

그 옛날 한없이 넓기만 했던 애기소는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해

여인의 치마폭 몇 장을 깔아 놓은 것만큼 좁아졌지만 주위의 경치는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달 뜨는 밤, 금실 좋은 부부의 전설을 떠올리며 이곳을 한번 찾아보자.

최근 찾은 애기소는 여전히 전국의 내로라하는 계곡 풍광만큼 아름다웠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