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36>
'철마산'의 '쇠말'
백성 구한 용마장군 '쇠말'로 굳어버려
기장군 철마산 지암장의 자연석 좌대에 서 있는 흑갈색 청동 철마(쇠말). |
- 장소: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 물바다 된 마을 주민 구한 뒤
- 철마산서 쇠말로 변한 장군
-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 진귀
- 탐내던 일본인에 거액 매매
- 잇따라 세운 쇠말도 없어져
- 올해 지장암서 기원제 예정
기장군 철마산(鐵馬山·604m)의 쇠말(鐵馬)은
철마면의 상징으로 철마산에서 유래됐다.
그 사연은 이렇다.
옛날 큰 홍수로 산사태가 생겨 철마면의 장전천(長田川) 하류가 막혀
인근 웅천마을에서 철마산 정상까지 물바다가 됐다.
장전천은 선동천(仙洞川)으로 흐르는, 지금의 수영강의 상류이다.
이로 인해 철마산 정상은 소머리만큼 물 위에 보였으며, 인근
거문산(543m) 정상은 겨우 곰의 짧은 꼬리만큼 물 위에 솟아 있었다.
이를 본 옥황상제는 어진 사람들이 일시에 집과 논밭을 잃고 방황하는 딱한 실정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동해 용왕에게 구출해 주라고
부탁을 했다.
용왕은 용마장군에게 거북부대를 이끌고 출동하라고 명령했다.
용마장군은 거북부대를 이끌고 용궁에서 미역덤 아래 용굴을 통해
산사태 현장에 도달했다.
거북부대는 즉시 장전천 하류를 막아 버린 산사태를 깨끗이 치우고
막혔던 물을 빠지게 하였다.
이후 미역바위(藿岩) 아래 용굴로 철수하려는데 물이 너무 빨리
빠져버려 용굴에 물이 없어 용궁과 통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
거북부대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굳어 바위가 돼 버렸다.
구림마을 사람들은 그 거북이가 굳었지만 살아있었다 하여
생거북바위라 불렀다.
이 중 대장 거북은 철마산을 넘어 임기천(林基川) 선바위 아래에서
큰거북바위로 굳어 버렸고 용마장군은 철마산 정상까지 올라갔으나
물이 없어 몸이 점차 굳어져 쇠말(鐵馬)처럼 변해 그곳에 남게 되었다. 쇠말은 철마산 정상 서쪽 동굴 밑 파인 큰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기리기 위하여 철마가 있는 곳에 사당을 세우고
쇠신당(鐵神堂)이라 하였다.
쇠말은 높이가 1자, 길이는 1자 2치 정도로, 왼쪽 앞발을 치켜들고 꼬리를 뻗어
마치 하늘을 향해 나는 모습이었다.
철마는 검은 흑갈색의 청동이고 15㎝ 높이의 청동좌대에 고정돼 있었다.
쇠말을 참배하는 사람들은 공양미나 엽전을 놓고
그렇지 못하면 세 가지 종류의 풀을 놓고 기도를 올렸다.
이 진귀한 쇠말은 1930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쇠말을 본 일본인들은 모두 경탄하고 탐을 냈다.
임기마을의 한 일꾼이 이를 훔쳐 일본인에게 넘겨주고 거액을 받았다.
그는 그 돈으로 논밭을 사 일백석 부자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장성한 네 아들이 잇따라 급사를 하자
쇠말을 훔친 벌을 받았다고 뉘우치게 되었다.
해서, 그는 새로 주철로 망아지만한 조잡한 쇠말을 만들어 쇠신당에 안치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가짜 쇠말을 애써 외면했다.
1940년께 태평양전쟁 때 주철이 귀하게 되자 한 엿장수가 가짜 쇠말을 훔쳐갔다.
쇠말이 없어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어느 주민이 다시 쇠말을 만들어 세웠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철마산 기슭의 지장암에는 사라진 쇠말을 불교의 신앙적 세존관의 보살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 자연석 좌대(가로 1m50㎝, 세로 2m) 위에 쇠말(키 30㎝, 길이 40㎝, 몸통 둘레 38㎝)상을
흑갈색 청동으로 조성해 제막식을 가졌다.
쇠말은 머리를 들어 철마산을 보고 양다리를 들고 꼬리를 내려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다.
지장암은 올해 철마산 쇠말 기원제(산신제)를 열 계획이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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