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산기업 스토리] '럭키화학'

금산금산 2015. 1. 10. 14:48

럭키화학

 

 

 

 

                                             

 

 

 

 

럭키화학부산에서 출범해 국내 랭킹 3위 재벌사로 성장한 LG그룹의 모태다.

구인회 전 회장이 1947년 1월 부산 서구 서대신동 자택 마당에 차린 공장에서

여성용 크림인 '동동구리무'를 생산한 것이 시작이었다. 


6·25 전쟁 특수와 더불어 동동구리무가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사기로 만든 크림병 뚜껑이 잘 깨어지는 바람에 반품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부산에서 시작한 LG그룹의 모태
자택 공장에서 세계적인 회사로

 

 

 


백방으로 대안을 모색하던 끝에 합성수지가 내구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 전 회장은

플라스틱 용기를 직접 생산키로 결단을 내렸다.

럭키화학이 '제2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순간이었다.


생필품이 부족하던 시절,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빗을 만든 것을 필두로 비눗갑 세수대야와 같은

생활용품 전반을 공급하는 회사로 변신한 럭키화학은 급성장을 거듭했다.

1960년 대에 들어서는 치약과 비누, 비닐 등을 생산하는 종합화학회사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 화학공업의 기초를 부산에서 닦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비중 또한 엄청났다.


그런 럭키화학이 부산경제와 끝까지 운명을 같이할 수는 없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부산공장을 통해 번 돈으로 울산과 여수, 나주, 안양, 청주 등에

새로운 공장들을 건설하면서 부산의 비중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 공장 매연 등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민원까지 잇따르자 부산공장들은 차례로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그 부지에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럭키화학이 있었던 흔적조차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부산에서 태동해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부산시민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제공했던 럭키화학은 그렇게 떠나갔다. 급기야 1995년에는 이름마저 LG화학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다고 럭키화학이 부산과 맺은 인연까지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럭키화학과 더불어 성장해 전국 무대로 진출한 지역 인재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옛 연지공장 부지에 LG연암기념관 등을 설치한 것 또한

부산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경영이념과 함께. 


정순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