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산기업 스토리] '금성사'

금산금산 2015. 1. 17. 13:47

금성사

 

 

                                            

 

 

 

 

금성사1958년 10월 1일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에서 출발해 세계 2위 전자회사로 성장한

LG전자의 전신이다.

전자제품이라고는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라디오가 고작이었던 시절,

구인회 전 회장이 럭키화학으로 번 돈을 몽땅 투자해 정면 승부를 걸었던 회사다. 


하지만 처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창업 1년 만인 1959년 11월 15일, 대망의 국산 라디오가 출시되었지만

뒷골목시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제 밀수품미군 PX 물품을 당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창업 3년째인 1961년부터는 시중에 부도설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5·16쿠데타로 대박난 전자산업 효시
부산에서 출발해 세계 2위 업체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금성사를 구출한 것은 5·16 쿠데타였다.

군사정권이 쿠데타의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 수단으로 라디오를 택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농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것이

금성사에 대박이 터지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연간 5천여 대에 불과하던 라디오 판매량이 1962년 한 해만에 13만 대를 초과할 정도로 급성장을 이뤘다.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1963년, 공장을 동래구 온천동으로 옮긴 후 선풍기, 냉장고, 세탁기

 신제품들을 잇달아 쏟아내는 종합가전 회사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8년, 전자산업을 미래성장주도 산업으로 지정한 것이

제2 도약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최첨단 컴퓨터와 통신장비 산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여기에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컬러TV 시판을 허용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세계화 전략에 박차를 가한 것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금성사가 거둔 눈부신 발전이 끝까지 부산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산 공장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본사가 서울로 옮겨가고

주력 공장 역시 창원구미 등으로 이전해간 것이다.

옛 부산공장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회사 이름마저 LG전자로 바뀌어 버렸다.


금성사는 그렇게 떠나갔고 부산 시민들의 가슴에는 아련한 추억만 남았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요람이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정순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