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산기업 스토리] '신동방'그룹

금산금산 2015. 2. 14. 13:10

 '신동방'그룹

 

 

 

 

 

신동방그룹은 부산에서 방앗간으로 출발해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굴지의 그룹사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창업주 신덕균이 부산 동구 초량동(현 부산역 건너편 속칭 텍사스촌 일대)

태평정미소를 차린 것이 출발점이었다.

당시 미곡거래소에서 사들인 현미를 부드럽고 식감이 좋은 백미로 만든 것이 인기를 얻어

전국 7개 도에 지점망을 갖췄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신 회장은 그렇게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백산 안희제를 통해 상해임시정부로 보냈을 만큼

주변의 신망도 높았다.  


그런 신 회장에게 비약적인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8·15해방이었다.

1946년 동구 범일동(현 눌원빌딩 자리)에서 일본 사람들이 운영하던 대형 정미소들을

적산으로 불하를 받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이후 배합사료업체인 고려산업을 필두로 강동탄광, 고려강업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으로 신규 투자를 확대해갔다.

특히 1966년에 설립한 동방유량은 국내 식용유 시장을 석권할 정도로 그룹 성장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방앗간에서 출발한 굴지의 그룹사
미도파 인수 실패에 IMF겹쳐 해체

 

 


 
 


그 여세를 몰아 1980년대에는 증권·금융업계에도 진출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신동방그룹

제동이 걸린 것은 1990년,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을 맺으면서부터였다.

2세 경영자였던 신명수 전 대표이사의 맏딸 정화 씨가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와 결혼식을 올린 그날부터

청와대 친인척 관리팀의 밀착 감시가 시작된 것이다.

정치적 특혜 시비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실시된 사정팀의 감시가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힘들게 했다는 항변이었다.


특히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턴 정반대로 정치적 보복설이 나돌 만큼 감시의 눈길이 강화됐다.

그런 상태에서 서울 미도파 백화점 인수를 추진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으로 돌아왔다.

미도파 측의 완강한 저항과 전경련의 반대 등으로 M&A에 실패해 유동성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IMF사태까지 겹친 2000년,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은 것이다.


한때 부산을 중심으로 곡물 왕국을 이뤘던 신동방그룹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창업주 신 회장은 1999년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부산에 거주하면서

부산 기업인을 자처했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던 향토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아호를 따서 만든 눌원문화재단과 함께...

 

논설위원

정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