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당'백화점
미화당백화점은 1949년 12월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문을 연 지역 유통업체의 효시다.
서울 화신백화점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부산에서 출범해 지역 경제의 터줏대감을 자임했던 토착 유통업체였다.
미화당이라는 이름은 창업주 장한찬이 젊은 시절 광복동(현 원산면옥 옆 자리)에서 운영했던 꽃집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창업 초기 미화당백화점은 4층 목조 건물에서 임대 위주로 운영하다 1956년 별관 건물을 증축했다.
콘크리트 6층 규모로 신축됐던 별관 건물은 당시 부산 시내 최고층 빌딩으로 기록됨과 동시에
용두산공원과 연결되면서 부산을 상징하는 명물로 등극하는 영광을 누렸다.
터줏대감 자임했던 토착 유통업체
재벌사 공세에 IMF 겹쳐 뒤안길로
이처럼 순풍에 돛 단듯이 성장을 거듭하던 미화당백화점은 1969년 광복동 대화재 사건으로
본관과 별관 건물이 모두 소실되는 시련을 맞았다.
하지만 미화당백화점은 이 같은 악재를 현대식 백화점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았다.
건물을 리모델링해 직영체제로 전환하는 터닝 포인트로 활용한 것이다.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는 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데는 창업주 장 회장이 '걸어 다니는 보증 수표'라고
불릴 만큼 신망이 두터웠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후 미화당백화점은 태양목재를 신설하고 동양어망을 인수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1974년에는 슈퍼체인 사업에도 뛰어들어 종합 유통업체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4년 가맹점이 80개를 돌파한데 이어 1989년에는 수도권 진출에 성공, 전국 곳곳에 400여 개의
가맹점을 거느리는 굴지의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그런 미화당백화점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이 부산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화당백화점은 본점 매장을 확대하고 2호점을 신설하는 등 공격적으로 대응했지만
재벌 그룹들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벌 그룹들의 눈치를 보던 입점업체들이 하나 둘 재계약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도 미화당백화점
쇠퇴에 한 몫을 했다.
여기에다 IMF사태까지 겹친 1997년 미화당백화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견뎌내지 못한 채
추억 속의 기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순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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