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기계 '정석봉' 대표
기계류 수입 오퍼상서 출발, 이젠 수산기자재 세계시장 호령
정석봉 청하기계 대표가 세계 특허제품인 오징어 할복기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
- 부산해양고 졸업 후 25세 때
- 최연소 원양어선 기관장 돼
- 일본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 선진 수산물 가공기술 배워
- 귀국한 뒤 기자재사업 투신
- 정밀가공기계 꾸준히 개발
- 기술력을 무기로 승승장구
-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우뚝
- "시장흐름 못읽어 소니 몰락
- 고객층 요구 꿰뚫고 있어야
- 中企 죽으면 대기업도 죽어
- 적절히 이익분배 상생 필요"
수익을 올리는 기업은 성공하고, 실패하면 고만고만하거나 아예 시장에서 사라져 버린다.
문제는 가치 창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점이다.
과거에는 무게중심이 제조에 있었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벗어나 지식경제로 치닫는 지금은 아니다.
연구·개발과 원천기술, 그리고 마케팅과 애프터서비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제조가 가라앉고, 앞뒤 부분이 쑥 올라온 것이다.
이게 미소짓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스마일 커브 이론'으로 불린다.
컴퓨터산업이 PC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메인컴퓨터에 매달린 이 회사는
10여년 전 16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적자를 내면서 생존의 기로에 섰다.
많은 이들이 거함 IBM의 침몰을 예상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건 제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덕분이었다.
주력이었던 제조 부문을 과감하게 아웃소싱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IT분야와 시스템 설계 로 눈을 돌린 것이다. 스마일커브 이론에 따른 성공적 결과였다.
특히 인력난과 시설노후화 등으로 한계상황에 직면한 수산업계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낸 업체들도 있는 법.
사하구 구평동 (주)청하기계는 승자에 속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으로 무서운 성장세를 과시한다.
스마일커브 이론을 착실히 이행한 정석봉(55) 대표가 그 중심에 있다.
17년 전 일본 기계를 수입해 파는 오퍼상에서 출발한 이 회사가
지금은 오히려 일본 시장을 휘어잡는 거대 강소기업으로 우뚝 선 비결이 뭘까.
첨단 기술력에 의한 고부가가치 창출이 정답.
그런데 정 대표의 전략은 특이하다.
목표를 점찍어 올인하는 선택과 집중이 아니다.
대신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기계제품을 생산한다.
이들 제품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수산물 가공공정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시장과 고객층의 요구 수준을 꿰뚫어 보지 않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선택과 집중은 수산기자재 중소기업에 맞지 않는 전략이라고.
수산물 껍질을 벗겨내는 자동탈피기가 1세대라면, 몸통 분리는 물론이고
내장 제거 등 자동할복기는 2세대 히트상품이다.
말을 아꼈지만 차세대 발명품(?)도 준비하고 있는 눈치다.
지금 정 대표가 갖고 있는 관련 특허만 30개가 넘는다.
미래를 내다본 대응체제까지 갖췄다는 얘기다.
4년 전부터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왔기에 충분하다는 계산이 섰다.
감자나 양파, 야채를 씻고, 채썬 후 탈수까지 하는 원스톱 처리시스템을 개발해 대형음식점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이거 한 대에 얼마 받는지 아십니까. 4만5000달러예요."
공장 한켠의 양파탈피기를 가리키며 정 대표는 미소를 짓는다.
원가를 밝히지 않았지만 상당한 수입을 챙긴 듯하다.
첨단 기술력의 위력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니,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부산 한 기업이 만든 기계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단 말인가.
정 대표는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사이버마케팅을 한다.
세계를 뒤져봐도 이처럼 질 좋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사기 힘들거라는 자신감으로 덤벼든 게 통했다.
홈페이지에 들어와 제품을 꼼꼼히 살펴본 각국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주문하니 신바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부산 해양고를 졸업한 그는 나이 스물다섯에 원양트롤어선 기관장이 됐다.
우리나라 최연소 기록이다.
이후 4년 간 조양상선 도쿄사무소에 근무하면서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의 선진 어법과 수산물 가공기술을 샅샅이 캐고 다녔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지 않던가.
국내로 들어와선 배 신조사업에도 참여했다.
"배는 기계의 집합체입니다. 엔진을 비롯해 발전기 유압기 등 기계의 정수를 터득하는 계기가 됐지요."
비록 길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여기서 얻은 지식과 현장 이론이 그의 두둑한 사업 밑천이 되었다.
그는 시장 논리로 볼 때 일본은 성장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확신한다.
이미 수산가공 분야가 사양산업이 된데다, 잇딴 대형 지진으로 기반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어자원이 줄어든데다 인력 수혈도 여의치 않아요."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은 거대 수산물 소비시장이고, 러시아와 미국은 어자원 생산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최대 가공시장으로 떠올랐으니 여건이 최상이라는 게 정 대표의 분석.
맞춤형 정밀 가공기계를 꾸준히 개발한 결과 청하기계는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특히 시장 수요가 많지 않은 특수성을 안고 있어 대량생산 자체가 힘들다는 이점도 있기에
중소기업에 블루오션이라는 논리다.
그가 선택과 집중을 배제하고 다품종 기계 생산을 택한 까닭이기도 하다.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연구와 설비투자, 그리고 단시간에 도약할 기술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해 몰락한 소니를 보세요. 우리의 장점을 살려야 합니다.
독일과 스위스 처럼 정밀기계을 생산하고 부품 가공력을 길러야 살아 남습니다.
손재주 많은 한민족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봐요."
공정거래 파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현대차만 보더라도 본사에서 조립만 하고 있으면서 하청업체들을 쥐어짜 노사가 나눠먹는 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연구 개발은 중소기업이 해야 하는데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결론이 나왔다.
중소기업이 안되면 서민 삶과 시장경제가 돌아가지 않으니 대기업 이익이 적절히 배분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고, 클 수 있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길이다.
시장 싹쓸이를 노리는 대기업과의 대결을 피할 비책이기도 하다.
특히 소량 다품목의 경우 물량 경쟁에 의존하는 대기업들이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므로
중소기업들이 시장을 지키기에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농수산물 가공장에서 공장시스템을 갖추려면 많은 기계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제품을 갖추면 일괄 주문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
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칙없는 확장을 한다면 몰락을 초래한다는 점을 잊지말 것.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새 아이템을 끊임없이 준비하라.
동시에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체크하고 시장의 사업성을 내다봐야 한다.
고객들과의 신뢰 구축은 기술력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다.
상품을 팔기 전에 자신을 먼저 팔아라.
끊임없이 도전하되,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일을 취미로 삼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적성에 맞다는 의미가 그렇다.
그래야 능률이 오르고 기발하고도 풍부한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나온다.
성취감을 얻게 되면 가속도가 붙는 건 시간문제다.
부모의 책임은 그래서 막중하다.
자녀를 끊임없이 세심하게 지켜보고 관심 분야를 파악해야 한다.
그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도록 힘을 쏟는다면 틀림없이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으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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