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문화네트워크(상)
독방 체험·책방 순례… 격동의 시대 헤쳐 온 부산의 이야기 길
▲ 부산민주공원 상설 전시실의 모습. 여기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과거 민주인사들이 투옥됐던 독방이다. 독방 체험을 한 뒤 남긴 소감이 유리에 새겨져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부산의 도시 형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이 남기고 간 가재도구를 급하게 처분하던 도떼기시장이 활성화되었고
그 자리가 지금의 국제시장이다.
수십만 명의 귀환 동포가 부산항으로 들어오며, 인구 28만 명의 부산은 갑자기 80만 명에 달하는
거대도시가 된다.
광복의 기쁨과 혼란을 벗어나기도 전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부산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70만 명에 달하는 피란민이 불시에 부산에 몰아닥쳤고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거나
고향을 등져야 했던 사람들은 산등성이로 올라가야 했다.
부산 중구 지역, 원도심 산복도로는 그렇게 시작됐다.
근대 도시 부산의 형성 과정 생생한
민주공원·중앙도서관·책방골목…
골목골목 역사와 삶의 이야기 가득
저마다 독특한 전시·강연 프로그램
주말 온 가족 나들이 더할 나위 없어
이처럼 부산 원도심에는 부산 근대 도시 형성과 현대에 이르는 과정이 생생히 남아 있다.
그 사연과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문화시설 역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이 시설들은 '원도심문화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뭉쳐 다양한 문화 교류와 공동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열린 형태의 수평적 네트워크는 실질적 교류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2회에 걸쳐 원도심문화네트워크의 시설을 돌아본다.
원도심문화네트워크 탐방의 첫 코스는 부산민주공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투쟁으로부터 4·19 민주혁명,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부산시민의 민족성과 민주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민주항쟁과 관련한 각종 유물, 조형물, 시, 그림, 사진이 전시돼 있으며 세미나실, 공연장에선 각종 공연을 비롯해 강연회, 토론회, 교육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상설 전시실은 부산의 민주화 투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학생들이 전시물에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Q&A 코너를 입체적으로 구성했고
민주화 투쟁에 참여한 이들의 일기와 편지글은 뭉클한 감동이 살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상설 전시실의 최고 인기 코너가 독방 체험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민주화 인사들을 주로 가두었던 감옥의 독방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부산광복기념관(왼쪽 사진)과 보수동책방골목어린이도서관 내부. 정대현 기자 |
민주공원의 각종 시설을 돌아본 후 공원을 내려오면 부산광복기념관이 있다.
원도심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한국 독립 운동사 전반을 다루고 있어
이곳까지 왔으면 꼭 돌아볼 것을 권한다.
특히 일제 침략과 당시 부산 상황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애국지사,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에서 참배할 수 있도록 코스가 구성돼 있다.
광복기념관에서 몇 분만 걸으면 부산광역시립중앙도서관을 만난다.
향토자료 특성화 도서관으로 부산 관련 자료와 책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다.
도서의 대여, 열람 업무 외에도 다양한 평생 학습 프로그램과 아이를 위한 책 읽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도서관에서 부산을 찾다'라는 자체 사업을 통해 향토 작가 아카데미, 부산 관련 자료 전시회를 열고
매년 부산자료모음집을 발간하고 있다.
부산 주제 자료 모음집은 단순한 자료집 형태를 넘어 부산의 현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가치가 높아 보인다.
지난해 발간된 '부산의 밥상'까지 현재 13가지의 주제로 만들어져 있다.
도서관 앞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타면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내릴 수 있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이 몰려들며 이곳에 천막학교들이 생겼고 책이 필요한 학생들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다.
1호 책방이 있던 곳에는 지금 보수동 책방 골목을 상징하는 동상이 들어섰고
2010년 보수동 책방 골목의 지난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이 골목의 중간에 만들어졌다.
8층으로 구성된 문화관은 책방골목 역사를 담은 상설 전시실부터 복도 전시실, 기획 전시실,
북카페, 인문학 강의실, 어린이 책공간 등 책방 골목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화관에서 1분 남짓 걸으면 지난해 새로 생긴 보수동책방골목 어린이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느낌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전하려는 어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린이교육전문단체 어깨동무가 위탁 운영하는 곳으로 어깨동무는
부산터널 위에 글마루도서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특히 주말에 아이와 가족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주말 나들이로 추천하고 싶다.
김효정 기자 teresa@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원도심 문화네트워크'란?
중구 내 밀집해 있는 중소형 공공문화시설 문화공동체로 재탄생
부산 중구에는 역사성과 장소성, 삶의 이야기가 담긴 중소형 공공문화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1년여 준비 끝에 수평적인 구조의 중구문화네트워크가 탄생한다.
2004년 김종세(당시 민주공원 전시기획팀장) 민주공원 원장은 이 지역의 중소형 문화시설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출범 때는 민주공원을 비롯해 부산세관박물관, 40계단 문화관, 백산기념관, 부산타워, 부산근대역사관,
부산광역시중앙도서관 등이 참여했고 부산관광해설사회와 부산시 관광협회, 부산시 중구청도 뜻을 모았다.
근거리 지역을 기반으로 실무자 중심의 열린 네트워크는 다양한 기획과 추진력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상설 전시 규모가 작아 이용객 창출에 고민이 많았던 시설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게 된다.
2008년 원도심문화네트워크로 이름을 바꾼 후 좀 더 다양한 시설들이 참여한다.
또따또가,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부산문화관광해설사회, 가톨릭센터, 한국영화자료원, 영도문화원,
부산어린이어깨동무가 새롭게 함께한다.
원도심문화네트워크는 그동안 원도심 공동 답사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지난해 4월 처음으로 원도심 문화예술축제를 성공적으로 끝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했다.
원도심문화네트워크는 이제 다른 지역에서 운영을 물어올 만큼 성공적인 지역 문화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프로그램 공동 기획과 운영은 정착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원도심 문화시설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이들 시설을 연결하는 순환 버스와 공동 패스 도입이 꼭 필요하다.
또 지역의 대학이 함께 참여해 연구 기능이 더해지면 좀 더 풍성한 프로그램과 깊이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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