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 희망세상'
전국구로 이름난 18년 차 공동체, 초심 잃지 않고 뚜벅뚜벅
▲ 18년차 공동체인 반송희망세상의 느티나무 도서관(위쪽 사진)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카페 나무(아래쪽 사진)는 청년운영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공간이다. 작은 사진은 각각의 내부 모습. 정종회 기자 jjh@ |
6·25 전쟁은 사람들을 등 떠밀었고, 그렇게 대도시 부산은 시작되었다. 젊은이들은 서울로 빠져나간다. 부산의 그늘을 빼닮은 마을이 있다. 도시철도 4호선 안평 방향의 끄트머리. 동부산대학역(윗반송), 영산대역(아랫반송)에 걸쳐진 반송마을이 그곳이다.
반송은 부산시가 도심재정비 사업을 실시하며 떠밀려온 사람들이 주축으로 마을을 형성했다.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잘 사는 동네, 못 사는 동네로 나뉘어 편견이 생기고 분쟁이 일기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반송에서 나와도, 고등학교는 반송을 벗어나 해운대구나 금정구로 진학하려 한다.
부산 외곽 끄트머리 동네라고?
마을 신문·라디오 방송 만들고
십시일반 거든 '느티나무 도서관'
청년 문화 영글어가는 '카페 나무'
'공동체마을만들기' 열정 가득
시대가 그늘을 드리웠지만 볕을 만들어 낸 건 주민이었다.
주민들이 나서서 모임을 조직하고, 마을 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은 '전국에서 유명'해졌다.
1997년부터 시작된 반송마을 공동체 '반송희망세상'은 벌써 18년을 지나왔다.
반송마을은 반송 한가운데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반송 2동은 윗반송으로, 반송1동과 3동은 아랫반송으로
구분된다.
이번 컬처로드에서는 반송희망세상이 터를 닦은 공간을 기반으로 윗반송과 아랫반송을 잇는다.
도시철도 4호선 동부산대학역에서 하차해 반송큰시장을 지나면 건축비와 토지매입비 모두
주민들이 십시일반해서 직접 지은 느티나무 도서관에 도착한다.
김우호(17) 군은 느티나무에서 자랐다.
우호 군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때 느티나무 도서관이 지어졌다.
초등학생 땐 방과 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중학교 때부턴
새로 들어온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봉사활동을 겸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요리학원에 다니며 외식·조리 관련 학과 진학을 준비하는 그는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에 느티나무 도서관 1층에서
요리학교를 열어 초등학생들에게 샌드위치나, 주먹밥을 함께 만든다.
학교 친구들은 고3인데도 또 봉사하러 가느냐고 핀잔도 주지만 우호 군은 동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우호네는 인근 신도시로 이사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호네 가족에게 있어 '반송희망세상'은 믿음직한 이웃이었다.
우호 군을 5~6년간 돌보아 준 이모들이 느티나무엔 있었다.
이사를 생각한 건 우호네만이 아니다.
사실 반송의 인구유출은 반송희망세상 활동가들의 큰 고민거리다.
주변에 고촌마을이나 정관신도시가 생기면서 마을을 이끌 젊은 부부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윗반송과 아랫반송을 잇는 길. 최근 색깔을 덧입혀 보기 좋게 단장했다. 정종회 기자 |
■ 격차는 청년들이 메운다
윗반송에 느티나무 도서관이 있다면 아랫반송에는 '카페 나무'가 있다.
손수진(32) 씨는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사서로 3년간 활동하다 2014년 3월, 카페 나무로 이동했다.
카페 나무는 윗반송과 아랫반송을 잇자는 취지로 문을 연 공간이다.
처음엔 아이들을 느티나무 도서관에 데려오던 주부들이 운영했다.
하지만 주부들은 이른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에 문을 닫아야 했다.
마침 반송희망세상에도 젊은 청년들이 들어와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카페 나무는 청년들의 공간이 되었다.
김성원(22) 씨와 손 씨의 인연은 느티나무 도서관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느티나무에서 책을 읽던 김 씨는 이제 카페 나무에서 손 씨와 일한다.
이외에도 10명의 청년들은 반송 소식을 전하는 '반달라디오'를 만들고, 인근 중학교와 연계해
진로교육을 진행한다.
명절 때면 친척집에 가지 않는 청년들이 모여 음식과 시간을 나눈다.
22~32세의 열 명 남짓한 청년들은 반송에서 그들만의 청년 문화를 만들어 간다.
손 씨는 반송희망세상을 반여동까지 넓힐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하지만 석대라는 큰 화훼단지를 끼고 있기도 하고, 반여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에 아랫반송을 더 탄탄하게, 더 젊고 활기차게 꾸려나가기로 했다.
카페 나무는 이윤을 내기보다는 청년들의 공간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청년 문화가 정착되면, 반송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젊은이들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 18년 차 공동체도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2007년 느티나무 도서관은 어린이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찾아오는 학생이 줄었지만 매일 스무 명의 아이들이 느티나무 도서관을 찾는다.
지금은 홀로 되신 어르신들이 와서 책을 읽으며 쉬는 것도 느티나무 도서관의 달라진 모습이다.
반송희망세상 김유정(39) 활동가는 "최근에는 도서관 대표 프로그램인 '책 읽어주는 엄마'를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이제 인근의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간다"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외부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999년부터 매해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참여하는 어린이날 행사는 이미 부산 밖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로 훌륭한 콘텐츠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도 '반송은 여전히 부산의 외곽지역'이라는 생각은 반송 주민들에게도 깊이 뿌리박혀 있다.
반송 지역 내에 고등학교를 만들자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해마다 나오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반송 바깥으로 나가봐야 되지 않겠느냐'하는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단단한 내부적 결속력은 우리 마을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저항에서 출발함을 인정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벽은 견고하고, 우리 자식은 반송 밖에서 살기를 바란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처음의 환호는 아득해졌고, 사람들은 다른 마을로 빠져나간다.
그래도 아직 500명의 후원 회원이 있고, 활동가들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할 나이가 지나도
꾸준히 자리를 지킨다.
부산은 몇몇 신도시를 제외하면 빠른 시간에, 무계획적으로 건물을 세우는 일에만 몰두했다.
동네마다 빈부, 세대격차가 커지기 시작해 2009년부터 매년 150억 원을 투입하는 공동체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이 빈틈을 메우려 하고 있다.
반송희망세상이 앞서 걸어갔던 길을 부산의 여러 마을들이 거쳐 갈 것이다.
관의 지원에서 출발한 공동체 마을은 주민들이 헤쳐모인 반송에 비해 이른 시일 안에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우리가 반송이 나아가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봐야 할 이유다.
조소희 기자 sso@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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