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부산 컬처로드 연다] '3부' 원도심문화네트워크 (하)

금산금산 2015. 5. 9. 11:49

원도심 문화네트워크 (하)

 

 

 

 

 

골목골목 눌어붙은 근대의 자국들… 그 위에 문화·예술 꽃피다

 

 

 

 

 

▲ 원도심의 문화예술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카페 겸 공연장 '아르케×프리덤'은 폐자전거를 주워 장식으로 활용했다. 정종회기자 jjh@

 

 


 

 

 

관광지엔 현지인이 없다.

현지 자본도 등 떠밀린다.

흥행의 역설, 관광지 공동화 현상이다.

유명세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솟구치는 임대료에 원래 거주하던 사람들과 상인들은 떠나고 덩치 큰 외지 자본이 들어온다.

그 곳의 고유성과 독특함은 사라진다.

 유명해진 '관광코스'는 프랜차이즈 카페들로 가득 차면서 스스로 그 끝을 알린다.

서울 삼청동길, 전주 한옥마을, 대구 김광석길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부수고 새로 짓지 않았다면
거대한 근대 테마파크가 됐을 곳

예술인 창작공간 '또따또가'가 있고
근대역사박물관·나락한알이 있는 곳

4월 둘째 주부터 축제 열려
다양한 형태 '길 탐방' 진행

 

 



서울 사람 반, 외국인 반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여름의 해운대

실제로 부산시민의 쉴 곳일까, 관광객들의 휴양지일까.

시민들이 늘 찾을 수 있는 공간, 늘 가까이 찾으며 건전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

배우고, 쉬며, 느끼는 터전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부산 근대역사박물관. 정종회기자 jjh@

 

이번 원도심문화네트워크(하)에서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예술인과

시민들이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길을 안내한다.

그 노정에서 근대역사박물관과 창작공간 또따또가,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을 만난다.

 

 




■ 근대 테마파크가 되었을, 그 자리

모두 부수고, 새로 짓지 않았다면 이 곳은 거대한 근대 테마파크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과의 물리적 근접성 때문에 탄생한 남포동, 대신동 일대는 일본인 마을을 중심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각종 해운회사와 미곡창고, 상점들이 빼곡했다.

우리의 근현대는 부수고, 지어야 하는 시대였고, 그게 발전이라 여겼다.

또 어떻게든 일본의 잔재를 거두는 것이 식민사관을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사실 부산의 뿌리는 일본이 서양의 문물을 전달하는 데서 시작되는 데 이를 자랑스러워,

혹은 창피해할 필요도 없다.

여기저기 아슬아슬하게 눌어붙은 근대의 자국들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만이 우리의 몫이다.

 

 




■ 애매해서 살아남은, 창작공간 또따또가

40계단. 정종회기자 jjh@

 

 

또따또가는 애매하다.

떠들썩하니 유명한 거리도 아니고, 관의 막대한 지원이 있는 곳도 아니다.

40계단을 보러 온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들르는, 남포동과 부산역 중간에 위치한 대로변도 주택가도 아닌

그 애매함이 이 곳을 유지하는 힘이다.

또따또가에선 미술, 문학, 공예 등 다양한 창작공간과 커뮤니티 센터를 무대로 40명이 넘는 예술인 단체와

개인이 입주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금속 공예를 이어나간다.

허름한 인쇄소 골목, 가파른 계단 사이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비탈길 주택을 개조한 곳에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었다.


최근 서울에서 가장 뜨는 예술인 골목은 서울 문래동의 철공소 거리다.

이곳이 예술 창작촌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주로 홍대 앞이나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나 단체들이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이동한 탓이다.

이들은 오늘날 '홍대 거리'를 만든 주인공들이었지만 유명세에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들고, 이로 인해

유흥 상권이 확대되어 날로 오르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문래동에 다시 터를 닦았다.

이태원이, 대학로가 그러했고, 경성대 문화골목, 국제시장 꽃분이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곳 또따또가도 마찬가지다.

인쇄소 밀집 골목.

재건축을 기다리는 빈 주택이 있는 동네에 2010년부터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공간 임대료를 1년 동안 지원하고, 그 후엔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

예술가나 혹은 단체가 1년 안에 자신의 예술품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기에

최근에는 카페를 겸용해 자립 시간을 단축하려고 한다.

 '아르케×프리덤'은 음악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카페와 작은 공연장을 겸한다.

콘트라베이스와 건반, 앰프를 갖추어 놓았다.

평소 테이블 네 개를 갖춘 카페로 운영되다가 공연이 있으면 30여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공연장이 된다.

워낙 규모가 작다 보니 가수 옆에 앉아서 노래를 듣는다.

가수의 땀구멍까지 느껴본 관객들이 그 맛에 또 찾는다.

듣는 사람과 밀착한 곳에서 곡을 연주한 가수들이 다른 가수들에게 이 곳을 추천한다.

30명 정도의 입장료로 가수의 교통비와 공연비를 충당하고, 관객들이 커피나 차를 마시고 돈을 내면

 '아르케×프리덤'의 수입이 된다.


'간', '세월호 생각', '어서 와, 이런 여행책은 처음이지'라는 책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던 호랑이출판사도 오는 3월 또따또가에 입주한다.

15년 전 상가 사장님 사무실로 쓰다가 문을 닫은, 3평 남짓한 공간에 입주하는 호랑이출판사 김현아 대표는

전동드릴과 못을 옆구리에 낀 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또따또가에서 도시철도 역사 하나 떨어진 1호선 초량역 방면에는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이 있다.

이곳에선 각종 독서모임, 인문포럼, 영화 함께보기 부터 시작해 어린이-청소년 역사기행,

부산 시내 건축 디자인 기행을 떠난다.

또따또가에선 예술인들이 커뮤니티를 일군다면

락한알에선 배우고 싶은 분야와 취향에 따라 시민들이 다양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 관광 3.0의 시대, 원도심 네트워크의 역할

관광의 패러다임을 쪼개 보자.

보고 사진 찍고 맛보는 관광으로 시작한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에서 벗어나고자, 문화유산해설사가 공간을 설명하고, 관광객은 그곳에서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도 짧고 단편적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들르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 속에 정례화 해야한다.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서너 번은 들르는 곳이 되어 원도심 삶의 단면을 시민들과 함께 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근대와 근현대, 지원과 자립사이 이 애매함이 만든 유일성과 독특함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원도심 네트워크는 원도심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우리만의 것들을 잇는다. 단순히 물리적 이음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을 이뤄야 한다.

서로서로 필요로 하기에, 한번 들른 손님이 인근의 다른 곳을 가도록 해야 지속적인 유입이 가능하다.

촘촘히 넓게 짜인 관광지는 임대료 폭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는 4월 둘째 주부턴 원도심 축전이 벌어진다.

길거리 곳곳에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린다.

100년 전 부산항으로의 여행, 영도구 대평동 깡깡이 길, 송도 암남공원 해안산책로, 민주공원 주변

골목길 탐방 등 이 지역 역사관, 박물관, 문화원 주최로 다양한 걷는 길 탐방이 진행되니 지면에 소개된 곳

이외에도 가족, 친구, 연인끼리 봄나들이하기 좋다. 컬처로드의 융성은 시민의 발걸음에 달렸다.



조소희 기자 sso@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