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화학'
동성화학은 창업주 백제갑 회장이 1952년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가내공업 형태로 문을 연 '건민고무'로 시작했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1·4후퇴 때 피난 내려온 백 회장이 부친 백성도 옹과 함께 장화에 덧칠하는
유성에나멜을 만든 것이 출발점이었다.
신의주공고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백 회장이 자체 개발한 기술로 출시한 고무용 접착제가 히트를 하면서 1959년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에 3천300㎡ 규모의 공장을 설립하고 새로 내건 간판이 동성화학이다.
6·25전쟁 때 탄생한 종합화학업체
신발산업 메카 부산과 함께 성장
이후 동성화학은 일본 회사들과 기술 제휴를 하는 등 R&D투자를 성장 전략으로 삼았다.
그 결과 1966년 수출 공산품 제조업체로 지정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비슷한 시기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신발이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른 것도
엄청난 호재로 작용했다.
삼화고무와 국제상사 등 당시 부산에 기반을 둔 굴지의 신발업체들이 세계적인 규모로 급성장한 데 힙입어
협력업체였던 동성화학 역시 고속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 결과 동성화학은 한때 신발 접착제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알짜기업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초기 자본을 축적한 동성화학은 1985년 가야동 시대를 마감하고 신평공단으로 옮겨가면서
제2 도약을 선언했다.
그후 3년 만인 1988년 장남 백정호 씨를 중심으로 2세 경영체제가 출범하면서
호성케맥스, 팬텀사, 동성기공을 설립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동성화학도 1997년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신발산업이 쇠퇴하던 시점에 IMF사태까지 겹치면서 거래업체들이 줄도산하는 등 위기 국면이 닥쳐온 것이다.
은행 금리가 연 20%를 상회하는 등 자금압박이 가중되자 동성화학은 접착제사업부와 폴리엘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전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IMF 모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2003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우량기업들을 성급하게 정리하는 바람에 발전동력이 둔화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런 우여곡절을 딛고 새 출발을 선언한 동성화학은 현재 고급신발 소재 등을 중심으로 힘차게 재도약의 나래를 펴고 있다.
junsh@
논설위원 정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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