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웅석봉'
능선 물결이 구름에 걸쳤다
가을 끝물 단풍 · 낙엽 황금카펫 깐 듯
정상 앞두고 30여분 급경사 오르막길
상봉서면 지리산·황매산 기막힌 조망
십자봉 가는 길에 바라본 주변 조망. 여름이면 래프팅 보트로 넘쳐나는 경호강과 대진고속도로 3번국도 그리고 산청읍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
도로개설이 등산패턴을 바꾼 사례가 왕왕 있다.
지리산이 대표적인 예다.
구례와 남원을 잇는 861번 지방도와 정령치를 지나는 737번 지방도가 80년대 후반 잇따라 뚫리면서
성삼재와 정령치를 기점으로 만복대 세걸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부능선의 문턱이 아주 낮아졌다.
지리산 동편 언저리인 웅석봉도 마찬가지.
산청읍과 남명 선생의 유적지인 덕산으로 연결되는 59번 국도가 생기면서 밤머리재에서 불과 1시간30분 정도면 그간 험준한 산세 탓에 천왕봉보다 오르기 힘든 산으로 인식돼온 웅석봉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두고 옛 산행방식을 고집하는 정통파 산꾼들은 달가워하진 않지만
하여튼 산행문화의 대중화 측면에선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주 산행지는 산청군 군립공원인 웅석봉(熊石峰·1099m).
일명 곰바우산이다.
너무나도 가팔라 곰이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여름 경호강 래프팅을 즐기며 내려올 때 오른편 우뚝 솟은 산이다.
맞은 편은 둔철산과 정수산.
독립 봉우리이면서 지리산과 연결돼 있는 웅석봉은 천왕봉에서 북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에 이르러 동으로 가지를 뻗어 새재 외고개 왕등재 깃대봉과 밤머리재를 지나 솟구친 후
경호강과 덕천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이 때문에 웅석봉은 한때 천왕봉 대신 백두대간의 시·종점으로 조명을 받았었다.
무엇보다 웅석봉은 조망의 산이라 해도 좋을 만큼 기가 막힌 전망대다.
천왕봉을 올랐을 때보다 웅석봉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는 것이 더 감동적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파르티잔이 아지트로 선택한 이유를 알 만하다.
한 폭의 그림같이 휘돌아 흐르는 사행천인 경호강 물줄기도 장관이다.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산청읍 내리 지곡사에서 선녀탕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며, 밤머리재 출발 코스는 최단 코스이나
원점회귀가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
산행팀은 어천마을에서 출발, 다리 지나~민박 '쉴만한 물가'~공터(간이
주차장)~갈림길('119 농원' 방향)~'119 농원' 입구~성심원 갈림길~
옛 헬기장~웅석봉·십자봉 팻말~십자가의 길(14처 그림상)~십자봉
(바위 전망대)~웅석봉 정상~삼거리 갈림길~임도~헬기장~어천계곡~
어천마을 순.
순수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길은 비교적 또렷하다.
어천마을 입구에 '웅석산' 팻말이 서 있다.
어천마을 일대는 한국전쟁때 웅석봉을 본거지로 활동하던
파르티잔의 피해를 많이 입었던 곳.
지금은 펜션이 많이 들어서 이국적 뉘앙스가 풍기는 마을로 변모해 있다.
어천상회를 지나면 이동전화안테나가 걸려 있는 전봇대.
그 왼쪽으로 오르면 어천계곡길.
널리 알려진 웅석봉 가는 길이라 하산길로 잡았다.
보행속도 차이 때문에 가급적 하산길을 뚜렷한 길로 잡고 들머리쪽을 새 길로 오르는 관례에서다.
직진한다.
다리를 건너 민박 '쉴만한 물가'를 지나면 너른 터.
차를 갖고 왔다면 이곳에 주차하자.
길 한켠에 하얀 목화꽃이 만개해 있다.
문익점의 목면시배유지가 산청이란 사실이 실감난다.
그림같은 집 유덕제를 지나 시멘트길로 오른다.
잇단 갈림길에선 '119 농원' 방향으로 간다.
20여분 뒤 '119 농원' 앞 공터.
왼쪽으로 난 산길로 향한다.
입구에 보석같은 붉은 고령토가 드러나 있다.
본격 들머리다.
미처 못 핀 억새가 바람에 한들거리고 끝물 단풍이 아직까진 볼 만하다.
바닥은 방금 떨어진 노란잎과 누렇게 색이 바랜 솔가리가 어울려 마치 황금 카펫을 걷는 듯하다.
'119농원'에서 45분 뒤 갈림길.
오른쪽은 성심원에서 올라오는 길.
성심원은 가톨릭 프란체스코회가 운영하는 한센요양시설.
이때부터 십자봉 정상까지 예수님 수난과정의 상징인 14처 그림이 묘사된 설치물이 잇따라 서 있다.
억새가 만발한 옛 헬기장을 지나면 '웅석봉·십자봉' 이정표.
조금 더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아름다운 경호강과 대진고속도로, 3번국도가 나란히 달리고
그 뒤로 산청읍내와 둔철산 정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십자봉 정상은 성심원 갈림길에서 대략 40분.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서 있고 제단이 마련돼 있다.
신도들은 이곳에서 기도와 찬송을 한다.
성심원에서 말하는 십자봉은 이곳으로 추정되지만 산세로 봐 실제 정상은 7분 뒤 바위전망대.
정면에 황매산 모산재가, 그 앞으로 정수산 세신바위 둔철산이,
이보다 왼쪽 경호강 건너편으론 왕산 필봉이 보인다.
5분 뒤 갑자기 리본이 많이 달려있는 갈림길.
내리를 거쳐 산청읍으로 가는 길이다.
정면 머리 위에는 웅석봉이 자태를 드러낸다.
동시에 한겨울에나 접할 수 있는 매서운 칼바람이 귓등을 때린다.
겨울산이다.
이때부터 급경사 오르막의 연속.
30여분 힘겹게 오르면 마침내 정상.
정상석에는 곰이 음각돼 있고, 그 아래에는 대리석 제단이 있다.
산불초소도 있다.
정상에서의 백미는 조망. 북쪽 저멀리 천왕봉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고,
그 옆으로 중봉 새봉이, 그 앞으로 왕등재 깃대봉이 보이고 눈 앞에
푹 꺼진 밤머리재 뒤로 왕산과 필봉이 보인다.
동쪽으론 제일 높은 황매산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흰바위산인 부암산,
감암산 모산재가, 남쪽으론 원지와 진주시가 보인다.
산불초소 뒤 서쪽으론 삼각봉인 지리산 주산, 그 우측으로 구곡산,
일자능선인 황금능선이, 다시 그 뒤로 삼신봉과 지리산 남부능선이
확인된다.
가히 산의 물결이다.
하산은 초소 뒤 삼거리에서 왼쪽 어천 방향으로 간다.
정면 발밑에는 들머리 어천마을이, 오른쪽엔 석대산과 청계저수지가, 건너편 왼쪽 능선은 방금 올라온 길이다.
이번 산행은 어천마을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돈 셈.
낙엽이 수북이 깔린 내리막길의 연속. 주의를 요한다.
35분 뒤 임도.
5m쯤 왼쪽으로 리본이 붙어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5분 뒤 다시 임도.
119조난위치표시판 우측으로 내려선다.
반대편 헬기장 건너 산길로 가면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이 있는 청계리.
계속되는 낙엽길.
45분 뒤 너덜과 동시에 계곡을 만난다.
어천계곡이다.
이른바 만추의 계곡산행이다.
아직 끝물 단풍이 남아있고, 발밑에도 방금 떨어진 듯 울긋불긋하다.
어천마을은 여기서 대략 25분 걸린다.
◇ 교통편
- 진주터미널서 내려 원지行 시외버스
대중교통편은 부산서 진주, 진주에서 산청군 신안면 원지,
원지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심거마을에서 내려 어천마을로 걸어가야 한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진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 첫 차를 시작으로 8~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30분 걸린다.
진주에서 원지행 시외버스는 5~10분 간격으로 있다.
20분 걸린다.
원지터미널에서 길을 건너 신안면사무소 앞에서 산청행 산청교통 군내버스를 타고 심거에서 내린다.
오전 7시30분, 8시40분, 9시30분, 11시에 있다.
심거에서 어천마을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심거 버스정류장에서 원지행 군내버스는 오후 4시4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있다.
원지에서 진주행 시외버스는 5분마다 있다.
막차 밤 9시40분. 진주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막차 밤 9시1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 단성IC~산청 방향 좌회전~진주 산청~단성교 지나자마자 좌회전~함양 산청~청계 어천 대원사 1001번 지방도~굴다리 통과 후 어천교(경호강) 건너 ~웅석산 군립공원 3.2㎞ 이정표~어천2교~어천마을 순.
◇ 떠나기전에
- 어천마을 그림같은 주택과 펜션 즐비
두 번째 시도였다.
지난 여름 어천계곡을 소개하기 위해 올랐다가 복병 폭우를 만나 1시간만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천마을의 원조 민박 '쉴만한 물가'로 잠시 비를 피해 들렀을 때 주인장이 비맞은 생쥐꼴의 산행팀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한 기억이 뚜렷하다.
당시 고마움을 이제서야 지면으로 전한다.
현재 어천마을은 동화속에서 본 듯한 예쁜 전원주택과 펜션이 많이 들어서 있어
마치 외국의 작은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여름이면 어천계곡으로 많은 피서객이 몰려든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실비회식당(055-972-3981).
원지터미널 가까이 위치한 경호강 인근 원조 매운탕집이다.
안주인 정보선씨는 38년간 영업한 친척 할머니에 이어 17년째
문을 열고 있다.
남편이 경호강에서 쏘가리 메기 빠가사리 모래무지 꺽지 망태 등
민물고기를 직접 투망과 유망으로 잡아 자연산만을 사용한다.
여기 매운탕(사진)에 들어가는 야채와 양념 모두 주인 부부가
직접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쏘가리매운탕, 잡어탕.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